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OO국물 한방울만 발등에 떨어져도 몸보신 돼”

“지금 당장 먹고 살기 힘든데 뭔 보양식.” 북한에선 90년대 고난의 행군 시절을 기점으로 여름철 보양음식을 찾는 풍토가 점차 사라졌다는 것이 탈북자들의 한결같은 이야기다. 끼니를 때우기도 어려운데 ‘보양음식’을 따로 챙겨서 먹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었다는 말이다. 그들에겐 단지 ‘추억속의’ 음식일 뿐이다.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그들의 여름철 보양음식을 들어봤다.


▲함경남도 단천의 보양식, ‘소껍데기 묵’과 ‘추어탕’


1999년 탈북한 정필용(가명 39)씨는 ‘소껍데기 묵’을 보양식의 첫손가락에 꼽았다. 지금도 그리워 질 때가 있다고 한다. ‘소껍데기 묵’은 소가죽을 가마에 며칠을 삶아서 만드는 요리다. 며칠 동안 삶아진 소가죽은 아교처럼 돼 식으면 마치 묵과 같은 상태가 된다. 이를 적당한 크기로 잘라 간장 등에 찍어 먹으면 그 고소한 맛과 쫀득한 촉감이 감칠맛이라고 한다. 여름철에 기력이 쇠해졌을 때 가끔씩 해 먹던 정 씨의 추억속 보양식이다.


그 다음으로 유명한 것이 ‘추어탕’이다. ‘감옥에 갔다가 영양실조에 걸려서 나온 사람들도 미꾸라지 한 양동이를 끊여 먹으면 몸이 다 호전된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몸보신에 탁월한 효능이 있다고 여겨져 인기였다고 한다. 이외에 가물치, 잉어, 쏘가리 등 다른 민물고기 탕도 보양식으로 손꼽히는 음식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이 같은 소껍데기 묵과 추어탕은 일반 주민들은 맛볼 수 없었다는 것이 정 씨의 설명이다. 정 씨 역시 외화벌이라는 특수직에 종사해 상당한 부를 축적했기 때문에 이런 호화 음식들을 맛 볼 수 있었다고 한다.


“돈 있는 사람들은 입으로 먹고, 여건이 안 돼는 사람들은 말로만 먹는 것이 보양음식이죠.”


▲서민 보양식 ‘(검정)닭곰’과 ‘(검정)토끼곰’


여름철 북한 주민들은 검은색 닭(오골계)과 검은색 토끼를 구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인다. ‘약으로 먹을 때는 검정색 닭·토끼를 써야한다’는 민간요법 때문이다.


닭곰은 닭을 갈라 뱃속에 황기, 찹쌀, 인삼, 검은콩 등을 가득 넣고 가마솥에 찐 음식이다. 재료는 삼계탕과 비슷하지만 찐 음식이기 때문에 국물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박용술(가명 32) 씨는 한국의 삼계탕보다도 닭곰이 맛이 더 좋다고 한다.


‘토끼곰’ 역시 닭곰하고 들어가는 재료는 비슷하다. 원래 전통 보양식은 닭곰이었지만 ‘꼬마 계획’으로 인해 새로 나온 보양식이다. 북한의 학생들은 매년 정해진 수의 토끼 가죽을 학교에 바친다. 일명 ‘꼬마 계획’으로 북한 당국의 외화벌이 수단중의 하나다. 정부에서 원하는 것은 ‘토끼가죽’이기 때문에 고기는 주민들이 먹을 수 있다. 이후 토끼고기는 북한 주민들이 가장 쉽게 구할 수 있는 고기가 되었고 그래서 등장한 것이 ‘토끼곰’이라고 한다.


박 씨는 “보양? 일부 부자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다. 세끼라도 먹는 게 보양”이라고 북한의 경제적 어려움을 전했다.


▲영양실조 걸린 군인에게 가장 든든했던 ‘단고기(개고기)’와 ‘염소고기’


고난의 행군 시절, 영양실조에 걸려 뜨거운 뙤약볕을 이겨내지 못하고 푹푹 쓰러지던 탈북자 이찬복(가명 47) 씨를 살린 건 단고기다.


식량난으로 군대에 갔던 사람들까지 영양실조에 걸려 집으로 돌아왔던 그 시절, 여름철의 더운 날씨를 이기지 못하고 이 씨도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때 이 씨의 부모가 몸보신하라고 마련해준 보양식이 ‘염소고기’와 ‘개고기’라고 한다. 


그는 “염소고기는 워낙 귀해서 자주는 못 먹었지만, 몸 상태가 호전될 때까지 개고기를 많이 먹었고 특히 엿 만들 때 개고기를 넣어 만든 ‘개엿’이 몸보신에 좋다고 많이 먹었다”고 회상했다.


이 씨는 아직까지도 북한의 개고기가 가끔씩 생각난다고 한다. 북한에서는 ‘개고기 국물 한 방울이 발등에 떨어져도 보양이 된다’라는 표현도 있다고 한다.


이 씨는 “가장 대표적인 보양식인 개고기도 여름이 되면 흔히 많이 먹어야 한다고 이야기를 하긴 하지만 솔직히 개고기는 부담이 되서 잘 못 먹는다”며 “개고기는 장마당으로 어느 정도 재산을 비축해둔 일부 계층, 상급자들만 먹는 것이 요즘의 풍속”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