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브로커, 진짜 ‘나쁜 사람들’인가?

▲ 재외공관 진입을 통해 한국에 온 탈북자들

지난 3월 13일 탈북자 입국브로커 조직 일당 13명이 검거되었다. 이들은 탈북자들의 국내입국을 알선한 대가로 250~1,000만 원을 받고 돈을 주지 않은 경우 폭력과 협박을 행사한 혐의를 받고 있다.

18일에는 북한인권NGO인 <탈북난민보호운동본부> 간부 임영선씨에 대한 체포영장이 발부되었다. 국내에 있는 탈북자로부터 중국에 있는 가족들을 데려오는 비용을 받고 입국을 추진하다 실패하였으나 비용을 되돌려 주지 않은 혐의다.

임씨는 작년 1월에도 탈북자 입국비용 문제로 경찰의 수사를 받고 검찰에서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바 있다. 당시 임씨는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해 탈북자의 입국루트와 입국에 소요되는 실제 경비 등을 공개하기도 했다.

최근 인터넷신문 <데일리서프라이즈>와 월간 <말> 4월호는 “한기총 산하 간부 탈북자 상대 돈장사”라는 제목으로 임씨 사건을 보도하였다. 부정과 비리를 추적하여 보도하는 것은 언론의 당연한 자세이다. 그러나 ‘숲은 보지 못하고 나무만 보는’ 오류가 숱하게 보인다. 입국브로커가 생겨난 배경과 실태에 대해서도 잘 모르는 대목이 많다.

관련링크

한기총 산하 간부 탈북자 상대 돈장사 – 데일리 서프라이즈

이에 DailyNK는 탈북, 입국 브로커의 활동에 대해 그 실체적 진실이 무엇인가를 정확히 알려야 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인터넷 언론을 비롯한 방송사 등에서 탈북, 입국 브로커의 구체적인 활동상황을 잘 모르는 상태에서 계속 피상적인 현상만을 보도할 경우, 자칫하면 실체적 진실이 왜곡될 수 있기 때문이다.

DailyNK는 그 첫 번째 순서로 1999년부터 북한인권단체에서 활동하면서 브로커 문제를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추적해온 강모씨(35세)를 긴급 인터뷰하여 탈북 및 입국 브로커의 실상을 자세히 들어보았다. 강씨는 현장에서 브로커를 가장 많이 만나본 활동가로 꼽힌다. 요청에 의해 강씨의 이름은 밝히지 않는다.

▲ DailyNK와 긴급인터뷰 중인 활동가 강모씨

– ‘탈북 브로커’라는 표현에서 부정적 어감이 느껴진다. 뭘 하는 사람들인가?

‘브로커(broker)’는 단어 그 자체로는 나쁜 표현이 아니다. 부동산 중개인처럼 A와 B사이를 연결해 주는 역할을 하는 사람을 이른다. 자원봉사자가 아닌 이상 거기에 일정한 수수료가 따르는 것도 당연하다.

이른바 ‘탈북 브로커’, ‘입국 브로커’는 탈북자들의 북한 탈출을 돕거나, 중국에서 한국으로의 입국을 돕는 사람들을 말한다. 요새 문제가 되고 있는 ‘탈북 브로커’는 중국에서 한국으로 갈 수 있도록 도운 대가로 돈을 받는 사람들로,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입국 브로커’라고 해야 한다. 브로커라는 부정적 어감 때문에 ‘입국 도우미’ 혹은 ‘탈북자 도우미’라고 스스로 칭하기도 한다.

– 그런데 무엇이 문제인가?

문제는 그들이 입국의 대가를 받는다는 점이다. 브로커마다 다르지만 1인당 최소 200만 원에서 최대 1,500만 원, 지독한 경우에는 2,000~3,000만 원의 돈을 지속적으로 갈취하는 경우도 있다. 그 비용이 대개 탈북자들이 정부에서 지급받는 정착지원금에서 떼어져 나가 초기 정착에 애로를 겪는 문제점이 있다. 또한 브로커가 대금만 받고 도주하는 경우, 탈북자들이 입국 과정에서 체포되었을 시 이를 책임지지 않고 방치하는 경우가 있으며, 주로 현지 브로커가 저지르는 일이지만 탈북여성을 성폭행하는 경우도 있다.

– 그냥 브로커는 뭐고 ‘현지 브로커’는 뭔가?

브로커 조직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크게 두 가지 역할이 있다. 우선 국내에 거점을 두고 총괄 지휘를 하는 브로커가 있다. 요즘 탈북자들의 국내 입국 유형은 대개 이미 입국해 있는 탈북자가 중국이나 북한에 있는 가족이나 친인척, 지인을 데리고 오는 방식이기 때문에, 국내 탈북자들을 찾아 다니며 가족을 데리고 오겠는지 의사를 묻는 일종의 ‘모집책’도 있다. 이들은 대개 한국인이거나 국내에 입국해 한국 국적을 취득한 탈북자(새터민)들이다.

그리고 중국에서 탈북자들을 한국으로 데리고 오는 실질적인 일을 하는 ‘현지 브로커’가 있다. 이들은 대개 조선족 중국인이 주축을 이루고 몽고로 국경을 넘는 경우 중국-몽골 국경의 현지인, 베트남으로 국경을 넘는 경우 중국-베트남 국경의 현지인들을 협조자로 두고 있다. 라오스, 캄보디아, 태국의 경우에도 물론 현지 사정에 밝은 협조자들이 함께 ‘작업’을 한다.

– 탈북자들이 한국으로 오는 경로에는 어떤 것들이 있나?

2002년 이전에는 탈북자들이 한국에 올 수 있는 방법이 거의 없었다. 당시에는 중국 주재 한국대사관에 탈북자들이 찾아가면 중국인민폐 100원(한국돈 1만 3천 원 정도) 정도를 쥐어주고 쫓아내곤 했다.

납북어부 이재근 씨의 사례는 당시의 상황을 생생하게 말해준다. 이재근 씨는 1970년 서해 연평도 해상에서 조업 중 납치되었다 1998년 북한을 탈출, 중국에서 2년간 숨어 다녔다. 그때 한국대사관을 찾아가 도움을 요청했지만 대사관 직원은 “당신 대한민국에 세금 낸 것 있어? 왜 자꾸 국가에 부담주려고 해.”라고 큰 소리를 치며 쫓아냈다. (후에 대사관 직원이 아닌 정보기관 직원으로 밝혀짐 – 편집자 주)

물론 당시에도 비행기나 배를 타고 오는 방법이 있었다. 그러자면 여권을 위조하거나 밀항을 해야 하는데 1,000~1,500만 원 정도의 경비가 들어간다. 탈북자들에게 그런 돈이 어디 있겠는가. 이재근 씨도 <납북자가족모임>의 도움으로 천신만고 끝에 한국에 올 수 있었다.

탈북자들의 한국행 경로가 넓어진 것은 2002년 3월 14일 중국 주재 스페인대사관에 탈북자 25명이 뛰어들어가 망명을 신청, 한국행에 성공하면서부터이다. 이 사건은 일부 북한인권NGO들의 치밀한 계획 아래 진행되어, 이로 인해 ‘기획입국’이라는 말이 생겨났다. 그리고 이날 이후 중국 주재 각국 재외공관은 탈북자들이 진입하면 받아들였다.

스페인대사관 사건은 재외공관이라는 새로운 입국 루트를 뚫었다는 점 이외에, 전 세계적으로 크게 보도됨으로써 탈북자 및 북한 주민들에게 “한국으로 가는 방법이 있다”는 희망을 심어줬다. 그전까지만 해도 탈북자들은 ‘한국으로 가는 것은 상상에서나 가능하다’고 아예 포기하거나 ‘한국은 탈북자들을 (북한 사람이라는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잘못된 생각을 갖고 있었다. 스페인대사관 사건은 그런 점에서 긍정적이었다.

– 그럼 다 대사관으로 들어가면 되지 않나, 도대체 입국 브로커들은 왜, 어떻게 생겨났는가.

스페인대사관 사건과 독일학교 진입(2004년 2월) 사건 이후 탈북자들의 중국 내 재외공관이 러시를 이루었다. 그러면서 중국 당국의 재외공관 주변 경계도 대폭 강화되었다. 그저 막 걸어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스페인대사관 사건은 중국 내 탈북자들의 한국행 의욕을 크게 높여 놓았다. ‘입국시장’이 활짝 열린 것이다. 그 수요를 NGO들이 다 감당할 수 없었다. 또한 재외공관에 대한 경비가 강화되면서 무작정 뛰어들어가는 NGO들의 방식은 더 이상 통하지 않았다.

이때부터 브로커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수요를 억지로 억누르면 암시장이 생겨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또한 ‘이윤추구’는 이상(理想)추구보다 창조적 수법을 낳는다. 탈북자들을 재외공관에 안전하게 진입시켜주는 브로커가 생겨났고 베트남, 몽고, 태국 등 다양한 입국 루트가 개척되기 시작했다. 시장가격은, 비행기와 배 밖에 탈출 루트가 없던 시절에 1,500만 원에 이르렀던 반면, 500만 원, 300만 원, 200만 원으로 갈수록 떨어졌다.

– 현재 입국비용이 200~300만 원이라고 하는데 도대체 어떻게 그런 경비가 들어가는가?

국내에 이미 입국한 가족이 총괄 브로커나 모집책에게 250만 원을 지불했다면 총괄브로커가 50만 원, 모집책이 50만 원, 현지 브로커 150만 원 정도로 나눠 이익을 챙기는 것으로 파악된다.

현지 브로커에게 그렇게 많은 돈이 배분되는 이유는 실질적인 ‘작업’을 하기 때문이다. 그 150만 원을 그가 어떻게 활용하는지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대개 국경경비대에 뇌물로 얼마를 바치고 하부에 있는 협조자들에게 수고비를 주는데, 국경경비대에 잘 아는 사람이 있어 거의 돈을 들이지 않고 넘기는 브로커가 있고, 위험성은 훨씬 높지만 국경경비대에 뇌물을 주지 않고 몰래 넘기는 경우도 있다. 유능한(?) 브로커의 경우 협조자 없이 혼자서 일을 다 처리하기도 한다. 이 경우 교통비나 식비를 제외하고 거의 전액이 수익으로 남을 수 있을 것이다.

– 그렇다면 현지 브로커에게 지급되는 비용이 너무 과도하지 않나?

브로커 문제가 불거지자 어떤 사람이 중국 국경도시에서 중국-몽골 국경지역까지 기차비가 얼마, 국경을 넘으면서 경비대에게 뇌물로 건네주는 돈이 얼마 하는 식으로 ‘실(實)경비’를 따져 “원가는 50만 원이 채 들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글을 보았다.

이것은 핸드폰의 원가(原價)를 두고 플라스틱 가격 얼마, 내장된 칩에 들어가는 원료는 사실 모래에서 추출되므로 모래 한 줌의 가격이 얼마 하는 식으로 산정하는 것과 같다. 그렇게 따지면 70만 원짜리 최신형 핸드폰의 원가는 1만 원도 되지 않을 것이다. 핸드폰 가게에 가서 “원가 1만 원짜리를 왜 70만 원에 팔고 있느냐”고 따질 텐가?

물론 탈북자들이 한국에 이르는 과정에 ‘순수하게’ 들어가는 경비는 얼마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어쨌듯 사람 목숨과 관련된 일이며 위험성도 높은 일이다. 현재 250만 원 정도가 ‘시장가격’으로 형성되어 있는 실정이며, 사실 이것이 최저가(最低價)라는 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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