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북된 아버지 돌려주세요”…임진각서 울려퍼진 아들의 호소



▲ 17일 황인철(49세, 좌측 2번째) ‘1969년 KAL기 납치피해자가족회’ 대표가 경기도 파주시 임진각 자유의다리에서 납북된 아버지 황원(당시 32세, MBC PD로 재직)씨의 송환을 절절한 마음을 담아 호소했다. 이날 행사에는 탈북자 지원단체 TNKR(Teach for North Korean Refugees) 회원 등 10여명이 함께 했다./사진= 황인철 대표 제공

1969년 12월 11일 강릉발 김포행 국내선 대한항공 ‘YS-11’ 여객기는, 탑승자 전원이 내리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 비행 중입니다. 국제협약에 따라 아직 돌아오지 못한, 우리 아버지를 포함한 KAL기 납북자 11명을 돌려보내주세요.

황인철(49) ‘1969년 KAL기 납치피해자가족회’ 대표가 17일 경기도 파주시 임진각 자유의다리에서 납북된 아버지 황원(당시 32세, MBC PD로 재직)씨의 송환을 절절한 마음을 담아 호소했다.

이날 임진각에는 황 대표와 가족, 탈북자 지원단체 TNKR(Teach for North Korean Refugees) 회원 등 10여 명이 납북자 귀환을 기원하기 위해 모였다.

북한은 1969년 12월 11일, 50명을 태우고 강릉에서 서울로 향하는 대한항공 YS-11기를 고정간첩(조창희, 당시 42세)을 통해 납치했다. 당시 39명은 남한으로 돌아왔지만, 서울 MBC에서 열린 편성계획회의 참석 차 비행기에 탑승했던 황 대표의 아버지 황원씨를 포함한 11명은 북한에 강제 억류됐다.

황 대표는 ‘2001년 3차 이산가족 상봉’을 보고 아버지를 만나야겠다고 생각했고 “당시 딸을 갓 낳았던 내가, 그맘 때의 어린 나를 두고 북한으로 납치된 아버지의 심정을 상상하니 그런 고통이 세상에 없을 것 같았다”며 납치자 송환 문제 해결에 나서게 된 계기를 밝혔다.

그는 이어 “당시 돌아온 39명의 증언에 의하면 아버지가 공산주의 사상 교육 시간에 반박을 하고 집으로 돌려보내줄 것을 북한당국에 강력히 요구를 했고, (이 결과로) 2주 동안 어딘가로 끌려가기도 했다”고 전했다.

황원 씨는 이후 1970년 1월 1일, ‘가고파’ 노래를 부르면서 집으로 돌려보내줄 것을 북한 당국에게 강력히 항의를 했고, 알 수 없는 곳으로 또 다시 끌려갔다. 돌아온 승객들(39명, 1970년 2월 14일 송환)은 이후, 이들이 판문점을 통해서 송환될 때까지 황 대표의 아버지를 다시 볼 수 없었다고 증언했다.

황 대표는 지난 16년간 아버지의 생사확인과 송환을 위해 직장도 그만두고 관련 활동을 열정적으로 해왔다. 2010년 5월 에는 유엔의 ‘강제적·비자발적 실종에 관한 실무그룹’(WGEID)에 억류자의 생사 확인과 송환을 요청하는 진정서를 제출해 ‘WGEID’는 북한에 사건조사와 답변을 요청하기도 했다.

또한 황 대표는 2010년 이후에는 매년 12월 11일, 서울정부청사 앞에서 납북자 송환에 대한 시위를 통해 우리 정부의 노력을 촉구해 오고 있다.

황 대표는 이날 “국제협약에 따라 아직 돌아오지 못한 KAL기 납북자 11명은 돌아와야 한다”면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에게 호소하는 편지도 낭독, 국제사회의 관심도 촉구했다.

KAL 납치 사건이 과거사로 치부되는 것이 가장 슬픈 일이라는 황 대표는 “탑승자 전원이 내리지 않았기 때문에 ‘대한항공 YS-11’기는 여전히 ‘비행중’”이며 아버지를 포함한 11명의 납북자들이 송환될 때까지 활동을 이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