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전승철의 고군분투 서울 적응기 ‘무산일기’






▲’무산일기’의 한 장면./영화사 진진 제공


2만 탈북자들에게 한국사회는 ‘희망의 땅’이 될 수 있을까?


그동안 한국사회 정착에 성공한 탈북자들의 삶은 언론을 통해 많이 전해졌다. 북한출신 박사학위 취득, 1호 의사, 한의사, 교수, 공무원, 기자, 로스쿨 입학. 하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탈북자들의 이상적인 한국 적응 사례일 뿐이다.


실제 탈북자들의 많은 수가 ‘코리안 드림’을 성취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냉혹한 경쟁사회에 대해 환멸을 느끼고 적응 하지 못한 채 방황하는 탈북자들을 어렵지 않게 만나볼 수 있다. 최근 한국사회 적응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탈북자의 삶을 조명한 영화가 개봉돼 화제를 모으고 있다.


‘무산일기’는 함경북도 무산에서 내려온 전승철의 암울한 서울 적응기를 그리고 있다. 영화는 전승철이란 인물을 통해 탈북자들이 한국 적응 과정에서 겪게되는 어려움과 고통을 담담하게 풀어내고 있다. 


“잘 할 수 있습니다”


전승철이 입에 달고 사는 말이다. 전승철은 목숨을 걸고 한국 땅에 왔지만 ‘탈북자’라는 꼬리표 때문에 갖은 차별과 멸시를 받는다. 그의 직업은 벽보를 붙이는 일. 그 마저도 “벽보하나 제대로 못 붙이느냐”면서 주먹질 당하기 일쑤다. 제대로 일하지 못했다면서 일당마저도 떼인다.


탈북자들에게 부여되는 ‘125’로 시작하는 주민등록번호는 그에게 매번 좌절을 안겨 준다. 탈북자라는 사실을 굳이 밝히고 싶지 않아도 이력서에서부터 딱지가 붙여진다. 가까스로 같은 교회를 다니는 숙영의 노래방에 취직하지만, 그곳에서도 손님에게 실수를 했다는 이유로 쫓겨나게 된다.


또 다시 “잘 할 수 있습니다”를 연신 외치며 일자리를 구해보지만 탈북자인 그를 받아주는 회사는 찾을 수 없다. ‘희망’을 찾아온 전승철의 한국 적응기는 화려한 서울 야경과 달리 차갑기 그지없다.


영화는 승철과 그의 탈북자 친구 경철을 대비시키면서 승철의 순진하고 우직한 성격을 부각시킨다. 자본주의 문화에 요령 있게 적응한 경철과는 달리 승철은 정직하게 살면서 손해 보기 일쑤였다. 영화의 마지막은 승철이 한국 사회의 어두운 일면에 물들어 가는 모습을 씁쓸하게 그려낸다.


주인공인 전승철을 직접 연기한 박정범 감독은 학교 후배로 들어온 실제 탈북자 전승철과 가까워지면서 자연스럽게 탈북자들의 생활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한다. 박 감독은 평생을 전혀 다른 체제에서 살아온 탈북자들이 자본주의 사회에 적응하며 겪게되는 어려움을 영화로 표현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경철’역을 맡은 배우 진용욱 씨는 탈북자 연기를 능청스럽게 소화해냈다. 완벽한 북한 사투리와 억양을 구사해 실제 탈북자가 아니냐는 질문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전문 배우가 아닌 박정범 감독의 열연도 볼만하다.


‘무산일기’는 2010 부산국제영화제 뉴커런츠상, 2010 마라케쉬국제영화제 대상, 2011 로테르담국제영화제 대상, 국제비평가협회상, 2011 도빌아시안영화제 심사위원상을 받는 등 국내외에서 큰 주목을 받고 있다.


한국 영화계의 거장 이창동 감독이 “반드시 영화로 만들라”고 주문했던 ‘무산일기’. 오는 14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