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발행 100달러’를 조심하라

▲ 정밀하게 위조된 지폐를 수작업으로 감별해내는 모습

북한의 위조지폐 제조 ∙ 유통 문제가 북한문제의 새로운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남한의 일각에서는 이것이 미국의 대북봉쇄전략의 일환이라며 ‘왜 하필 이 시점에’ 미국이 북한의 위폐문제를 들고나오는지 의혹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북한은 지난 15일 관영 조선중앙통신 논평을 통해 “우리 공화국은 화폐를 위조한 적도 없으며 그 어떤 불법거래에 관여한 적도 없다”고 주장했다.

북한이 ‘화폐를 위조한 적도 없고 그 어떤 불법거래에 관여한 적도 없다’고 말하는 것은 국제사회를 바보로 여기는 무례한 망언이다. 북한의 일반인도 아니고 ‘외교관 여권’을 지닌 사람들이 위폐를 환전하거나 소지한 채 출입국하려다 적발된 사례만 벌써 수 차례다. 체포되어 유죄판결을 받고 이미 처벌받았거나 아직 재판이 진행 중인 사건도 있다. 이런데도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겠다는 것인가.

이에 대해 알아보려 하지도 않은 채 마치 미국과 국제사회가 없는 것을 만들어내는 것처럼, 혹은 갑작스럽게 위폐문제를 급조해내기라도 한 것처럼 이야기하는 일부 사람들은 양심에 손을 얹고 반성해야 한다.

북한의 국제범죄는 같은 동포로서 부끄러운 일이지만 그렇다고 덮어주면 안 된다. 특히나 그것은 북한 ‘정권’이 저지르는 범죄행위로, 이러한 사실을 알려 단호히 근절시키는 것이 민족과 인민의 자존심을 되찾는 일이기도 하다.

DailyNK는 북한의 위조지폐 제조 ∙ 유통과 관련된 이야기를 4회 예정으로 연재한다.

위폐감별기도 못 찾아내는 정교한 위조

1994년 7월. 마카오 정부는 사상 유례가 없는 특이한 조치를 내렸다. 발행일자가 1990년으로 찍힌 100달러짜리 지폐의 유통을 전면 금지시킨 것.

이 때문에 마카오를 찾은 세계 각국의 관광객들이 단지 ‘1990년 발행 100달러짜리’를 제시하였다는 이유로 물품을 구입하지 못하거나 호텔, 상점, 도박장 요금 등을 결재하지 못해 항의하는 사태가 폭주했다.

도박과 향락이 주 수입원이며 다른 나라에서는 범죄나 퇴폐로 취급받는 행위들도 웬만하면 다 용인하는 이 ‘관광도시’가 왜 이렇게 치명적인 방침을 내린 것일까.

이유는 그 며칠 전 마카오 경찰이 마카오인 2명과 북한인 16명을 긴급체포한 사건 때문이었다. 체포된 이들은 ‘방코 델타 아시아’ 은행을 통해 위폐 25만 달러를 환전한 혐의를 받고 있었다. ‘방코 델타 아시아’는 그동안 북한의 돈세탁 창구로 의심받다가, 최근 전격적으로 북한과의 자금거래를 중단한 바로 그 은행이다.

당시 마카오 경찰은 북한의 최대 무역회사인 조광(朝光)무역 사무실을 비롯해 북한관련 시설 12곳을 압수 수색했다. 수색과정에 조광무역 사무실에서 상당량의 위폐가 추가로 발견되었다. 미국에서도 위폐관련 특수경찰을 마카오로 급파해 현지조사활동을 벌일 정도로 사태는 심각했다.

이들이 놀랐던 것은 위폐의 기술적 수준.

종이의 질은 진짜 달러와 전혀 다르지 않았고, 빛에 비추어보면 보이는 ‘USA-100’이라는 암호까지 똑같이 위조해냈다. 위폐감별기에 넣어보았더니 반응을 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어떠한 국제 위폐 사기단도 이렇게 정교한 위폐를 만들어낸 적이 없었다.

더더욱 놀랐던 것은 이들의 대담함.

보통 위폐를 환전할 때는 진폐(眞幣)에 위폐를 몇 장씩 섞는 방법으로 세탁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들은 자신들의 기술력(?)을 단단히 믿고 있었는지 수십만 달러를 통째로 환전하려 했던 것이다. 그동안 얼마나 유통이 되었을지는 알 수 없었다.

‘외화 모으기운동’에도 섞인 ‘슈퍼노트’

▲ 위폐감별기도 통과하는 슈퍼노트

이 위폐의 공통점은 제조년도가 모두 1990년이고 100달러 짜리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마카오 정부는 ‘1990년 발행 100달러’ 지폐의 유통을 금지시켰다.

이것이 바로 세계에서 가장 정교하다는 위조달러 ‘슈퍼노트(Super Note)’이다. 슈퍼노트는 북한에서 제조한 것이 분명하다 하여, 혹은 이 지폐의 시리얼 넘버가 K로 시작한다 하여 ‘슈퍼-K’라고도 불린다.

이러한 ‘슈퍼노트’는 세계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지금까지 북한의 외교관이나, 외교관으로 위장한 공작원들이 환전하거나 소지하다가 적발된 위조달러는 모두 정교하게 위조된 ‘슈퍼노트’로, 적발된 지역은 러시아, 베트남, 태국, 몽골, 루마니아 등 다양하다.

이렇게 적발된 것보다 훨씬 많은 ‘슈퍼노트’가 시중에 유통되었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는데, 실제 세계 도처에서 100달러짜리 위조지폐에 발견되었다 하면 십중팔구는 ‘슈퍼노트’라고 한다. 기축통화(基軸通貨)로 활용되는 달러를 발행하고 있는 미국의 입장에서는 이 ‘슈퍼노트’가 대단한 골치거리가 아닐 수 없다.

‘슈퍼노트’가 어느 정도 광범위하게 퍼져있는지 보여주는 가까운 일례가 있다.

1997년 말 ~ 1998년 초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 사태에 남한 국민들이 대규모로 ‘외화(달러)모으기 운동’을 벌인 적이 있었다. 집안에 묵혀두고 쓰지 않은 달러화를 티끌처럼 모아, 국가적 위기를 벗어나는데 조그만 힘이라도 보태자는 자발적인 운동이었다.

당시 금융기관들은 달러를 모으는 데에만 급급해 위폐 여부를 제대로 확인해보지 못하고 외국금융기관에 보냈는데, 나중에 위폐로 확인돼 국내로 반송되어온 것이 14만~20만 달러에 이르렀다. 이중 3만~4만달러가 ‘1990년 발행 100달러 짜리’ 슈퍼노트로 밝혀져 국내에도 이 위폐가 상당히 유입되었다는 증거로 전해지고 있다.

(계속)

곽대중 기자 big@dailyn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