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폐개혁 생각하면 머리가 거꾸로 돈다”






▲보안원에 항의하는 북한 주민의 모습을 촬영한 영상/제공=아시아프레스
이 사진은 2009년 아시아프레스가 북한 내부를 촬영한 동영상을 캡쳐한 것이다. 써비차(여비를 받고 장사꾼 등을 실어 나르는 트럭)에 타려는 여성을 보안원(경찰)이 제지하자 승객들이 집단적으로 이에 거칠게 항의하고 있다. 써비차는 명백한 불법이지만, 승객들은 이를 단속하는 보안원을 대놓고 비난한다. 


북한 주민의 사고방식은 이미 1990년대 중반 한 차례 큰 변화를 겪었다. 그 전까지는 정보통제와 김일성-김정일 우상화 정책으로 ‘공화국은 인민의 낙원’이라는 사고가 지배적이었다. 고(故)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는 “대아사 기간 굶어 죽으면서도 장군님 걱정을 할 정도로 사상적 노예상태였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국가배급이 중단돼 수백만 명이 굶은 이후, 2000년대 들어서 북중 국경을 통한 밀수와 장사가 보편화 됐다. ‘당이나 지도자보다 돈이 최고’라는 인식이 널리 퍼졌다. ‘통제 적응형 인간’이었던 주민들이 ‘자발적 생존형 인간’으로 바뀌게 됐다고 탈북자들은 말한다. 여기에 2009년 화폐개혁 실패가 주민들을 ‘사회 불만형 인간’으로 변화시킨 정황이 이번 취재결과 포착됐다.


▶식량난-화폐개혁 이후 민심이반 현상 가속화=중국 훈춘(琿春)에 거주하고 있는 북한 경원군(舊새별군) 출신의 탈북자 김영호-이인숙 부부는 이곳을 찾은 취재진에게 “요즘에는 단속하는 사람들이 심하게 나오면 따지고 멱살도 잡는다”고 말했다. 검열원에게 “야, 나 어떻게 살라고 그러나? 네가 나를 먹여 살려 줄 것인가?”라며 대든다는 것이다.


김 씨 부부는 북한주민들 사이에서 “왕(王) 도적은 주석단에 앉아 있다”는 말이 나돈다고 전했다. 일선에서 주민들을 단속하는 보안원과 보위원은 하수인에 불과하고 진짜 도둑은 평양 고위층이라는 비유적인 표현이다.


김 씨 부부는 체포되지 않는한 북한으로 돌아갈 의사가 없는 탈북자이기 때문에 발언이 비교적 자유로웠다. 그러나 무역을 위해 중국을 방문한 신의주 주민 임성태 씨도 화폐개혁 이후 주민들 생각이 바뀌었다는데 동의했다. 그는 스스로 “당원이며 국가의 혜택을 많이 받았다”고 말하면서도 북한체제에 대한 분노를 서슴없이 표출했다.


“화폐개혁 이전에는 나 같은 사람은 특별공급을 받았다. 때문에 바깥 세상 돌아가는 것을 어느 정도 알아도 국가에 감사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러나 화폐교환으로 돈을 많이 잃었다. 그거 생각하면 지금도 머리가 거꾸로 돈다”


임 씨는 “고난의 행군(1990년대 대아사기간을 부르는 북한 공식용어) 이후에 생활이 안정된 시기가 2005년이었다”면서 “장마당에서 먹고 살던 사람들이 피땀으로 번 돈을 화폐교환 때문에 날렸는데 (국가에 대해) 거부감을 갖지 않으면 거짓말이지. 누가 나라를 좋게 생각하겠냐”고 강조했다.


이어 “요즘 사람들은 의식이 깼다. 말로는 장군님 생각을 하지만 속으로는 생각이 다르다. 화폐교환이 된 다음부터 머리 사상이 180도 바뀌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대다수 주민들이 위장충성하고 있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다들 그렇다”라고 답했다.


북한 국경경비대 사관장(특무상사-중대마다 식량, 피복, 물자 공급을 담당하는 간부)으로 근무하고 있는 이영환 씨는 취재진에게 “옛날에는 ‘아’라고 이야기하면 다 ‘아’라고 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고 증언했다. 다만 최고지도부에 대해 불만을 갖느냐는 질문에는 답변을 머뭇거렸다.


그는 인터뷰 하루 전인 5월 27일 밤 밀수선을 타고 압록강을 넘었다. 새벽이 오기전에 돌아가야 하는 처지였다. 현역 군 장교가 국경을 넘어 한국사람과 만난다는 탓인지 긴장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 씨는 “조선이 워낙 힘들다. 한국이나 중국 소식 우리가 제일 빠른데 윗사람들을 좋게 생각하겠느냐”라는 말을 남기고 취재진과 작별했다. 


북한의 경제적 궁핍을 인정하면서도 당국에 대해 비판을 자제하는 입장도 발견됐다. 강원도에서 나온 40대 여성 당원 이영실 씨는 “국가에서는 백성들 보고 어떻게 살라고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푸념하면서도 “당원들은 사상이 정말 좋다. 지금 우리가 굶고 있으니 당원들이 나서서 국가의 어려움을 극복해야 한다고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씨도 화폐개혁 이후 북한 내부 상황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화폐개혁 이후에는 여론이 좋지 않다. (주민들이) 국가에 대해서 불만을 쏟아낸다. 안타까운 심정이라서 그렇다”면서 “체제에 대한 노골적인 불만은 아니다”고 덧붙였다.


친척방문을 목적으로 여권을 발급받아 중국 옌지(延吉)에서 취업해 돈을 벌고 있던 지성혜 씨는 우연히 취재진과 만났다. 기자가 ‘김정일’을 지칭하자, “김정일 동지”라고 부르라며 일장 찬양연설을 늘어놓기도 했다.


▶김정일 일가 비판 제외하면 불만 표출도 묵인=북한 공과대학 교수 출신인 김흥광 NK지식인연대 대표는 “아직까지는 북한에 민주화 바람이 불 정도로 의식이 성숙하지 못했다. 하지만 화폐개혁을 거치고 외부 문물이 들어가면서 스스로 삶의 처지를 깨닫고 있다. 국가가 배급을 줄 때는 국가 욕을 못했지만, 배급도 안 주면서 개인 돈까지 빼앗아갔으니 보위원들도 주민들의 ‘말’을 단속하기는 어려운 분위기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어찌됐든 화폐개혁 실패 이후 북한 당국에 대한 주민들의 직간접적인 비판이 크게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 주민들은 지하철이나 공공장소에서 ‘국가가 해준 게 뭐냐? 백성들이 배를 곯아도 신경도 안 쓴다’는 말을 공공연히 하고 있다고 한다. 북한체제에 대한 노골적인 비난이나 김정일 일가에 관한 정보를 거론하는 것을 제외하면 ‘현실불평’ 정도로는 체포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평성에서 장사를 하는 40대 여성은 “예전에는 가족끼리도 입조심을 했지만, 요즘에는 버스역이나 장마당에서 ‘국가가 하자는 대로 하면 될 일도 안 된다’ ‘국가에서 해주는 게 뭐 있나’ ‘배급도 안 주고 큰 소리만 치나’라는 정도는 말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박형중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사적인 대화이지만 공개적인 장소에서 국가에 대해 불만을 표한다는 것은 그만큼 주민들의 불만이 높고 단속자들도 이를 묵인하는 환경이 조성됐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화폐개혁은 중앙정부의 잘못이 뚜렷하기 때문에 그런 불만이 겉으로 나올 개연성은 충분하다”고 지적했다.








▲대한변호사협회가 발간한 ‘2010 북한인권백서’ 조사 내용


2010년 통일연구원 인권백서에는 ‘표현의 자유 침해’ 분야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기존의 북한 사회 연구에서는 아예 거론 할 가지조차 없을 정도로 암담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화폐개혁 이후 주민 불만 고조로 일부 정부 비판이 허용되고 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대한변호사협회가 ‘2010 북한인권백서’를 발간을 위해 탈북자 2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에서 응답자의 33%는 ‘의사 표현의 자유를 억압받는 것’을 가장 중대한 인권침해로 꼽았다. ‘말할 수 있는 자유’에 대한 북한 주민들이 의식변화가 감지된다.


계간 시대정신 김영환 편집위원은 이러한 추세에 대해 “북한 정부가 허용한 것은 아니고, 단속하는 책임자들조차 단속 실효성에 대해 불만을 제기하니까 그냥 방치하는 측면이 강하다”면서 “중앙정부의 행정 공백이 커졌다는 측면으로 봐야 한다”고 진단했다.


▶3대 후계세습-개혁개방 가능성 부정적 인식 많아=북한은 화폐개혁 이후 세 사람 이상이 한 자리에 모이는 것 자체를 금지했다고 한다. 불만이 집단화 되는 것을 경계한 북한 당국의 땜방식 조치였다. 


함경북도 제지공장 전기수리공인 진기택 씨는 “화폐개혁 이후 3인 이상이 모이지 말라고 했다”면서 “특히 장군님과 청년대장에 대해 말하는 것은 절대 금기 사항”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진씨는 “겉으로는 장군님에 대해 말하지 못하고 참지만, 백성들의 속 마음은 완전히 다르다”고 덧붙였다. 


평남 순천에서 장사를 하는 이영희 씨는 “장군님 현지지도 하는 것을 보면 천령(天領)을 넘고 줴기밥(주먹밥)을 먹으면서도 현지지도를 한다고 배운다. 그러니까 우리 장군님께서 저렇게 노고를 다 바쳐서 하는구나 생각을 만들자는 것인데, 좀 지식 있고 총명한 사람들은 속으로 다르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북한에서 장군님을 훼손하는 일은 용납되지 않는다”라면서도 “하지만 수령님(김일성은 인민을 첫째로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선군정치라 군대가 엄격하고 무섭다”고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인터뷰 대상자들의 체제관련 주요 발언>





































중국 훈춘 거주 부부  “왕도적은 주석단에 앉아 있다” 
前남포조선소 간부  “어린 아이(김정은)가 뭘 알겠나”
평성 40대 여성  “젊은 사람(김정은)이 뭘 하겠냐”
강원도 40대 여성  “장군님(김정일) 여론 좋다” “밑에 간부들이 잘못해 나라가 이 꼴”
평양 제지공장 노동자  “남조선은 잘 살고 우린 못산다. 나는 (김정일을) 좋아하지 않는다”
평남 덕천 농장원  “젊은 사람(김정은)이 배가 나와 게을러 보인다”
해주시장 약 판매상  “백성들은 무관심, 인텔리는 속으로 다른 생각”
함북 식품공장 노동자  “김정일에 대한 불만, 말도 못한다”
국경경비대 특무상사  “예전에는 ‘아’ 하라면 모두 ‘아’ 했지만 지금은 다르다”
신의주 40대 밀수업자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다. 나는 희망이 없다”
70대 중국 조선족  “화폐개혁 3일은 공산주의, 4일 만에 세습 봉건주의로 돌아와”


정보당국의 한 관계자는 최근 북한 내부 상황과 관련, “북한 간부들은 김정일과 한 배를 탔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북한 간부들이 김정은과 운명공동체 의식을 강하게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북한의 천안함, 연평도 도발에 대해 “김정은의 리더십 확보 차원”이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중국 지안(集安)에서 북한 주민을 돕고 있는 중국인 선교사 이길자 씨는 “김대장(정은)이 후계자로 지목되기 전에 여기(중국)에 온 북한 간부들을 만나보면 별 내색은 않지만 말 중간에 ‘그렇게야(3대 세습까지) 하겠는가’라는 말을 했었다”면서 “지금도 겉으로는 ‘청년대장을 받들어 모시는 영광 운운’하지만 사석에서는 ‘쉽지 않을 것이다’라는 말을 한다”고 전했다.


중국 선양(瀋陽)에서 만난 남포제철소 물자공급원 출신 김선화 씨는 “대놓고 말은 못해도 (후계자 김정은에게) ‘어린 아이가 뭘 알겠나’ ‘호의호식하면서 살아서 어떻게 하겠나’고 말한다”면서 “욕은 못하지만, 좋게 얘기하는 사람도 거의 없다”고 설명했다.


북한이 내세우는 ‘2012년 강성대국 건설’에 대해서도 실제 믿는 사람은 거의 없는 분위기다. “지금 굶고 있는데 내년에 뚝딱 강성대국이 된다니 누가 믿겠나”라는 반응이 다수라고 한다. 다만 국가차원에서 추진하고 있는 일이니 “일단 지켜보자”는 여론도 상존하는 것으로 보인다. 


인터뷰 대상자들은 북한의 개혁개방 선택 가능성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입장을 피력했다. 최근 확대되는 북중 경제협력도 실질적인 개방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많았다. 북한이 못사는 이유로 “(먹고 사는) 자유가 없어서”라는 의견도 있었다. 


▲본 기획물은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아 제작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