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수발전소 현장은 현대판 노예노동”

▲ 건설 현장의 발파 기술자들 <조선중앙TV>

2004년 5월 착공된 삼수발전소 건설사업은 김정일의 총애를 얻기 위한 노동당 조직부와 선전선동부 간의 권력암투에서 비롯되었으며, 건설현장에 동원된 주민들은 지난 1년 동안 하루 14시간 이상의 강제노동에 시달리고 있다고 복수의 탈북자들이 주장했다.

최근 중국 창바이(長白)에서 만난 탈북자들에 따르면 현재 삼수발전소 건설 현장에는 군인 외에 2만 명 이상의 주민들이 동원되었으며, 이들은 지난 1년 동안 임금도 받지 못한 채 하루 옥수수밥 580g의 배급만으로 연명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삼수발전소는 김정일의 총애를 노린 최춘황의 작품

삼수발전소 건설 구상은 1970년대 김일성에 의해 처음 제안되어 지질탐사까지 마쳤으나, 지질상태가 좋지 않고 예상 비용이 너무 높아 백지화 되었다. 2001년에 삼수발전소 건설 구상을 다시 꺼내든 사람은 前 노동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 최춘황으로 전해진다.

다음은 <6.18돌격대>의 일원으로 삼수발전소 건설현장에서 일하다 탈북한 노동당원 윤철훈(가명. 29세) 씨와의 일문 일답.

– 삼수발전소 공사가 시작된 이유는 무엇인가?

“2000년 4월부터 중앙당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이었던 최춘황이 김정일의 총애를 얻기 위해 <6.18 돌격대>를 꾸려가지고 양강도 삼지연지구를 비롯한 혁명전적지 사업을 추진했다. 삼지연지구 공사가 다 끝나서 5만 명이나 조직되었던 돌격대가 해체되면 선전선동부의 지위가 다시 약해질까봐 과거에 덮어두었던 ‘삼수발전소 건설공사’를 다시 제기한 것이다.”

– 선전선동부가 발전소 공사에 나섰던 이유는?

“원래 70년대 김정일이 선전선동부에 있을 때까지만 해도 ‘당 사상사업 1선’이라며 선전선동부의 지위가 대단했다. 그런데 점차적으로 조직부와 간부부의 위치가 높아지면서 선전선동부는 가장 힘없는 부서가 됐다. 그런데, 99년 6월 18일에 김정일이 양강도 삼지연을 돌아보고 백두산 혁명전적지 일대를 잘 꾸리라고 지적하자, 당시 제1부부장이었던 최춘황이 선전선동부가 삼지연지구를 꾸려 보겠다는 제안서를 김정일에게 올렸다. 이렇게 발족한 것이 <백두산 혁명전적지 건설 당선전일꾼 돌격대>, 일명 <6.18돌격대>다. 돌격대 규모는 5만 명 정도였다. 최춘황은 김정일로부터 칭찬을 많이 받았다고 들었다.”

– 최춘황은 작년에 실각했다는 소식이 있었는데?

“그렇다. 선전선동부의 지위가 너무나 높아지니까 조직부에서 견제하기 시작한 것이다. 조직부에서 작년 3월에서 5월까지 술풍(과도한 음주문화)을 금지하자는 사상투쟁을 벌였는데 이때 선전선동부의 많은 간부들이 처벌, 철직됐다. 최춘황도 이때 철직됐다. 소문에는 장성택에게 줄을 데려다 김정일에게 밉보여 쫓겨났다는 말도 있었다.”

저수지 공사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당 선전선동부의 정치적 계산 때문에 삼수발전소 건설공사가 추진되고 있기는 하지만, 현장의 기술일꾼들은 여전히 공사 자체에 회의를 품고 있다고 한다. 2004년 7월 북한 당국은 프랑스의 전문가들을 초빙하여 삼수발전소에 대한 컨설팅을 받았는데, 현장을 둘러본 프랑스의 전문가들은 공사 자체에 대해 반대입장을 표명했다. 하지만 북한 당국자들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일부 설계변경으로 공사를 강행하고 있다고 한다.

다음은 삼수발전소 허천강 공사현장에서 공정기사로 일하다 국경을 넘은 김영섭(가명. 36세) 씨와의 일문일답.

– 삼수발전소 건설 현황에 대해 설명해달라

“2004년 5월 대발파를 계기로 착공식을 벌였는데, 실제 작업은 2004년 2월 1일부터 시작했다. 현재 허천강과 운총강 함수목에서 모래와 시멘트로 댐을 쌓아서 5만kw 규모의 발전소를 건설하는 1단계 공사 중이다. 군대까지 약 3만 명이 동원되었다. 원래는 올해 10월 10일 당창건 기념일에 완공식을 하겠다고 계획했는데 휘발류와 운송수단이 부족해서 불가능하다.”

▲ 삼수발전소 건설현장의 발파작업에 동원된 기술자들 모습

– 기술일꾼들 중에는 발전소 건설에 반대한 사람도 있었다는데?

“처음에는 반대의견이 많았다. 공사 현장의 지질상태가 매우 불안정 하기 때문이다. 허천강과 운총강이 합쳐져도 강물의 양이 많지 않다. 바닥이 석회암 지대이기 때문에 물이 강바닥으로 스며드는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댐을 쌓으면 높은 압력 때문에 바닥으로 물이 새나갈 가능성이 높다. 만약에 지하물줄기라도 형성되면 옆에 있는 혜산청년광산까지 침수될 위험도 있다.”

– 당에서 기술일꾼들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았나?

“프랑스에서 초빙한 전문가들의 의견도 듣지 않는데 우리 같은 기술자들의 말을 듣겠나? 김정일에게 처음 올렸던 제안서부터 잘못되어 있다. 내가 알기로는 제안서에 세 가지 내용이 담겨있었는데, 첫째, 돌과 모래로 댐을 쌓으면 건설비용이 적게 든다는 것, 둘째, 건설기간은 2년이면 충분하다는 것, 셋째, 1단계 공사가 끝나면 더 큰 규모의 발전소들을 여러 개 건설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부 엉터리다. 선전선동부 스스로가 중앙당의 지원 없이 자체적으로 알아서 하겠다고 큰소리 치는데 누가 선뜻 반대하겠나?”

– 현재 공사에서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인가?

“제대로 공사가 완성될지 확신도 없이 수많은 사람들이 동원되고 있다. 기술자들도 그저 일하는 시늉만 하고 있다. 사람들만 가득 동원해서 흙과 돌로 댐을 쌓기는 하는데, 물이 바닥으로 다 빠지면 무슨 소용인가? 시추구멍을 뚫고 높은 압력의 시멘트 물을 분사해서 바닥공사를 하고는 있지만 과연 13억㎥의 수압을 견딜 수 있을지 장담하는 사람은 없다.”

프랑스에서 초빙했던 전문가들은 최소한 300대의 트럭, 200대 이상의 굴착기, 100명 이상의 전문 기술 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씨는 허천강과 운총강 일대의 현장에 40여 대의 트럭과 20여 대의 굴착기만이 동원되고 있다고 말했다. 나머지는 ‘인해전술’로 해결하고 있다는 것. 건설현장에는 2만 명이 넘는 주민들이 강제동원 되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판 노예노동, 하루배급 옥수수밥 580g

탈북자 리선옥(가명. 22세) 씨는 삼수군 번포리 강변 현장에서 일하다 4월 30일 국경을 넘었다. 리씨는 <황해남도 청년돌격대> 소속으로 지난해 4월 삼수발전소 건설현장으로 파견됐다. 그녀는 지난 1년 동안 하루 14시간의 중노동과 배고픔에 시달렸다고 말했다.

– 건설현장의 하루 일과는 어떻게 되나?

“동절기에는 6시에 기상하고, 하절기에는 5시에 기상했다. 겨울에는 추위 때문에 고생이고 여름에는 작업시간이 길어져서 고생이다. 요즘엔 오전 8시, 낮 1시, 저녁 7시에 밥을 먹는다. 하절기에는 저녁 밥을 먹고 나서도 작업한다. 밤 11시가 돼야 점호가 끝나는 경우가 많다.”

– 식량이나 생활필수품 배급은 잘 되고 있나?

“하루에 옥수수밥 580g에 소금된장국과 절인 무가 나온다. 먹는 것 외에는 배급이 거의 없다. 태양절(4월 15일)에는 양말 1켤레, 내의 1벌, 과자 2봉지씩 받았다. 나는 작년 봄에 집에서 떠났는데 겨울 옷을 챙겨오지 않아 올 겨울에 무척 고생했다. 강바닥에 나가서 일하다보니 양 발가락이 모두 동상에 걸렸다.”

– 건설현장의 사람들은 주로 어떤 일을 했나?

“간부들이나 기술자들을 빼고는 돌과 흙을 운반하는 것이 주된 일이다. 여성대원들이 마대에 흙과 돌을 담아주면 남성대원들이 운반한다. 마대자루에 흙을 가득 담으면 보통 25kg정도 되는데 하루에 50~80번을 날라야 한다. 소대별로, 중대별로, 연대별로 노력경쟁을 붙이니까, 참모부마다 닦달을 한다. 작년 6월 18일부터 7월 20일까지 ‘제1단계 사회주의 경쟁’ 기간에는 정말 죽어나는 줄 알았다. 하루에 한 사람이 1천 6백미터 되는 거리를 80번씩 날랐다.”

– 그런 중노동을 어떻게 버티나?

“병들거나 다친 사람들은 더러 집으로 가는 경우도 있다. 겨울에는 동상환자가 많고, 물막이 공사를 하다가 죽은 사람도 있었다. 중국으로 도망치는 사람도 많다. 소대원 중에 도망치거나 집에 돌아간 사람이 생기면 그 사람 몫까지 일해야 하니까, 시간이 지날수록 일일 작업량이 늘어간다. 힘든 노동 때문에 위생(생리)이 끊기는 여자들도 많다.”

– 제일 힘들었던 점은 무엇인가?

“춥고, 배고프고 몸이 힘들다. 그런데 끝이 없는 노동에 시달리는 것이 더 힘들다. 처음 집에서 나설 때는 석 달만 고생하면 된다고 했다. 1년이 넘도록 누구 하나 말이 없다. 이 공사가 1년이 갈지 2년이 갈지 아무도 모른다. 그러면서 아침에 눈뜨면 똑 같이 흙 나르고 돌 쌓는 일에 매달린다. 이럴 줄 알았으면 군대나 나갈 것을. 생각할 수록 눈물만 난다.”

중국 창바이(長白) = 김영진 특파원kyj@dailyn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