前평양주민 10인 “아리랑을 고발한다”

▲ 아리랑 공연 장면(상)과 관람객들의 모습(하)

“아리랑 공연을 400여만 명의 우리 인민과 군인, 해외동포와 다른 나라 사람들이 보았는데, 모든 관람자들의 반영이 대단히 좋다고 합니다” (김정일, 북한 잡지 <조선예술> 8월호)

북한에서 김정일의 말은 곧 ‘신(神)의 명령’이다. 김정일이 아리랑 공연을 긍정적으로 평가하자 2002년 8월 18일에 막을 내렸던 아리랑이 올 가을 다시 부활했다. 북한은 지금 ‘신의 명령’을 관철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북한의 ‘아리랑 대외초청 영접위원회’은 각국 여행사에 초청장을 보냈고, 러시아, 중국, 몽골, 홍콩, 영국 등지에서 하루 평균 500여명의 관광객을 끌어 모으는 중이라고 한다. 러시아 관광객들을 위해서는 ‘아리랑 항공기’가 운영되고, 최근에는 미국인들에게도 북한방문을 허용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 2일자가 전했다.

남한에서는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와 ‘굿네이버스’,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등의 민간단체에서 약 1만 명의 평양방문을 추진 중이다. 평화항공여행사와 자유여행사, 한화투어몰도 민간인 평양방문단을 모집하고 있다. 자유여행사의 평양관광상품을 보면 1인당 관광비용은 항공비를 포함해 1박 2일에 110만원, 2박3일에 150만원 선이다.

그러나 ‘아리랑 항공기’로 평양을 찾는 러시아 관광객들은 4박5일 체류, 관광비용은 420 유로(52만원)다. 남한 관광객의 일정은 초스피드인데, 가격은 두 배나 높다.

약 10만 명의 북한 주민이 동원되어 한 몸처럼 움직이는 아리랑 공연. 이에 대해 남한 언론은 “북한 예술계가 보여 줄 수 있는 성과의 최대치”(한겨레신문), “세계적인 언론들도 열띤 찬사를 보내고 있는 감동적인 공연”(CBS 노컷뉴스), “현재의 북한 모습이 아닌 그들의 염원을 담은 미래형”(중앙일보) “북한 체제가 한 사람을 위해 얼마나 많은 희생을 강요해 왔는지를 쉽게 느낄 수 있었다”(동아일보) 등으로 각기 다르게 평가하고 있다.

이제 이 유력한 북한의 ‘관광상품’에 북한 주민, 특히 주된 동원대상인 북한 청소년들의 어떠한 피눈물이 담겨있는지, 전(前) 평양주민 10인의 목소리를 통해 들어보자. 그리고 아리랑 공연 티켓을 끊을 것인지 말 것인지 다시한번 생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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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 (여, 35세, 평양시 대동강구역 거주, 2003년 입국)


“자정까지 굶으면서 연습”

▲ 여학생들이 체조연습을 하는 모습. (사진 : 연합뉴스)

중학교 4학년 때인 87년부터 89년까지 집단체조에 동원됐다. 어릴 적 일이라 동원되었던 행사의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어린이장(場), 경공업장, 농업장 등 여러 단락 가운데 우리학교는 농업장을 맡았다. 체조부문이었다.

연습은 거의 1년 내내 이루어진다. 5개월 정도는 오전에 수업하고 오후에만 훈련하지만, 행사 1개월 전에는 하루 종일 훈련을 한다. 1~30번까지 여러 동작이 있었는데 집단에서 한 명만 틀려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연습기간 중 70~80%는 밤12시까지 연습했다. 초반에는 코피를 쏟고 쓰러지는 아이들이 속출한다. 몇 개월 지나면 단련이 되었는지 그런 아이들이 없다.

점심은 도시락으로 먹고 저녁식사는 없다. 자정까지 굶으면서 연습한다. 중간에 간식으로 지급되는 빵이나 당과류가 전부다. 북한 아이들은 과자를 먹을 기회가 적기 때문에, 이때 받아 먹는 당과류가 유일한 기쁨이다. 그걸 먹기 위해 고통을 참는다. 당과류를 안 먹고 싸뒀다가 동생 갖다주는 아이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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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식 (남, 39살, 평양시 중구역 거주, 2003년 입국)


“어머니 떠주신 국 마시며 울던 기억 선해”

▲ 아리랑 공연 도중의 매스게임 장면. 연습도중 다치는 학생도 많다.

나는 1982년 김일성 탄생 70돌 기념 평양시 학생소년들의 대형 집단체조 “수령님의 만수무강을 삼가 축원합니다”에 참가했다. 23년 전의 일이니 세월은 흘렀어도 6만 명이나 참가한 대공연이어서 그런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나는 기계체조반에 소속되어 철봉을 했다. 당시 키가 160㎝였는데 2.5m 높이의 철봉대에서 대차동작(철봉동작은 1~6급까지 있으며, 대차동작는 6급으로 최고 난이도)을 맡았다. 철봉하는 사람들은 학급이나 거주 구역에 관계없이 잘하는 학생만 따로 뽑았다.

철봉에 샅바(안전바)를 매고 대차를 10회 이상 하다 보면 팔이 빠지는 것만 같다. 행사하기 6개월 전부터 그야말로 엄청나게 연습해야 한다. 하루 종일 연습을 하면, 나중에는 원숭이처럼 철봉에 둥둥 매달리게 된다.

훈련도중 어머니들이 당번제로 밥과 음식을 싸가지고 찾아오곤 했다. 그때 팔이 아파 어머니가 대신 떠주는 국을 마시며 울던 생각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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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남 (남, 33세, 평양 중구역 거주, 2000년 입국)

▲ 커다란 그림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북한의 카드섹션. (사진 : 연합뉴스)

“학교는 중대, 학급은 소대로 불리는 군대식 훈련”

87년부터 89년까지 동원됐다. 큰 행사만 6번을 치렀다. 나는 체조대(體操隊)에 속해있었지만 카드섹션을 맡은 배경대(背景隊) 아이들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체조대 아이들은 쉼없이 움직이며 똑 같은 동작을 반복하고 몇층씩 인간탑을 쌓아야 할 때도 있기 때문에 탈골이나 골절상을 많이 입는다. 김정일 생일인 2.16행사를 위해서는 한겨울에 연습을 해야하는데, 그래서 배경대에서는 동상에 걸리는 아이들이 많다.

모든 연습은 군대식으로 이루어진다. 한 학교를 ‘중대’라 부르고, 중대장은 학교 사로청위원장이 맡는다. 학급은 ‘소대’라 부르고 학급반장이 소대장을 맡는다. 한 소대가 카드섹션의 한 개 줄, 체조대열의 한 개 줄을 맡는 식이다.

점심은 도시락으로 먹고, 매일 한 명씩 ‘국 당번’을 정해 학급 전체 아이들이 먹을 국을 집에서 만들어 온다. 한 겨울에 덜덜 떨면서 식은 국에 차가운 밥을 말아 먹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89년에 했던 행사에는 참가자 전원이 중앙사로청 표창을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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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성 (남, 39세, 평양 보통강구역 거주, 2000년 입국)


“오줌 참다 만성방광염 걸리기도”

나는 음악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집단체조에는 동원되지 않았다. 집단체조에는 일반학교 아이들만 동원되고 특수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동원되지 않는다.

대학다닐 때 보통강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는데 같은 병실에 만성방광염으로 입원한 사람들이 몇 있었다. 중학교 때 집단체조 연습을 하면서 너무 오줌을 참아서 방광염에 걸린 것이다.

배경대 아이들의 경우 실전훈련에 들어가면 중간에 휴식시간 없이 몇 시간 동안 한 자리에 앉아 있어야 한다. 깡통을 가지고 다니면서 앉아서 해결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 그냥 참아버린다. 그러니 병에 걸린다. 본행사 때에는 꼼짝도 할 수 없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 그대로 똥오줌을 싸는 경우도 있다.

수천, 수만 명의 아이들이 함께 연습을 하는데 화장실은 몇 개 되지 않아, 연습도중 중간휴식 시간에 아이들이 경기장 주변 곳곳에 방뇨해 냄새가 진동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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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 (남, 36세, 평양시 대동강구역 거주, 2004년 입국)

▲ 배경대에서 카드를 넘기는 훈련을 하는 북한 어린이 (사진 : 영화 ‘어떤나라’ 캡처)

“카드 잘못 넘기면 몽둥이 세례, 집단기합 받아”

나는 5만명 정도가 참여했던 1989년의 행사가 기억에 남는다. 행사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 당시 배경대를 맡았는데 마지막 한 달은 너무도 고통이 심했다. 어린 나이에도 긴장감이 머리카락을 치솟게 만들었다.

카드는 250장 정도 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작은 행사는 80장, 많은 경우 300장 이상이 소요되는 행사도 있다. 두께는 15~20㎝, 무게는 10~15㎏정도 된다. 그것을 매일 짊어지고 다니는 것도 고통이다.

배경대의 위치에 따라 카드 숫자가 달라지기도 한다. 배경대의 중앙은 특히 자주 바뀌는 부위이다. ‘설레임’ ‘깜빡임’ 등의 효과를 담당하는 배경대 역시 카드가 많다. 김일성, 김정일의 얼굴이 등장하는 부분을 맡은 경우에는 특히 조심해야 한다. 카드를 잘못 넘겨 얼굴에 흠집이라도 생기면 큰 일 나기 때문이다.

그 넓은 배경대에서 잘못 된 곳을 어찌 그리 잘 찾아내는지, 동작이 틀리면 가차 없이 선생의 몽둥이가 날아오고, 집단으로 기합을 받기도 한다.

집단체조 연습과정을 담은 기록영화가 개봉되었다는데 있는 그대로를 보여줬을 리 없다. 북한은 외국에서 손님이 오면 철저히 조직되고 연출된 모습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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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희 (여, 35세, 평양시 중구역 거주, 2003년 입국)


“김정일이 행사장에 나오지 않아 펑펑 울었다”

▲ 아리랑을 관람하고 있는 김정일. 3회 관람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진 : 연합뉴스)

조선체육지도위원회 산하 집단체조창작단에서 체조 안무를 맡았다. 체조선수로 체육단에 속해있다 특별히 선발돼 1994년 8월부터 2000년까지 일했다. 그동안 창작에 참여했던 집단체조는 수를 헤아릴 수도 없다.

집단체조창작단은 체조, 악단, 연출, 조명, 경리, 공급, 기계 등 수십개의 과(課)로 나뉘어져 있다. 행사가 계획되면 예술체조, 기계체조 등 역할에 따라, 또는 초장, 종장 등 장(場)별로 부서가 더욱 세분화된다.

행사준비기간 내내 창작단원들의 긴장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특히 김정일이 참석하는 ‘1호행사’의 경우 극도로 긴장하게 된다. 행사가 거의 일년 내내 있기 때문에 늘 긴장 속에 살아간다고 말할 수 있다. 뙤약볕 아래 훈련을 시키다보면, 모자를 뒤집어썼어도 여름이 지나면 얼굴이 새까매진다.

김일성이 죽고 난 후 1995년 1월 1일 행사에 김정일이 참석할 줄 알았는데 참석하지 않아 행사참가자들 모두가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 돌이켜보면 우습지만 북한에 살 때에는 자연스럽게 나도 그렇게 행동했다. 애써 연습한 보람이 없다고나 할까?

아리랑 공연은 녹화테이프를 통해 보았다. 북한은 여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계와 같이 움직이는 것은 전 세계에 북한을 따라올 나라가 없을 것이다. 그러한 공연을 보러 가는 것은 자유이지만 고생하는 북한 주민들도 생각해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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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혜련 (여, 29세, 평양시 중구역 거주, 1998년 입국)


“권력있는 집 자녀들, 집단체조에도 빠져”

나는 집단체조에 동원된 적은 없다. 보통 40명이 한 학급인데 학급당 1~2명 정도는 동원에서 빠진다. 음악, 체육 등 특기생으로 클럽(소조)활동을 하는 경우에 그렇다. 나는 배드민턴 특기생으로 중학교 4학년 때 체육단에 들어갔다.

힘(권력)이 있는 집 아이들도 동원에서 빠진다. ‘후방사업’이라고 하여, 연습에 참가하는 아이들에게 간식을 제공해주고 빠지는 것이다.

몸이 아파서 빠지는 경우도 있는데, 쓰러질 지경이 아닌 이상 모두가 동원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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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민 (남, 44세, 평양시 중구역 거주, 1999년 입국)


“10㎏ 넘는 카드뭉치 들고 다니느라 고생”

▲ 배경대는 수기(手旗)에 따라 동시에 카드를 넘긴다.

중학교 2학년 때인 1975년부터 1977년까지 3년간 동원됐다. 5만 명이 동원됐던 1977년 공연인 ‘조선의 노래’가 기억에 남는다. 1978년에는 7만 명이 동원됐다고 들었다. 75년과 76년 공연에는 배경대, 77년 공연에는 체조대를 맡았다.

릉라도 경기장에 들어서면 카드를 올려놓는 받침대가 있다. 카드 뒤에 앉아서 앞에 있는 지휘자의 수기(手旗)에 따라 카드를 넘긴다. 수천 수만 명이 한꺼번에 카드를 넘기니까 ‘쫙’하는 소리가 나는데 그것만 들어도 외부인들은 전율을 느낄 것이다.

몸집이 작은 내가 10㎏이 넘는 카드를 짊어지고 다니느라 고생했던 기억이 난다. 카드를 만드는 것을 작도(作圖)라고 하는데, 국가에서 색지와 풀 등이 지급되면 개인이 작도한다. 간식을 지급하는 것까지가 집단체조를 위해 국가가 투자하는 전부다.

다른 구역에서 동원된 학생들은 군용트럭을 타고 경기장으로 가는데, 내가 살던 중구역과 모란봉 구역의 학생들은 경기장과 가깝다는 이유로 노래를 부르면서 행진하며 걸어갔다. 그래도 40분이 넘게 걸렸다. 여름, 겨울날 그 먼 길을 힘들게 행진하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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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 (여, 37세, 평양시 삼석구역 거주, 2002년 입국)


“평양 중심부 어린이만 동원하는 ‘충신 만들기’ 과정”

나는 평양 외곽에 거주하는 관계로 집단체조에 동원된 적은 없다. 중학교 때 동대원구역에 사는 친척집을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방학 중에도 사촌이 집단체조를 위해서 동원되는 것을 보고 어린 마음에 솔직히 부러웠다. 수령님이 직접 내려다 보시는 행사무대에 선다고 하니, 북한에서는 굉장히 부러운 일이다.

군용트럭에 올라타고 경기장으로 향하는 모습을 보면서 어찌나 샘이 나던지……. 한밤중에 파김치가 되어 돌아왔는데 오늘은 무슨 당과류를 먹었다고 자랑을 하는 통에 샘이 나서 엉엉 울었던 기억이 난다. “우리도 여기서 살자”고 아버지에게 떼를 썼던 것 같다.

지금 돌이켜보면 북한의 집단체조는 아이들의 혼을 빼놓는 행사가 아닌가 한다. 평양에서도 중심 구역의 아이들만 동원하여 특권의식을 한층 강화시킨다. 육체적 훈련도 되고 ‘충신만들기’의 과정도 된다. 그런 것을 보겠다고 돈을 내고 가는 사람들이 있다니 한심스럽다. 불우한 이웃이나 도왔으면 한다.

▲ 평양시 지도(출처 : NKchosun). 과거에는 평양 중심지역인 중구역, 보통강구역, 대동강구역, 동대원구역 등의 학생들만 집단체조에 동원되었지만 지금은 외곽 구역 및 인접 도시의 학생들까지 동원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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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호 (남, 36세, 평양시 평천구역 거주, 2002년 입국)

▲ 집단체조 공연 연습을 하고 있는 북한 어린이들

“훈련 참가 안하면 ‘평양에서 추방’ 으름장”

남한사람들은 비싼 돈을 내고 아리랑을 보고 돌아와 훌륭하다고 말하지만, 그 속에는 눈물로 얼룩진 아이들의 고달픈 비명이 숨어있다

6개월 전부터 행사를 준비한다. 공연종목을 완성하기 위해 지도원들은 된욕(쌍욕)을 하고, 수십 번씩 반복동작을 시킨다. 훈련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갈 때는 온몸이 나른해지고 저녁에는 다리가 떨려 제대로 걷지도 못한다.

훈련에 참가하지 않으면 행사 지도원들이 부모에게 통보하고, 그래도 안 나오면 당 조직에 통보, 지방으로 추방시킨다. 부모들은 평양에서 추방될까봐 자식들이 힘들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가라고 등을 떠민다. 평양 아이들은 훈련하다 보면 공부도 못하고 대학 가기도 힘들다.

곽대중 기자 big@dailynk.com
한영진 기자 hyj@dailyn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