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인권, 무슨 증거가 더 필요한가?

탈북자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남한주민들의 시각은 대충 두 가지로 그 원인을 분석할 수 있다.

첫째로는 우선 반공교육의 영향으로 북한사람이라면 우리들보다 못한 사람들일 거라는 편견이고, 둘째로는 과거 냉전시절 귀순용사들이 종종 체제선전에 이용되었던 것처럼 그들의 주장이 과장되거나 꾸며낸 것일 수도 있다는 시각이다. 실제 일반인들의 탈북자에 관한 생각을 물어보면 이런 모순된 감정이 혼재되어 있는 사람을 많이 볼 수 있다.

권위주의 정권시절 종종 남북의 대치상황이 정권안보에 이용되기도 했고, 특히 귀순용사들은 그런 체제선전에 가장 좋은 효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을만한 사례가 된 것도 사실이다. 그 당시 학교나 직장 등에서 북한의 실상을 강연하는 소위 ‘귀순용사’들의 증언을 듣다 보면 혹시 저 사람이 은연중에 정권을 옹호하는 발언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런 오해를 하기 십상이었다.

“북한인권단체는 민주화 열망의 마지막 결사체”

‘북한인권’이란 말이 생기기 시작한 이면도 실상은 정말 북한동포들의 인권이나 생활상을 걱정해서라기 보다는 운동권이나 재야인사들을 비판하기 위한 일환으로, 북한체제는 우리보다 더 가혹한 체제인데 그렇게 남한인권을 걱정하고 남한민주화를 걱정한다는 사람들이 그럼 북한인권은 왜 걱정 안 하나, 이런 일종의 반론처럼 나온 측면도 있다.

하지만 과거 야당 대선후보 중에도 “내가 대통령이 되면 북한에도 강력히 민주화를 촉구하겠습니다”고 말한 후보가 있었고, 현재 북한인권운동을 활발하게 하는 단체와 면면들을 살펴보면 “북한인권 운운은 ‘수구꼴통’들이나 하는 소리”란 말은 쏙 들어가게 되고 만다.

1996년 5월에 발족한 <북한인권시민연합>은 국내의 인권운동가와 북한문제 전문가들이 중심이 되어 만들어진 단체다. 인권변호사 출신으로 80년대 김근태, 권인숙 고문사건 등을 변호했던 김상철 변호사의 경우는 90년대 들어 탈북자의 난민지위 부여가 필요하다며 1999년 <탈북난민UN 청원운동본부>를 발족했고, 전대협 간부출신인 도희윤씨와 故 이서 목사님 등이 중심이 되어 만들어진 <피랍탈북인권연대>가 2000년에, 그리고 ‘북한선교’를 비전으로 내건 기독교 선교단체인 <두리하나선교회>도 1999년에 창설되었다. 한편 전향한 좌파인사들이 중심이 되어 만든 <북한민주화 네트워크>도 1999년에 출범했다.

면면들이 이럴진대 북한인권운동가들은 ‘수구꼴통’은커녕 오히려 “유신체제이래 수십 년간 뜨겁게 타올랐던 한민족의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마지막으로 결집된 결사체”쯤으로 정의를 내려도 무난할 것 같다. 정작 황장엽씨와 보수원로들이 중심이 되어 만든 ‘북한민주화포럼’은 2004년도에나 되어서 창설되었으니 한발 늦은 셈이다.

탈출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사회, 그것이 바로 증거다

2년 전 국가인권위원회는 ‘북한인권실상은 증거나 자료가 부족해 입장을 밝히기 어렵다’고 말한 적도 있다. 북한인권문제는 증거가 없어서 모른다고 하는 사람들, 탈북자의 증언은 믿기 어렵다고 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은 그럼 도대체 유신이나 5공시절 떠돈 그 무수한 ‘카더라’방송이나 유비통신, 혹은 광주사태 때 계엄군이 임산부를 어떻게 했다느니 OOO이가 경상도 군인들을 내려보내 광주시민들을 어떻게 하려고 한다느니, 그런 실체도 없고 물증도 나오지 않은 소문들에 대해선 어떻게 그대로 믿었다는 말인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북한의 식량난이 거듭된 지 어언 10년 세월이다. 이젠 탈북자도 국내에만 7천여 명, 중국 연변에는 그 수를 여전히 헤아릴 수 없이 많고 그들의 증언록도 낙동강 모래알만큼이나 많다. 뿐인가. 이젠 노동단련대, 정치범수용소, 공개총살현장을 찍어온 동영상이 공개되기까지 했다. 탈북자를 붙잡아온 초소에서 벌어지는 가혹행위까지 공개되었다. 더 이상 무슨 증거가 더 필요한가.

1987년 김만철씨 일가 북한탈출 사건이 있은 뒤, 그의 증언을 ‘아! 따뜻한 남쪽나라’란 제목의 책으로 엮어낸 문용수란 작가가 있다. 그는 70~80년대 종종 이런저런 반공드라마나 영화 시나리오를 써낸 작가다. 하지만 그도 김만철씨에겐 이렇게 말했었다고 한다.

“김선생! 거 제발 좀 과장은 하지 마시오. 아무렴 거기도 사람 사는 곳인데…….”

그러나 김만철씨는 이렇게 발끈했다고 한다.

“여보시오 작가양반! 증거요? 70이 다된 노인에서부터 열두 살 어린아이까지 모조리 데리고 탈출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사회. 이보다 더한 증거가 세상에 어디 있단 말이오?”

※ 이 글의 필자인 훼드라(필명)는 북한인권문제에 관심을 갖고 열정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인터넷 논객입니다. 독자마당에 올려진 글을 여기에 옮겼습니다. – 편집자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