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배급은 기대하지도 의지하지도 않는다”

2011년 5월. 데일리NK 특별취재팀이 북중 접경지대에서 만난 북한 주민들은 하나 같이 “먹고 살기 바쁘다(힘들다)” “하루하루 버티는 게 일이다”라고 말했다. 어느 누구하나 식량 상황이 좋다고 말하지 않았다. 북한 주민들은 후계자 김정은에도, 북중 경제협력에도 당초 관심이 없다. 오로지 화두는 딱 하나 ‘식량’이었다.


북한 일반 주민들 중에 국가 배급에 의지하는 사람은 극소수에 해당하는 특별공급대상자 뿐이다. 공장 노동자 월급은 2000~3000원으로 쌀 1kg을 사면 끝이다. 그래서 생계수단은 장사가 제일이다. 이 외에도 개인 농사, 약초 캐기, 사금 채취, 품팔이, 탈북가족들이 부쳐주는 돈으로 살아간다.


주민들은 살기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저녁이 되면 암흑 세상이 되는 북한 들판에서 주민들은 생존을 위해 소리 없이 움직인다. 이마저도 못하면 ‘똑똑치 못한 인간’이라는 손가락질을 받는다. 이러한 생존을 위한 투쟁 때문에 만성적인 식량난에도 주민들은 삶을 이어가고 있다. 


만성적인 식량난과 생존을 위한 투쟁이 이어지면서 북한 내에는 각종 사회문제들이 만연하고 있다. 식량문제는 각 개인들의 비(非)사회주의 행위, 가정해체, 꽃제비, 자살, 우울증, 노인문제, 밀수, 탈북, 마약 확산 등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체제 불안’ 우려로 개혁·개방을 꺼리고 있는 북한 정권의 경직성이 오히려 체제 불안을 키우는 역설적인 현상을 초래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북한, 지금 배급 상황은?=올해 3월 WFP∙FAO∙UNICEF 합동 조사단은 북한 현지 식량 사정을 조사해 발표한 보고서를 통해 북한의 식량 재고는 춘궁기에 해당되는 5~7월 사이 바닥날 것으로 추궁했다. 이들은 보고서에서 “1천6백만 명의 사람들이 식량 필요량의 대부분을 배급 시스템에 의존하고 있어 우려된다”면서 “북한 주민들의 대처능력이 없다”고 주장했다.









▲WFP/FAO/UNICEF 합동조사단의 ‘북한식량사정 긴급조사 보고서’ 실린 ‘북한 2010/11년도 식량배급 시스템 계획배급량, 소비량, 재고량’./합동조사단이 입수한 북한 자료


북한 당국의 협조 아래 식량 실태를 조사한 합동조사단은 북한 정부가 전 주민들에게 작은 양이지만 배급을 계속하고 있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국제사회가 식량 원조를 해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다.


그러나 특별취재팀의 인터뷰 결과 배급을 받는 주민들은 극히 일부였다. 대다수의 주민들은 식량을 확보하는 수단으로 장사에 나서거나 개인 농사를 짓고 있었다. 이들에 따르면 배급체계는 마비된 지 오래고 심지어 농사를 짓는 협동농장 농장원들도 몇 달 치 분량에 해당하는 식량을 분배 받았다. 한 농장원은 “작년에 농사를 지었지만 4인 가족이 150kg(정미 이전 상태)밖에 분배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협동농장 농장원을 포함해 도시 노동자와 주민들은 대부분 자생적으로 생존하고 있는 셈이다.  취재를 통해 만난 북한 주민들의 80%가 “배급은 끊겼으며 국가의 배급은 기대하지도, 의지하지도 않는다”고 증언했다.


중국 훈춘(琿春)에 거주하고 있는 북한 경원군(舊새별군) 출신의 탈북자 김영호-이인숙 부부는 “탁아소에서 우리 아이들 앞으로 겉곡 40kg을 제공해 주는데, 이것으로 1년을 먹고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평양 제지공장 노동자 홍난희 씨는 “2·16, 4·15 같은 특별한 날에 간혹 배급을 줄 때도 있지만, 공장 자체가 돌아가지 않으니 배급이 나오질 않는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장사를 한다”고 말했다. 


실적이 좋은 기업소나 공장에서 일하는 주민들은 배급을 어느 정도 받는 편이다. 강원도에서 나온 40대 여성 당원 이영실 씨는 “기본적으로 생산단위는 배급을 비교적 잘 주는 편이지만, 배급량은 해당 기업소나 공장이 얼마만큼의 생산을 했느냐에 따라 정해진다”면서 “공장이나 기업주의 수완에 달린 셈이다”고 말했다.


국경경비대는 다른 곳에 비해 배급 우선 순위에 들어가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양호하다고 볼 수 있지만 역시 식량 부족에 시달리고 있었다.


북한 국경경비대 사관장(특무상사-중대마다 식량, 피복, 물자 공급을 담당하는 간부)으로 근무하고 있는 이영환 씨는 “경비대는 안락미와 통 강냉이 등 하루 700g의 주식을 비롯해 건빵과 사탕 같은 200g의 부식을 제공 받는다”라면서 “그렇지만 항상 배고픈 상황이기 때문에 눈이 트인 자들은 밀수 등 여러 통로로 살 방도를 생각해 낸다”고 말했다.


이 씨는 면담자들 중 유일하게 남한의 지원식량을 받아봤다고 했다. 대한민국적십자사라고 표시된 마대자루는 대부분 교체되지만 일부 그대로 오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지원식량이 군대로 전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간접 확인할 수 있었다.


▶ 北 주민 식량난 면역력 커져=식량 공급상황이 최악인 상황에서 북한 주민들은 국가 배급 의존에서 벗어나 개인 농사, 밀수, 부동산, 부업, 탈북 등 나름의 생존 방식을 익히고 면역력을 키워왔다. 이미 주민들 사이에서는 스스로 알아서 먹고 살아야 한다는 의식이 팽배해 있다.



그들은 비록 강냉이 밥이지만, 적어도 하루에 2~3끼를 챙겨 먹고 있었다. 몇몇 사람은 간간이 소량의 쌀밥을 먹고 있다는 증언도 했다. 또한 주변에 아사자가 있었냐는 질문에는 “그런 사람이 있다”는 말을 전해들은 수준이었다. 실제 아사자가 많지 않다는 정황이다.


신의주 밀수업자 임성태 씨는 “사람들이 각성돼서 옛날 고난의 행군 당시보다 낫다. 고난의 행군 때 고지식했던 사람들은 모두 죽었다. 그때 살아남은 사람들이 우리들이다”라면서 “조선에 사는 사람들은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라는 암묵적인 구호아래 살고 있다”고 말했다.


이영실 씨는 평등하지 못한 배급에 불만이 없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어쩔 수 없다. 스스로 벌어먹고 살 도리 밖에 없다”며 무덤덤하게 답했다.


그러나 화폐개혁 이후 장사마저 신통치 않다. 최근 북한을 방문하고 돌아온 중국인 대북 무역업자 박영민 씨는 “길거리에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돼지고기, 인조고기 이런 것들 조금씩이라도 가지고 나와서 팔려고 한다. 그런데 사는 사람은 거의 보지 못했다. 검열이 나오면 물건을 들고 뛰는 사람들로 정신이 없다”고 설명했다.


농촌 지역에서는 개인농이 성행하고 있는데, 주변 주민들과의 마찰을 피하기 위해 자기 땅을 표시해 놓는다고 한다. 김영호-이인숙 부부는 “주변에 산이 없어서 30리 떨어진 산에 남편이 조그맣게 집을 지어놓고 (농사를 하며) 산다. 도둑이 많다”면서 “그 산간을 개간해 놓으면 사방에서 사람들이 농사를 지으러 몰려온다. 어떻게 해서든 몇 년 간 농사를 하며 버티면 우리땅이 된다. 경계가 이상해질 때는 나름의 표식을 해놓는다”고 말했다.


한 협동농장 농장원은 “5, 6월이 되면 쌀이 바닥나기 때문에 농장에서 도둑질해서 남새도 팔고, 밤에는 물고기를 잡아 팔아서 쌀을 사먹는다. 붕어도 잡히고 메기도 잡힌다. 비가 올 때는 하루에 상당히 많은 양의 물고기를 잡기도 한다”고 증언했다.


권태진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부원장은 이 같은 북한의 식량 실태에 대해 “8백만 명 정도의 협동농장원들은 배급이 끊겨도 자체적으로 식량 조달을 할 수 있다고 평가한다. 나머지 1천6백만 명의 주민들은 배급이 끊기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도 “하지만 북한의 식량 문제는 10년 넘게 만성화 된 상태이므로 주민들은 장마당이나 기타 방법을 통해 식량을 얻고 있다. 배가 고프지만 ‘고난의 행군’ 시기처럼 아사자가 발생하지 않는 것은 주민들이 스스로 대처를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 北주민 ‘생존투쟁’ 사회문제로까지 비화=북한 주민들의 ‘바쁜’ 삶은 사회문제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식량을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 애를 쓰기 때문에 가정을 신경 쓸 수 없다. 집안에 노인이나 어린아이들이 있으면 방치되기 일쑤다. 가정해체 현상도 무시할 수 없다.


세대주는 가동이 멈춘 공장이지만 출퇴근 도장을 찍기 위해 매일 출근을 해야 하고, 다른 동원 임무에까지 참여해야 한다. 여성들은 장마당에 나가 물건 팔기 바쁘다. 그러다 보니 사회적 약자들을 돌볼 겨를이 없다.






압록강변에서 북한 주민들이 선박에 물건을 적재하고 있다./데일리NK 특별취재팀


북한 주민들은 특히 노인문제가 심각하다고 지적한다.


김영호-이인숙 부부는 “사람이 바쁘게 되면 주변을 일일이 챙기기 힘들다. 그래서 노인들이 길가에서 죽는 일이 종종 생긴다. 건물 복도 같은 곳에서 쪼그리고 앉아서 죽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이 부부는 “(얻어 먹을 것 없나) 장마당을 돌아다니다가 굶어 죽는 노인도 생긴다”고 증언했다.


또한 중국에서 탈북자들을 지원하는 일을 하는 70대 조선족 이길자 씨는 “조선에서는 노인들이 제일 불쌍하다. 자식들은 식량 구하느라 바쁘니 자기 먹을 것은 자기가 구해야 한다”라면서 “자식들이 너무 힘들다 보니까 나가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또한 “조선에 동생이 살고 있는데 중국에 나왔을 때 생활고로 자신의 가족을 몰살시킨 목격담을 들려줬다”라면서 “식량이 부족한 상황에서 아이들이 배고프다고 우니까 세대주가 가족들을 모두 칼로 죽이고 스스로 목을 매달았다”고 설명했다.


생활고로 인한 가정해체 현상은 북한 내에서도 더이상 드문 일이 아니다.


함북 제지공장 전기수리공 진기택 씨는 “아버지가 유리공장 노동자인 가정이 있었는데, 그 가정은 고지식하게 세대주 공장노임만 받아 생활했다”면서 “그러다가 배급이 끊겨 식량이 떨어지자 아이와 엄마가 쥐약을 먹고 자살했다”고 말했다. 이 같은 가정해체 현상은 꽃제비 양산이라는 악순환까지 불러온다.


박영민씨는 “얼마 전 북한에 무역 관계 일로 방문했을 때 두 명의 꽃제비를 직접 목격했다”면서 “철길 옆에서 자고 있었던 아이들인데 5월에도 솜옷을 입고 있었고 옷 여기저기에 기름이 묻어있었다”고 말했다.


취재진이 압록강변을 방문했을 때에도 4명의 꽃제비들이 등에 넝마를 짊어지고 오른손에는 집게를 든 채 무엇인가를 수집하고 있었다. 당시는 늦은 오전으로 학생들의 경우 한창 수업을 받을 시간이었다. 이들은 땅을 응시하는 데 정신이 팔려 옆에서 지켜보는 취재팀의 존재조차 알아차리지 못했다.


돈벌이를 위해 마약이 확산되는 것도 식량난으로 파생된 사회 문제 중 하나다. 특히 약을 구하기 힘든 상황에서 마약을 치료제로 사용하면서 중독되는 현상까지 늘고 있다. 이번 취재에서 만난 북한 주민들은 당국 차원에서 ‘빙두(마약)특공대’가 구성돼 집중적인 단속을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확산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남포제철소 출신 여성은 “국가에서 발전소를 많이 만들기 위해 청년들을 동원하는데, 빙두를 피우고는 ‘아프다’며 귀가 조치를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3월부터 빙두특공대가 생겨 활동한다”고 말했다.


▲본 기획물은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아 제작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