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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장엽 주변인사들이 전한 그의 '진실과 오해'

[서거1주기]황장엽 혼외 자식 소문 대표적 악성루머…DJ시절 사실상 감금돼
김용훈 기자  |  2011-10-11 08:46



▲故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의 1997년 입국 당시 모습, 2009년 사무실 개소식 환영사때 모습, 2010년 영정사진(왼쪽부터)./데일리NK (자료사진)

고(故)황장엽 전 북한민주화위원회 위원장(전 북한 노동당 비서)은 남한 망명 생활 13년간 북한체제의 허위와 진실을 세계에 알리고 후계 양성에 힘쓰는 등 북한민주화운동에 큰 족적을 남겼다. 그러나 학자적 기질로 인해 직접적인 언론 노출을 자제했던 행보 때문인지 그와 관련된 헛소문과 억측도 많다. 황 위원장 서거 1주기를 맞아 최측근들의 증언을 통해 그를 둘러싼 오해와 진실을 풀어봤다.  

오해①: 독재사상 만들어 유일수령체제 수립에 적극적으로 공헌했다?

황 전 위원장이 망명한 이후 탈북자 사회를 비롯해 일부 인사들 사이에선 그가 북한의 사상이론 담당 비서를 오랫동안 해왔기 때문에 '김일성 수령절대주의' 형성을 주도해왔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하지만 황 위원장이 북한에서 정립했던 주체사상의 기본 이론과 김일성 수령절대주의의 핵심 이론은 근본적으로 대립되는 개념이라고 측근들은 말한다. 

황 위원장은 당시 '사회적 존재인 사람은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을 갖는 존재이며, 객관세계(世界)의 변화발전은 사람을 주체로 하는 운동'임을 주장했으나, 북한은 이를 '사람은 수령의 지도(指道)를 옹호 관철해야만 자주적인 존재가 된다'는 논리로 바꿔 놓았다. 따라서 철학가로서 황 위원장은 자신의 연구성과가 김일성·김정일 수령절대주의로 악용되는 수모를 겪었다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북한의 주체사상은 1966년 제 2차 노동당 대표자회를 계기로 김일성에 대한 개인숭배 도구로 활용된다. 1967년 김일성을 반대하는 세력들을 숙청하기 위해 시작된 5·25교시 이후 개인숭배의 강도가 강화돼 수령절대주의가 확립되는 계기가 된 것이다.

김영환 북한민주화네트워크 연구위원은 "김일성 사상은 스탈린주의에 민족주의의 외피만 살짝 입힌 것에 불과하며, 수령론은 60년대 후반부터 김영주(김일성 동생), 김정일이 만들어낸 것"이라고 말했다. 

김 연구위원은 "주체사상에서 김일성의 민족공산주의와 주체철학, 수령론 이 세 가지는 논리적 연결구조가 전혀 없다"면서 "수령론은 김일성의 개인독재와 수령절대주의를 합리화하기 위해서 도입한 것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주체사상은 황 전 위원장이 만들었지만 김일성, 김정일은 철학 자체에 관심이 없고 정치적으로 어떻게 이용하면 좋을 것인지에만 관심을 두고 있었다"면서 "황 위원장은 당시 김정일과 김일성이 주체사상을 옹호해주니까 김일성을 좋게 생각할 수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따져보면 사기를 당한 셈"이라고 덧붙였다.

오해②: 김정일 폭정에 저항 한 번 안 하더니 한국에 와서야 북한민주화 주장?

황 위원장은 남한에 망명한 탈북자들 중에 최고위층 인사다. 1954년 김일성종합대학 철학강좌장을 시작으로 김대 총장 14년, 최고인민회의 의장 11년, 조선노동당 비서 18년 등 화려한 경력을 갖고 있었다. 망명 직전에는 노동당 국제담당비서로서 전 세계를 돌며 주체사상 전파에 힘썼다. 일부 탈북자들이나 친북세력들은 그의 이같은 이력을 거론하며 "북한에서 고생 한 번 안 하고 김일성·김정일에게 아부하며 호의호식하다 한국으로 망명했다"고 반발한다.

그러나 황 위원장은 김정일이 후계자로 입지를 다져갈 무렵인 1975년부터 북한경제가 어려움을 겪게 된 이유를 군수경제를 앞세운 김정일의 경제정책 때문이라는 비판의식을 갖고 있었다.

그는 회고록에서 "김정일은 자기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정권을 장악하기 위한 권모술수에는 능했으나 나라를 실속 있게 꾸려나가지는 못했다"면서 "무엇보다 잘못된 것은 개인우상화 수준을 높이려는 그릇된 정치효과를 우선시하면서 경제건설에 나선 점"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때 황 위원장은 북한이라는 사회가 김일성과 김정일에 의해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직시하면서 북한이 개혁개방의 길로 가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당시 개혁개방을 주장하는 간부들이 숙청당하기 일쑤였기 때문에 지켜보는 수준에 그친다.

그는 최고위층으로서 일반 주민보다 호화로운 삶을 누릴 수 있었겠지만, 1990년대 중반 북한에서 250여만 명의 아사자가 발생하는 것을 확인한 후 지체 없이 망명길에 올랐다. 

특히 그가 가족들의 희생을 뻔히 예상하면서까지 남한 망명을 택했다는 점은 자신과 친족들의 안위만 챙기는 북한 고위층의 행태와는 거리가 멀다는 지적이다. 그는 망명 당시 베이징에서 부인 박승옥 씨에게 쓴 유서에서 망명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고통스러운 심경을 밝혔다. 

그는 "만일 조선노동당이 지금의 비정상적인 체제를 버리고 개혁개방을 하고 평화통일을 지향한다고 공개적으로 선포한다면, 비록 그것이 나를 속이기 위한 술책이라 하더라도 나는 평양으로 돌아가 가족들의 품 속에서 숨을 거두고 싶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생이별을 한 이 아픈 가슴을 이겨내며 내가 얼마나 더 목숨을 부지할지는 알 수 없으나 여생은 오직 민족을 위하여 바칠 생각이다"면서 "나 개인의 생명보다는 가족의 생명이 더 귀중하고 가족의 생명보다는 민족의 생명이 더 귀중하며, 한민족의 생명보다는 전 인류의 생명이 더 귀중하다는 내 신념에는 변함이 없다는 것만 알아주기 바라오"라고 읍소했다.

황 위원장의 망명 자체는 북한 내부에서 김정일 정권을 뒤흔든 가장 큰 사건이었다. 김정일은 간부들의 동요를 차단하기 위해 이후 3~4년간 간부교양에 힘을 소비했다고 한다. 한국 및 국제사회는 황 위원장의 증언을 통해 북한내부 상황을 심층있게 파악할 수 있게 됐다. 
 
오해③: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비호 아래 안락한 삶을 살았다?

황 전 위원장은 망명한 이후 13년동안 줄곧 경호 문제로 제약된 생활을 해야 했다. 특히 대북 햇볕정책을 내세웠던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경호문제'를 핑계로 '김정일 정권에 대한 원칙적 대응'을 주장하던 황 위원장의 공개활동을 사실상 가로막았다는 것이 지인들의 전언이다.

특히 김대중 정부 시절에는 황 위원장의 미국과 일본 방문을 완전히 봉쇄하기도 했다. 박관용 전 국회의장은 "지난 DJ-노무현 정부 시절 아무런 활동도 할 수 없었다"며 "(남한으로)모셔온 한 사람으로서 대단히 죄스럽게 생각한다"고 안타까운 심경을 밝혔다.

한국 생활 초기 측근이었던 김덕홍 씨 등이 미국 망명을 제안했을 때도 "북한민주화 투쟁의 근거지는 미국이 아니라 한국"이라며 거절했다. 이후 국내 탈북자들과 연구자, 대학생들에 대한 교육사업에 힘을 쏟았다.  

황 위원장에 대한 과거 정부의 태도는 '방치' '통제' 정도가 아니라 사실상 '협박' 수준이었다는 주장도 있다. 황 위원장의 한 측근 "한 번은 북한에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황 위원장의 직계 가족으로부터 직접 전화가 온 적도 있었다"면서 "몇몇 사람만 알고 있던 황 위원장의 휴대폰 번호가 어떻게 유출됐는지 지금도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고 말했다.     

오해④: 남한에 와서 내연녀 사이에 아들도 낳았다?

황 전 위원장이 서거했을 당시 일부 언론에서 그에게 여자와 아이가 있었고 경호 문제로 미국에서 살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는 우리 저널리즘의 취약성을 드러낸 사안이기도 했다.

황 전 위원장의 측근에 의하면 황 비서는 망명하기 전 이미 북한에서 정관수술을 받아 아이를 가질 수 없다. 이같은 소문이 돌자 황 전 위원장은 측근에게 "나의 여자와 애가 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나는 애를 가질 능력이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런 소문이 나돈 이유는 황 전 위원장의 가정부 역할을 했던 여인 때문인 것으로 전해졌다. 황 전 위원장에게 내연남 사이에 낳은 아이의 입적(入籍)을 부탁했으나, 거부당하자 소문을 냈다는 것이다. 안보당국은  황 전 위원장의 정관수술 사실과 DNA 자료를 통해 이 같은 소문이 루머라는 내부 입장을 정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해⑤: '황장엽 암살조'는 정보당국의 자작극이다?

일부 친북단체들은 북한이 '황장엽 암살조'를 파견한 것을 두고 우리 안보당국의 '역공작'이라는 주장을 펼치기도 한다. 이명박 정부가 정치적 곤경에 처할 때 마다 '북한의 호전성'을 부각시켜 국면전환을 노린다는 것이다. 북한 대남 선전매체가 이런 주장을 펼치자 일부 친북단체들이 거들기에 나서기도 했다.

2008년 여간첩 원정화 외에도 2010년에는 북한 정찰총국이 암살조를 '위장 탈북자'로 한국에 들여보내기도 했다. 평소 황 위원장이 탈북자들에 대한 교육과 지원 사업에 많은 시간을 할애 했던 것에 착안한 것이다.

안보당국의 한 관계자는 "황 위원장이 쉬지 않고 수십여 권의 서적을 집필하고, 탈북자, 대학생, 정치인들을 상대로 북한의 실태를 고발하는 강연을 이어가는 것에 대해 북측은 꽤나 괴로웠을 것"이라며 "황 위원장의 건재가 잠재적으로 북한 중하급 간부들에게 반체제 인식을 심어줄까 두려웠던 것 같다"고 분석했다.    

황 위원장의 한 측근은 "사실 북한의 선전매체들은 황 위원장을 '늙은 변절자' 정도로 취급해 왔다"면서도 "그러나 2008년 김정일 와병 이후 국내외 언론이 황 위원장을 북한 재건 주역으로 꼽기 시작하자 정찰총국 등이 '실력행사'에 나섰던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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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티콘 허허허

황선생님의 과거사가 어쩄던!!!
어떤 과정을 통해서 통일이 되든!!!

민족사에 큰 역활을 하신분이다!!!... 시대를 못 만났을 뿐!!!
김영삼.이회창의 갈등이나, 김대중.노무형정권의 연속이나!!!...

다시 한번...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수정 | 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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