57년전 희망 품고 북송선 올랐지만…“잃어버린 낙원의 꿈”

▲ 재일조선인 북송(北送) 사업을 조망한 영화 ‘잃어버린 낙원의 꿈’. /영상=유튜브

57년 전 오늘(14일), 일본 니가타(新瀉)항. 재일조선인 975명이 한덕수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 초대 의장을 비롯한 각 단체 대표들과 일조(日朝)협회로부터 열렬한 환호를 받으며 소련 배 클리리온호(號)와 토보르스크호에 승선했다.

그들은 김일성과 조총련이 ‘지상낙원’이라고 선전한 ‘북조선’에 가면 일본에서의 생활보다는 더 나을 것이란 ‘희망’을 품었다. 이렇게 1959년 12월부터 1984년까지 진행된 북송사업을 통해 북한으로 건너간 재일조선인은 일본국적자(재일조선인과 결혼한 일본인 아내도 상당수 포함됐다) 6730명을 합쳐 모두 9만 3339명(일본적십자 본사의 외사부 자료를 바탕으로 한 장명수(張明秀)의 통계 참조)에 달했다.

제1차 북송선이 출항한 지 57주년, 데일리NK는 북한당국에 의해 주도, 반(反)인도범죄로 귀결된 재일조선인 북송 사업을 조망한 영화 한 편을 소개한다. 지난 10월 ‘북한인권국제영화제(NHIFF)’를 맞아 서울 대한극장에서 상영된 영화 ‘잃어버린 낙원의 꿈(감독 정은주)’은 식민의 상처와 함께 ‘분단과 이산’이라는 상흔을 품고 있는 재일조선인의 기구한 삶을 집중 조명했다.

한국과 일본 오사카·도쿄 등지에 거주하는 탈북민(북송선을 타고 북한에 갔다가 이후 탈북한 사람), 전(前) 조총련 관계자 등의 증언을 종합,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풀어낸 이 영화는 북송사업의 과정 및 결과에 대한 집요한 추적을 통해 북한 체제에 내재된 폭력성을 폭로한다.

‘지상낙원’을 꿈꾸며 북조선을 찾아간 재일조선인에겐 ‘째포·반쪽발이’란 차별과 북한 당국의 집중 감시만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정은주 감독은 14일 데일리NK에 “우연한 기회에 북송사업과 재일조선인 문제를 알게 됐다”면서 “10만 명에 가까운 분들이 평생 가족을 마음대로 볼 수 없이 살아가야 했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더 안타까웠던 점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중요한 사실을 모른다는 것이었다”고 제작 배경을 밝혔다.

이어 정 감독은 “우리 사회에 정착하신 탈북민 모두가 ‘분단과 이산’이란 한반도의 슬픔을 대변하는 산 증인들”이라면서도 “특수 경험 탈북자로 포함돼 그동안 심층적인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던 북송재일조선인들의 삶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분단을 넘어 통일을 준비하는 우리들의 자세라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북송사업 가족들, 상흔 현존…가해자 북한뿐만 아니라 韓日 정부도 침묵으로 일관

“북한에 있는 여동생으로부터 마지막으로 온 편지가 있다. ‘남편이 심장병으로 올해 1월 20일에 세상을 떠났는데, 남포에 있는 부모의 묘지에 같이 묻었다. (돌아가신) 부모님도 많이 생각나고, 언젠가 부모님 묘지에 오빠랑 갈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다’는 내용이었다. (중략) 이것이 귀국 사업의 원점이다.”

지난 4월, 제작진이 일본을 방문했을 때 전(前) 조총련 관계자 이달완 씨가 남긴 말이라고 한다. 당시 조총련 나가노현 지국장이었던 이 씨는 반(反)인도적인 북송사업의 실체를 알기 전까지 사업 성공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했다. 일본 각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북송선을 탈 재일조선인을 모집하는가 하면 주도적으로 북한당국 및 조총련의 선전을 확산시키는 활동을 했다. 그 과정에서 이 씨의 아버지와 여동생도 북송선을 탔다.

조총련 간부 교양 사업의 일환으로 북한을 몇 차례 방문하기도 했던 그는 “여동생 집에 방문하면 항상 노동당 간부가 배석했다”면서 “여동생들은 나를 보고서도 마음껏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눈빛으로 (여동생들이) 불행함을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결과적으로 그(여동생)들의 불행, 더 나아가 많은 재일조선인들의 불행에 내 책임도 크다고 생각한다”면서 말을 잇지 못했다.

이 씨의 아버지와 여동생처럼 북송선을 탔던 재일조선인들 9만 3000여 명과 그의 가족들은 여전히 ‘이산’이란 분단의 상흔을 갖고 있다. 문제는 ‘북한은 지상낙원’이라는 허위 선전에 속아 북송선에 올랐던 그들에게, 그 누구도 보상은커녕 사과조차 하고 있지 않은 현실이다.

또한 반(反)인도 범죄’를 저지른 북한 당국과, 북한 당국과 연계해 조직적으로 북송사업을 뒷받침한 조총련, 또한 북송사업에 적극 가담한 일본 정부 등은 과거의 과오를 인정하지 않은 채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재일조선인의 북송을 저지하지 못했던 한국 정부 역시 묵묵부답인 것은 마찬가지다.

특히 11년 만에 국회를 통과해 지난 9월 4일 본격 시행된 북한인권법에서는 북송재일조선인들의 북한 내 인권유린 피해 실태조사 등에 대한 단초조차 마련되지 않았다.

이와 관련 황재일 통일아카데미 연구위원은 “2014년 공식 채택된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의 보고서 3장에는 국제납치, 강제실종 관련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 부분에 북송재일조선인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면서 “그럼에도 한국의 북한인권법은 이를 전혀 다루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이 내용이 들어갈 수 있는 여지조차 없게 만들었다”고 꼬집었다.

이어 황 연구위원은 “북송재일조선인 문제는 (유인)납치에 관한 북한의 행위로 이는 인도에 반하는 죄다. 국제관습법상 처벌이 가능하고 계속적인 법률위반(ongoing violations)을 구성하고 있다”면서 “국제형사재판소의 기소가 가능한 중대 범죄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