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주민에 자유·인권 의식 심어줘야 통일 쇼크 피할 수 있어”



6일 북한인권정보센터(NKDB)와 콘라드아데나워재단, 과거청산통합연구원이 공동 주최한 ‘통일 전후 내독국경지대의 변화 – 한반도에 주는 교훈’ 세미나에 참석한 발표자들이 발언하고 있다. / 사진=김가영 기자

‘아래로부터의 통일’ ‘평화 통일’의 선례(先例)로 여겨져 온 독일 통일을 직접 경험한 전문가들 사이에서 남북한 체제가 하나로 통합되는 과정에서 나타날 사회적 혼란에 대비하기 위해 대북 정보 유입과 역사 교육이 선행돼야 한다는 주문이 나왔다.

통일 후 새로운 체제에 적응해야 할 북한 주민들에게 미리 ‘자유’와 ‘인권’에 대한 의식을 심어주는 동시에, 한국의 통일 세대에게는 북한 주민들을 포용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심어줘야 한다는 지적이다.

마하엘 코흐 독일 헤르스펠트로텐부르크 지역위원장은 6일 북한인권정보센터(NKDB)와 콘라드아데나워재단, 과거청산통합연구원이 공동 주최한 ‘통일 전후 내독국경지대의 변화 – 한반도에 주는 교훈’ 세미나에 참석, “무작정 서독 주도로만 통일을 하려 했더라면 지금과는 분명 다른 결과가 초래됐을 것”이라면서 “독일 통일의 열쇠는 바로 ‘정보’였다. 따라서 북한에 정보가 들어가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코흐 위원장은 이어 “동독 주민들은 라디오와 TV를 통해 서독의 경제 수준이 높다는 사실은 물론, 그들에게는 표현의 자유나 언론의 자유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면서 “그것이 동독의 상황을 묵과하지 못하도록 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그는 “서독 출신 주민들도 동부를 강하게 만들기 위해 그들의 지식과 기업가 정신 그리고 정치적 경험을 제공했다”면서 “이에 많은 역경에도 불구하고, 많은 동독 출신 주민들은 새로운 체제 아래서 결단력 있게 출발하고 극복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코흐 위원장은 “독일이 다시 하나가 될 수 있었던 건 (동서독 주민들 간에) 훌륭한 연대가 있었던 덕분”이라면서 “이후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인생의 역경을 미래의 기회로 전환했고, 책임감을 갖고 인생을 만들어갔다. 개인의 책임이 요구되는 것을 수용했기에 가능했던 것”이라고 부연했다.
 
티모 뤼벡 헤르스펠트로텐부르크 관할 기민당 사무국장은 “분단에 대한 기억이 없는 청년들에게 (통일에 앞서) 특히 기억해야 할 장소와 스토리를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분단과 통일에 대한 역사 인식을 바로잡는 게 자유민주주의 통일을 이루고 지속하는 데 있어 선결 과제가 돼야 한다는 것.

뤼벡 사무국장은 이어 “독일에선 벌써 구 동독에 대한 향수가 퍼져 당시 상황이 미화되는 일도 일부 지역서 벌어지고 있다”면서 “많은 청년들이 구 동독에서 벌어졌던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현실은 외면한 채 당시가 마치 교육 지원과 환경 보호의 천국이었던 것처럼 생각한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물론 구 동독에서 늘 피해자와 가해자만 있었던 건 아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독재 아래에서도 일반적인 삶을 살아가려 했고 나름대로 존엄을 유지하려 했던 것”이라면서 “독재 아래에서 시민운동가와 같은 사람이 아니었다고 해서 그들이 독재를 지지했다고 판단하거나, 선입견을 갖고 바라봐서는 안 된다. 그들을 2등 국민으로 규정짓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통일에 앞서 청년들을 위한 ‘기념 문화’를 조성할 것을 제안하면서 “독재 체제가 주민들에게 어떤 일을 자행했는지, 민주주의와 자유를 찾기 위해 사람들이 어떤 선택을 해야 했는지 제대로 된 교육을 해야 할 것”이라면서 “‘우리가 과거에 어땠는지 잊지 않아야만 오늘이 내일이 성공적일 수 있다’는 말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라 제언했다.

실제 동독 주민들의 경우 동서독 간 정보 교류로 일찍이 서독 체제를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했음에도 불구하고, 통일 이후 좌절을 면치 못하는 등 이른바 ‘통일 쇼크’가 상당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서독 주민들 중에서도 동독 주민에 편견을 갖거나 이들을 ‘2등 국민’으로 대하는 일이 많았던 것으로 알려진다.

코흐 위원장은 “독일 통일 후 많은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동서독 간에는 임금이나 실업률 혹은 정치적 견해에 있어 많은 차이가 있다”면서 “특히 통일 이후 동독 주민 1600만 명은 거의 모든 것이 변한 삶을 경험해야 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통일에) 큰 희망을 품었던 이들에게 (삶의) 변화는 더디기만 했다. 생활수준과 의식의 동화는 동서독 모두의 과제이자 세대를 통한 과정이 될 것이라는 게 차츰 분명해졌다”면서 “통일에 모두 승자만 있었던 건 아니었다. 오히려 통일이 인생의 설계에 있어서 깊은 상처를 가져왔다는 사람들도 존재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코흐 위원장은 “통일 당시 서독 사람들은 동독에서 온 사람들을 금방 알아봤다. 머리스타일도 촌스러웠고 인프라도 낡은 상태였기 때문”이라면서 “특히 동독 사람들을 편협한 생각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문제였다. 그들이 독재 체제 아래서 인권을 탄압 받으며 살기는 했지만, 나름 행복을 추구하며 삶을 개척하려는 노력을 했다는 점을 인정하지 못했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끝으로 그는 “북한 주민들에 대한 시선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인권을 보장 받으며 살지 못했던 건 맞지만, 그들도 나름 인간으로서의 삶을 추구했다는 걸 이해하지 못하면 통일 쇼크 역시 피해가지 못할 것”이라면서 “북한 주민들에 대한 호감을 가져야 한국 역시 통일 쇼크를 피해갈 수 있다는 걸 염두에 둬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