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내용 없어…가스관 협의도 진행 안 돼”

김정일이 9년 만에 열린 북러 정상회담에서 조건없는 6자회담 복귀와 핵실험 중단을 선언했지만 한미 등 관련국은 기존 입장을 되풀이 한 것일 뿐 진전된 상황을 조성한 것은 아니라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나탈리야 티마코바 러시아 대통령 대변인은 24일 북러 정상회담 내용과 관련 “김정일이 아무런 전제조건 없이 6자회담에 복귀할 준비가 돼 있다는 뜻을 밝혔다”며 “6자회담 과정에서 북한이 핵물질 생산 및 핵실험을 잠정중단(모라토리엄)할 준비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또한 이에 따라 북한이 6자회담 재개에 합의했다고 티마코바 대변인이 밝혔다.


하지만 김정일이 밝힌 핵 모라토리엄은 ‘6자회담 과정에서’라는 전제를 달고 있어 현재 한미가 제시하고 있는 6자회담 재개 사전조치에는 크게 못 미친다는 평가다. 핵 모라토리엄을 사전조치가 아닌 협상카드로 활용하겠다는 북한의 의도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특히 농축우라늄프로그램(EUP) 문제를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는 점에서도 진정성이 떨어진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한미는 비핵화 사전 조치로 ▲우라늄농축시설 가동 또는 프로그램 중단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의 복귀와 핵심시설 접근 ▲9.19공동성명 이행 등을 제시하고 있다.


정부 당국자는 “향후 6자회담 관련국들의 움직임을 지켜봐야겠으나 북한이 그동안 ‘조건 없는 6자 회담 복귀’를 여러 차례 밝혀왔기 때문에 새로운 내용이 없다”고 밝혔다.


미국 빅토리아 눌런드 국무부 대변인도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실제로 북한이 핵실험과 미사일발사를 중단할 의지가 있다면 이는 환영할 일이지만 6자회담을 재개하기에는 불충분하다”고 평가했다.


이어 그는 “지난해 말 북한이 공개한 우라늄 농축시설은 여전히 우리에게 심각한 우려”라면서 “이런 행동은 유엔 안보리 결의 1718호, 1874호를 위반한 것이고, 2005년 9.19 공동성명의 합의를 어긴 것”이라고 우려감을 표했다.


그러나 미국은 향후 러시아측과의 접촉을 통해 정상회담 결과를 청취하고 비핵화 회담과 관련 의견을 교환하는 등 후속조치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한미가 북한의 핵무기 개발 중단을 사전 조치에 중요한 부분으로 인식해온 만큼 관련국들의 움직임도 활발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눌런드 대변인은  “이번 (김정일의) 방문이 마무리된 이후 러시아측과 접촉할 것으로 예상한다”면서도 “북한이 우리 모두가 제시한 요구조건을 모두 충족할 준비가 되지 않으면 6자회담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더불어 이번 북러 정상회담에서 합의된 남북러 3국 가스관 건설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북한에게 현금 등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 줄 것으로 예상되며 북측의 적극적인 추가 협상 노력이 이어질 것으로도 관측된다.


정상회담을 마친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북한이 자국을 거쳐 남한까지 이어지는 천연가스 수송관을 지지함으로써 수송관 건설에 합의할 수도 있다”며 “가스관 건설 프로젝트를 검토하기 위한 3자 위원회 발족에 합의했다”고 말했다.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북한은 이 프로젝트에 관심을 두고 있고 이를 위해 약 1100km의 가스관을 건설할 계획”이라며 “이 가스관을 통해 매년 100억㎥의 천연가스를 수송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그러면서 “만일 수요가 있으면 이 수송능력을 더 늘릴 수도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현재 남북관계의 특별한 진전을 예상할 수 없는 조건에서 가스관 건설 협의가 급물살을 탈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정부 당국자는 “북러 정상회담서 남한을 포함한 3자 위원회를 발족할 것을 합의했다고 하는데 현재 정부는 이와 관련 러시아측과 협의를 진행하는 것이 없다”고 말했다. “다만 2008년 한러 정상회담서 가스관을 통한 천연가스 도입에 관한 합의가 있었던 만큼 차후 상황을 지켜봐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