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밀분석] 회령 공개재판, 총살과정을 뜯어보니

이번 함경북도 회령시의 공개재판과 총살 과정을 자세히 살펴보면 북한에 법치(法治)란 찾아볼 수 없음을 금방 알 수 있다. 물론 북한은 헌법 제18조에 “법에 대한 존중과 엄격한 준수집행은 모든 기관, 기업소, 단체와 공민에게 있어서 의무적”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동영상만 보아도 북한의 ‘재판’이라는 것이 외형상 적법절차를 가장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형식적인 법규마저도 철저히 무시하고 있는 현실이 확연히 눈에 띈다.

가장 먼저, 판결에 불만이 있을 때 이를 항소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

북한 형사소송법 제251조에는 “제1심 판결, 판정에 대하여 의견이 있을 때 피소자, 변호인, 손해보상청구자는 상급재판소에 상소할 수 있으며 검사는 항의할 수 있다. 상소, 항의가 제기되면 그 판결, 판정은 집행되지 않는다”라고 되어 있다.

그러나 이번 재판을 보면 판사가 판결문을 읽은 후 “이상의 내용에 대하여 피소인(피고인)은 상소할 권한이 없다”라고 덧붙이며 뒤이어 “즉시 집행하시오”라고 호령한다. 이번 재판의 판사는 “함경북도 재판소 판사 김병주”라고 소개되어 있어, 기껏해야 2심재판이다. 즉 중앙재판소에 항소할 수 있는 권한이 법적으로 보장되어 있음에도 판사는 무슨 천부의 권한을 타고 났는지 “권한 없음”을 못박는다. 또한 상소, 항의가 제기되면 판결은 집행되지 않게 되어 있으나 “즉시 집행”을 명령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둘째, 변호인을 찾아 볼 수 없다.

피고인이 변호인을 선임할 권리는 민주주의의 기초 가운데 기초에 속한다. 북한 형사소송법 제169조에도 형식상으로는 “피심자, 피소자는 형사책임추궁결정을 받은 때부터 언제든지 변호인을 선정하여 그의 방조를 받을 수 있다”고 되어 있다. 이번 동영상에서도 판사, 검사, 변호인, 서기 등이 등장하기는 한다.

그런데 판사가 판결문을 읽는 내용은 있지만 그에 대한 심의 과정은 전혀 없다. 검사와 변호사가 갑론을박 하는 내용을 찾아 볼 수 없으며 재판은 20분 만에 신속하게 끝난다. 따라서 북한의 공개재판은 재판이라기보다는 이미 정해진 형벌을 공개적으로 집행하는 자리에 불과하다. 피고인에 대한 최후진술도 없다. 공개재판을 지켜본 관중들은 오늘 총살당한 사람이 무슨 죄를 지었는지 구체적으로 알지도 못한 채 “잘못하면 나도 저렇게 죽을 수 있겠구나” 하는 극도의 공포심만 안고 돌아가게 된다.

셋째, ‘내부 형법’의 존재가 의심된다.

3월 1일 회령시장 인근에서의 공개총살 과정을 보면 “형법 제290조 2항, 제233조, 제216조, 제104조로 사건을 심의하겠다”고 되어 있다. 일단 이상한 점은 북한 형법에는 ‘제290조 2항’이 없다는 사실이다.

북한 형법은 지난해 4월 29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 432호로 일부 내용이 개정되었다. 그러나 구 형법에는 제290조가 아예 없고, 신형법 제290조에는 부수 항목이 없다. 어디서 ‘2항’이 등장했는지 의문이다.

그 동안 북한인권 전문가들 사이에서 북한에는 외부에 공개된 형법과는 별도로 ‘내부형법’이 존재하는 것 같다는 의견이 있어왔다. 북한은 법적으로 인권을 보호하고 있다고 보여주기 위해 만든 형법이 있고, 내부 통제를 위해 실제 작용하는 형법이 따로 있다는 말이다. 실제 ‘국가안전보위부’는 형법이나 형사소송법과는 상관없이 자체 규정에 따라 피의자를 처리한다. 따라서 이번 판결도 내부 형법을 적용하지 않았을까 관측된다.

넷째, 법률적 양형(量刑)을 무시하고 있다.

3월 1일 판결에는 11명의 피고인이 등장한다. 이 중 ▲최재권, 박명길은 사형, ▲김선화, 라영철은 무기노동교화형, ▲손창흠 등 7명에게는 10~15년의 노동교화형이 선고된다. 이들의 죄목은 앞서 말한 대로 형법 제290조 2항, 제233조, 제216조, 제104조에 대한 위반이다.

형법 제290조는 ‘유괴죄’로, 일반적인 경우 5~10년형, 여러 사람을 유괴한 경우 10년 이상, 정상이 무거운 경우 무기징역에 처할 수 있다. 형법 제233조는 ‘비법국경출입죄’로, 이는 정상이 무거운 경우라고 해봤자 3년 이하이다. 형법 제104조 ‘외국화폐매매죄’도 마찬가지다. 형법 제216조는 ‘비법아편재배, 마약제조죄’로, 2년 이상 5년 이하의 형량이다.

물론 피고인들은 여기서 2~3가지 항목에 중복 해당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일반적인 법치사회에서는 그 중 가장 형량이 높게 명시된 조항만을 적용하여 선고하는 것이 상식이다. 그런데 마치 가중처벌을 하듯, 이들이 저지른 범죄에 대한 법조항 어디에도 사형은 명시되어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2명이 사형을 당했다.

북한 형법에 사형이 명시된 죄는 제59조 국가전복음모죄, 제60조 테러죄, 제67조 민족반역죄, 제278조 고의적 중살인죄 등이다. 이들에 대한 재판에서 위 조항은 언급되지 않았다. 확대해석 하여 제67조 민족반역죄를 적용한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렇다면 판결문에 제67조 위반사실이 명시되어야 한다. 따라서 이번에 총살당한 사람들은 법률적 근거도 없이 아까운 목숨을 잃은 것이다.

공포감 조성을 위한 잔혹행위일 뿐

이상과 같이 북한의 공개재판과 총살은 형법과 형사소송법에 분명히 명시된 권한과 절차를 무시하고 무법(無法)적으로 진행되며, 선고된 형량도 법률과는 무관하게 가혹하다. 따라서 북한의 공개재판과 총살은 법을 진행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시범케이스를 만들어 운없이 걸려든 사람을 죽임으로써 주민들에게 공포감을 조성하여 통제체제를 유지하려는 정기적인 잔혹행위”라고 정의할 수 있다.

곽대중 기자 big@dailynk.com
한영진 기자(평양출신 2002년 입국) hyj@dailyn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