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양실조에서 北주민 구하는 ‘민간 보양식’

토끼곰이나 닭곰, 염소엿 등으로 대표되는 북한의 보양식은 북한 주민들의 여름나기에 큰 도움을 주지만 실제 여름철 보양만을 위해서 애써 키운 가축들을 섣불리 잡지 못하는 형편이다.

탈북자들에 따르면 가족이 영양실조로 쓰러졌다거나 결핵 등의 질병에 걸렸을 경우 재료비도 거의 들지 않고 요리하기도 간편한 ‘민간보양식’을 만들어 먹는 경우가 더 많다.

이러한 민간 보양식은 찹쌀, 계란, 콩기름, 팥 같은 기본 재료들의 간단한 조합으로 만들어진다. 탈북자들은 민간 보양식이 토끼곰이나 염소엿처럼 영양분이 풍부한 것은 아니지만, 위급상황에는 큰 도움이 된다고 입을 모은다.

평안북도 출신 탈북자 김영순(45) 씨는 “영양실조 구제용으로 돼지 살코기, 꿀이나 옥수수 엿 1kg, 기름 1kg, 찹쌀 1kg, 붉은 팥 1kg을 넣어서 끓여 먹었다”며 “봄에는 영양이 부족해 펠라그라(옥수수가 주식인 지방에 유행하며, 위장장애를 유발하는 병)에 걸리기 쉬워 남편에게 (이 요리를)해줬다”고 회상했다.

이어 김 씨는 “우리 집은 형편이 나쁘지 않았는데도 1년에 한번 정도 밖에 먹을 수 없었다. 어려운 사람들은 구경하기도 어렵다”고 덧붙였다.

한남수 북한인권탈북청년연합 대표 역시 민간보양식을 자주 먹었다고 한다. 한 대표는 “호박씨 껍질을 벗긴 뒤 가루로 만들어 따뜻한 물에 타 먹으면 굉장히 달콤하다. 기운이 없을 때 먹었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백화성 북한인권탈북청년연합 홍보국장은 “군 복무 당시 몸이 너무 허약해져 부모님이 면회를 오신 적이 있다. (나 말고도)대부분의 군인들이 영양실조에 시달렸다. 부모님이 어린이용 영양제를 어렵게 구해 와 그것을 먹었다. 외국에서 지원해 준 영양제였다”고 힘들었던 군 복무 시절을 떠올렸다.

백 국장은 또한 “일반 호박과 다른 동글동글한 약호박의 속을 파내고 꿀과 마늘 등을 넣어 쪄 먹은 적도 있다”고 덧붙였다.

혜산 출신 한 탈북자는 “10년 전 삼촌이 군대에서 뼈만 앙상하게 남아 돌아왔다. 걷지를 못해 사람들이 업고 들어올 정도였다. 당시 일곱 식구 빠듯한 살림이라 좋은 음식을 먹이지는 못하고 기름, 꿀, 달걀, 찹쌀을 섞은 약과를 먹였다”고 회상했다.

그는 “(삼촌이)처음엔 약과 1kg를 보름에 걸쳐 먹더니, 나중엔 3kg를 열흘 만에 먹어치우더라. 두 달이 지나니 몸에 살도 확 붙었다. 우리는 복날에도 이 약과를 먹었다”고 말했다.

▶탈북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약과’ 조리 과정을 그대로 재연한 사진



▲약과 제조과정①-흑설탕 300g, 찹쌀가루 300g, 계란 4개, 콩기름 한컵을 넣는다. /김봉섭 기자


▲약과 제조과정②-①의 재료들을 골고루 섞어준다. /김봉섭 기자



▲약과 제조과정③-약과가 담긴 그릇을 물에 담그고 약한 불에 20분간 끓인다. 가스렌지가 없는 북한에서는 따뜻한 부뚜막에 이틀간 올려둔다. /김봉섭 기자



▲약과 제조과정④-찹쌀가루가 기름을 다 흡수하고 나면 약과가 완성된다. /김봉섭 기자



▲약과가 차려진 한상. /김봉섭 기자

박주홍 경희서울한의원장(한의학박사·의학박사)은 이 약과의 성분에 대해 “설탕에는 포도당이, 계란에는 단백질과 불포화지방산이, 찹쌀가루에는 탄수화물이, 콩기름에는 단백질이 함유돼 있으므로 3대 영양소가 고루 들어있다고 볼 수 있다”며 “이 3대 영양소가 포도당을 만나면 일시적으로 에너지를 낸다. 기력회복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박 원장은 “북한 주민들이 오랜 경험을 통해 자연스레 체득한 보양식인 듯하다. 북한 주민들의 슬기가 엿보인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