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9년 KAL기 납치피해자 “주검 아닌 생전에 만나고파”



▲6일 이화여대 포스코관에서 열린 간담회에 참석한 황인철 대표. /사진=데일리NK 박성애 인턴기자

살아 계신다고 하면 달을 보면서 지금 아버지도 보고계시겠지라고 하며 그리움을 달랠 수 있으련만, 돌아가셨다면 제사라도 지낼 수 있으련만, 이런 작은 소망조차 막는 무리들이 원망스럽고 원통합니다.”

황인철 ‘1969KAL기 납치피해자가족회대표가 강릉발 대한항공 국내선 NAMC YS-11기가 북한 공작원에 의해 항공기가 납치돼 북에서 돌아오지 못한 11명 중 한 명인 부친을 그리워하면서 쓴 편지 내용의 일부다.

황 대표는 6일 이화여자대학교 포스코관 동(同)대 교수들과 유학생들이 참석한 간담회에서 국제법과 인도적 차원에서도 그렇고 항공기 불법 납치 억제에 관한 협약항공기 내에서 발생한 범죄 및 기타 행위에 과한 협약등에 따라 아버지를 포함한 KAL기 미귀환 납북자 11인은 집으로 돌아와야 한다며 관심을 호소했다.

그는 또 더 시간이 지나기 전에 여러분의 관심으로 미송환 피해자와 가족들이 주검이 아닌 살아 생전에 만날 수 있도록 페티션(서명운동)에 함께 참가하고, 공유하여 희망을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한다고 말했다.

NAMC YS-11기는 19691211, 북한 공작원에 의해 납치당했다. 당시 항공기에는 승무원 4명과 46명의 승객이 탑승했었다.

국제사회에 이 사실이 알려지자 북한 당국은 여론을 의식해 납북자 50명 모두를 송환 하기로 했으나, 정작 판문점에 나온 송환자는 39명이었다. 현재 나머지 11명은 억류돼 생사를 확인 할 수 없는 상태다.

황 대표는 간담회에서 ‘20013차 이산가족 상봉을 보고 부친을 만나야겠다고 생각했고 당시 딸을 갓 낳았던 내가, 그맘 때의 어린 나를 두고 북한으로 납치된 아버지의 심정을 상상하니 그런 고통이 세상에 없을 것 같았다며 납치자 송환 문제 해결에 나서게 된 계기를 밝혔다.

그는 이어 당시 돌아온 39명의 증언에 의하면 아버지가 공산주의 사상 교육 시간에 반박을 하고 집으로 돌려보내 줄 것을 북한당국에 강력히 요구를 했고, (이 결과로) 2주 동안 어딘가로 끌려가기도 했다고 전했다.

황 대표의 부친 황 원 씨는 197011, ‘가고파노래를 부르면서 집으로 돌려보내줄 것을 북한 당국에게 강력히 항의했고, 알 수 없는 곳으로 또 다시 끌려갔다. 돌아온 승객들(39, 1970214일 송환)은 이들이 판문점을 통해서 송환될 때까지 황 대표의 부친을 다시 볼 수 없었다고 증언했다.

황 대표는 지난 16년간 부친의 생사확인과 송환을 위해 직장도 그만두고 관련 활동을 열정적으로 해오고 있다. 우리 정부와 북한 당국, 유엔 등 국제기구에 납북자 송환을 위해서 청원서를 제출하고 답을 기다렸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불가능이라는 냉정한 답변뿐이었다.

황 대표는 현재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다. 이날 간담회에서 한 유학생이 현재 미송환 납북자가 11명인데, 그 가족들도 송환운동에 동참했냐”고 묻자, 황 대표는 납북 피해자들은 거동이 불편할 정도로 고령이여서 함께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답했다.

한편 황 대표는 20105월 에는 유엔의 강제적·비자발적 실종에 관한 실무그룹’(WGEID)에 억류자의 생사 확인과 송환을 요청하는 진정서를 제출해 ‘WGEID’는 북한에 사건조사와 답변을 요청하기도 했다.

또한 황 대표는 2010년 이후에는 매년 1211, 서울정부청사 앞에서 납북자 송환에 대한 시위를 통해 우리 정부의 노력을 촉구해 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