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규탄’ ARF성명, 사드 논란에도 대북공조 건재 보여줘”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외교장관회의에서 북한의 4차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등 도발 행위를 규탄하고 유엔 안보리 결의의 준수를 촉구하는 내용의 의장성명이 채택됨에 따라, 동맹국들의 북한 비핵화 의지와 대북 압박 공조가 여전히 건재하다는 게 재확인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회의서 5차 핵실험 가능성까지 시사하면서 위협적인 태도를 낮추지 않았던 북한에게도 강력한 경고 메시지가 됐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중국이 사드에 대한 반발과 함께 남북한 외교정상을 대하는 데 상반된 모습을 보인 데다 북한의 우방국인 라오스가 이번 ARF 의장국이라는 점 등으로 인해 자칫 이번 ARF에서 나온 움직임이 대북 공조를 흐리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지만, 결과적으로 국제사회의 대북 공조가 좀처럼 흔들리지 않을 만큼 견고하다는 걸 보여준 셈이 됐다. 이에 따라 향후 외교에 있어서도 대북 공조를 지속·유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필요하다는 제언도 나온다.

이번에 채택된 의장성명은 우선 올해 초 있었던 북한의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 지난 9일 이뤄진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발사와 관련해 구체적인 날짜까지 적시하며 한반도 상황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 이와 함께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아세안 측의 지지와 북한의 안보 결의 준수를 촉구하는 내용도 포함됐으며, 6자회담의 조속한 재개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공동의 노력도 경주될 것이란 입장도 기재됐다.

특히 작금의 한반도 상황에 대한 우려를 표한 점,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아세안 차원의 지지 등이 새롭게 추가된 것으로 알려졌다. ARF가 열린 현지서 외교부 당국자들도 “우리가 포함시키고자 추진해왔던 사항들이 모두 반영된 매우 좋은 문안으로 평가한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이로써 국제사회의 대북 압박 공조는 주변국들 간의 이해관계로 불거지는 별도 사안들과는 별개로 지속 추진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특히 북한이 튼튼한 대북공조 상황을 직접 지켜봤다는 점에서 핵 도발과 위협에는 고립뿐이라는 국제외교의 냉혹한 현실을 깨닫게 됐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김성한 고려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데일리NK에 “이번 ARF를 통해 한국과 미국, 일본은 물론 동남아 지역과 호주, 뉴질랜드, 인도 등을 포함한 광범위한 동맹 네트워크가 우리의 생각 이상으로 공고하다는 게 입증됐다”고 분석했다.

김 교수는 이어 “특히 북한은 자신들이 국제무대에 나와 대한민국을 외교적으로 압박한다든지, 국제공조를 흐트러뜨리기에는 아직 역부족이라는 걸 느꼈을 것”이라면서 “이번 ARF를 통해 국제사회가 여전히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을 엄중한 사안으로 생각하고 있고 이에 강력히 제재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셈이기 때문에, 북한으로서는 자신들의 전술, 전략이 제대로 추진되지 않고 있다는 걸 깨달았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향후 한국 외교가 국제사회의 대북 공조를 지속, 유도해가는 과정에서 주변국들과의 소통을 긴밀히 하되 지나치게 부차적인 사안을 우려해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지는 말아야 한다는 제언도 나온다.

실제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성명이 도출된 직후 “북한 등 일부 국가가 집요하게 사드 배치를 비난하는 문구를 포함하기 위한 시도를 했지만 관련 양자접촉과 문안교섭을 통해서 반영되지 않도록 했다”고 귀띔했다. 여기서 ‘일부 국가’란 중국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결과적으로 중국 역시 사드를 성명에 포함시키는 데에 적극적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대북 압박 내용을 넣는 데 있어 크게 반대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이와 관련 박영호 강원대학교 초빙교수는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사드 배치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전하는 과정에서 외교적 제스처가 지나쳤다는 평가가 나왔지만, 그런 것들에 일일이 너무 민감해 할 필요는 없다. 그것이 중국식 외교 스타일”이라면서 “오히려 중국도 사드 문제를 성명에 담기 위해 지나치게 나갔다간 역효과가 난다는 걸 알았을 것”이라고 풀이했다.

박 교수는 또 “이번 ARF를 앞두고 의장국이 라오스라는 점을 들어 북한 문제에 대해 우리가 기대하는 수준의 성명이 나오지 않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많았지만, 상식적으로 의장국이라고 해서 성명 도출에 큰 영향을 끼칠 수는 없다”면서 “북한과 우방국 관계라 할지라도 국제사회의 대북 공조가 이뤄지는 상황 속에서 마냥 북한 입장을 반영해줄 수는 없는 게 아닌가. 그런 우려는 원래부터 지나쳤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익명을 요구한 외교 전문가도 “사드를 비롯해 여러 문제에 있어 현 정부의 입장을 지지하든 안 하든, 향후 대북 공조를 유지해가는 데 있어서는 북한이 국제사회의 규범을 위반했는지 안 했는지를 면밀히 따져 이에 징벌을 내리는 식으로 간다는 데 인식을 같이 해야 할 것”이라면서 “주변국의 상황을 살피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지나친 우려로 일희일비하는 건 적절치 않다. 주변국과의 관계를 잘 풀어나가면서도 대북 공조만큼은 일관되게 지속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필요할 것”이라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