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L機 납치자 아직도 ‘비행중’…“北, 3국서 자유의사 밝히게 하라”



▲ 황인철 대표가 11일 납치자들의 송환을 위해 북한 당국이 ‘납북자들이 제 3국에서 자유의사를 밝힐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황 대표가 아버지인 황원(납북 당시 32세)씨의 사진을 들고 있다. /사진=김성환 데일리NK 기자

황인철(48) ‘1969년 KAL기 납치피해자가족회’ 대표는 11일 서울 정부청사후문에서 납치 피해자들의 송환을 위해 북한에 ‘납북자들이 제 3국에서 자유의사를 밝힐 수 있게 허용하라’ 기자회견을 열었다.

황 대표는 “47년 전 오늘 내 아버지를 포함한 50명이 납치 됐다”며 “아버지를 포함한 11명은  ‘자유의사’를 표명할 기회조차 박탈당한 채 아직까지 북한에 강제 억류되어 있다”고 일갈했다.

2010년 이후 매년 12월 11일 서울정부청사 앞에서 납북자 송환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여왔던 황 대표는 “1970년 국제적십자사가 북한 당국에게 납북자들의 자유의사를 밝히도록 촉구했지만 북한 당국은 이 문제는 ‘공화국의 상환’이므로 국제적십자 위원회는 이 문제에서 손을 떼라고 말했다”며 “지금이라도 북한이 납북자들에게 자유의사를 표명할 수 있게 해 본국으로 송환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북한은 1969년 12월 11일, 50명을 태우고 강릉에서 서울로 향하는 대한항공 YS-11기를 고정간첩을 통해 납치했다. 당시 39명은 남한으로 돌아왔지만, 출장 중이던 황 대표의 아버지 황원(당시 32세)씨를 포함한 11명은 북한에 강제 억류됐다.

황 대표는 ‘2001년 3차 이산가족 상봉’을 보고 아버지를 만나야겠다고 생각했고 “당시 딸을 갓 낳았던 내가, 그맘때의 어린 나를 두고 북한으로 납치된 아버지의 심정을 상상하니 그런 고통이 세상에 없을 것 같았다”며 납치자 송환 문제 해결에 나서게 된 계기를 밝혔다.

황 대표는 지난 15년간 아버지의 생사확인과 송환을 위해 직장도 그만두고 관련 활동을 열정적으로 해왔다. 2010년 5월에는 유엔의 ‘강제적·비자발적 실종에 관한 실무그룹’(WGEID)에 억류자의 생사 확인과 송환을 요청하는 진정서를 제출해 ‘WGEID’는 북한에 사건조사와 답변을 요청하기도 했다.

KAL 납치 사건이 과거사로 치부되는 것이 가장 슬픈 일이이라는 황 대표는 “탑승자 전원이 내리지 않았기 때문에 ‘대한항공 YS-11’기는 여전히 ‘비행중’”이며 아버지를 포함한 11명의 납북자들이 송환될 때까지 이 치열한 싸움을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

1. 1969년 ‘KAL기 납치사건’에 대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제가 두 살 때였습니다. ‘KAL기 납치사건’은 지난 1969년 12월 11일 강릉발 김포행 국내선 대한항공 ‘YS-11’ 여객기가 대관령 상공에서 정오 12시 25분에 이륙 후 10분 만에 북한 고정간첩 조창희에 의해 강제로 납치가 된 사건을 말합니다. 당시 탑승객은 승무원 4명과 승객 47명으로 총 51명 이었습니다.

2. 납치된 사람들 중에 몇 명이 한국으로 돌아왔나요?

당시 국제사회의 빗발치는 비판 여론에 의해 북한이 1970년 2월 4일 날 전원 송환을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돌연 약속을 어기고 1970년 2월 14일 승객 39명만 부분 송환됐다. 아직 돌아오지 못하신 분은 아버지를 포함해 11명입니다. 

3. 북한에서는 생사 확인도 안 해주고 아예 납치 사실을 부인하고 있는 건가요?

북한이 이 사건에 대해서 부인하는 것 자체는 말이 안 됩니다. 당시 돌아온 39명의 증언에 의하면 저희 아버지가 공산주의 사상 교육 시간에 반박을 하고 집으로 돌려보내줄 것을 북한당국에 강력히 요구를 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2주 동안 어딘가에 끌려가셨다가 오셨는데 그리고 나서 1970년 1월 1일 날 ‘가고파’ 노래를 부르면서 집으로 돌려보내줄 것을 북한 당국에게 강력히 항의를 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다가 또 당국에 끌려가서 결국 자기들(돌아온 39명)이 판문점 통해서 송환될 때까지 저희 아버지를 보지를 못했다라고 증언을 해줬습니다. 그래서 이 부분에 있어서는 북한이 어떤 이야기를 한다고 하더라도 설득력이 없는 얘기고 그것은 거짓말입니다.

4. 가슴이 아프시겠지만 아버님에 대해 여쭤보겠습니다. 대표님 아버님께서는 어떤 일을 하셨나요?

아버지는 당시 MBC방송국에 피디로 근무를 했었고 비행기에 탑승하게 된 이유는 서울 MBC에서 편성계획회의가 있어서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비행기를 탑승하게 된 것입니다. 

5. 그 당시 남한으로 돌아오신 분들 중에서 유감스럽게도 대표님의 아버지를 포함한 몇 분은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전원이 남한으로 돌아와야 했는데요, 아버님을 비롯한 몇 분이 돌아오지 못한 이유를 알고 계신가요?

돌아온 39명의 증언에 의하면 11명이 자유의사를 밝히지 못하게 된 것이고요. 그리고 당시 1970년도 3월에 국제적십자위원회가 제3국과 제3자를 통해서 자유의사를 확인해보자고 제안을 했습니다. 그때 북한 당국은 본 상황은 공화국의 송환이므로 국제적십자위원회는 이 문제에서 손을 떼라면서 답신 한 장으로 거절을 했죠.

6. 이 과정에서 아버님의 의사는 전혀 반영이 안 됐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북한 당국이 아버님을 억류했던 명분은 무엇이었나요?

2011년도 3월에 제가 대한적십자총재의 명으로 국제적십자위원회를 통해서 북한적십자위원회에다가 저희 아버지를 포함해서 11명의 생사확인을 하는 전문을 발송했습니다. 북한은 2011년도 10월에 그에 대한 답변을 보내줬는데요. 답변에는 “남으로 돌아가지 않은 자들은 자의에 의해서 북한에 머무는 것이며, 이들의 생사확인은 불가능하다”는 내용이 적혀있었습니다. 북한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11명이 북한 땅이 좋아서 머물러 있다고 하는 것인데 그것은 명백한 거짓말이죠.

7. 그래서 오늘처럼 ‘제 3국’에서라도 자유의사를 밝힐 수 있게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시는 거군요?

그렇습니다, 당시에 밝히지 못했던 자유의사를 이제라도 밝혀야 합니다. 이것은 명백히 국제법으로 보장된 절차중의 하나이기도 합니다.

8. 부친을 비롯한 납북자 송환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해 오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동안의 과정에 대해 소개 부탁드립니다.

제가 거창하게 전체 납북자를 위해서 운동을 한다고 말씀드리지는 못합니다. 왜냐하면 저는 개인적으로 저의 아버지가 자유의사를 밝히지 못하고 있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희 아버지가 자유의사를 밝혀 반드시 우리 땅으로, 우리 집으로 송환돼야 한다는 신념하에 저는 운동을 계속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2006년도 6월에 북한적십자위원회가 대한적십자사를 통해서 생사확인 불가라고 하는 통지서를 보내줬어요. 저는 그 통지서를 보면서 느낀 것은 북한으로 납치된 내 아버지가 살아계셔도 북한에 계실 것이고 돌아가셔도 북한에 계실 것인데, 생사확인 불가라는 통지서 자체는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이라고 생각했어요. 그 통지서를 들고 이런 답변이 세상에 어디 있나 하면서 통곡을 했습니다. 그리고서 대한민국 정부를 찾아갔죠. 다음 후속대책이 무엇이냐고 물으니까 대한민국 정부는 납북자는 이산가족으로 분류돼 있기 때문에 이산가족 상봉신청을 하면 정부가 북한 측에 전달은 하지만 북한이 어떠한 답변을 준다고 하더라도 이산가족의 수가 너무나 많기 때문에 정확한 답변을 들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결국 대책방안은 전혀 없다는 말을 듣고 제 자신이 납득이 되지 않고 말도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지속적으로 생사확인과 송환을 위한 100만인 서명운동을 추진했어요. 강릉시청을 통해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면서 캠페인 운동을 진행했고요. 2010년 6월 17일 유엔인권이사회 산하 강제적 비자발 실종 실무반에 국내 납북자 중에는 처음으로 저희 아버지를 접수하면서 국제사회가 이 문제에 관심을 갖도록 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을 해왔습니다.

9. 이야기를 듣다 보니까 저도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KAL기 납북자 송환’ 문제에 대한 정부의 입장은 어떤건가요?

정부는 해결방안이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습니다. 북한이 납치 사실을 부인하고 있기 때문에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 없다는 것이 정부 당국의 입장이었죠. 사실 저는 이 사건은 실체가 너무 명백하기 때문에 북한이 부인한다고 하더라도 그것과 상관없이 사실에 입각해서 또한 절차에 따라서 정부에 촉구하면 제 아버지의 송환은 이뤄질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정부는 난색을 표명하면서 실질적으로 해결하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10. 한국 정부가 아버지의 송환을 위해서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지 않는 거군요?

그렇습니다. 납북자들의 송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것은 북한 당국의 문제가 제일 크지만 한국 정부도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민간항공기 불법 납치 사건은 예외 없이 인도와 기소를 이행해야 합니다. ‘항공기 불법 납치에 억지에 관한 협약’과 ‘항공기 내에서 발생한 범죄 및 기타행위에 관한 협약’에 의해 아버지를 포함한 11명의 납북자는 송환되어야 합니다.

이런 사실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부인한다고 해서 한국 정부가 움직이지 않는다면 이것은 대단히 잘못된 것입니다.

11. 대표님은 부친을 비롯한 납북자분들을 위해 많은 활동을 하실 텐데요.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시나요?

제가 지금까지 납북자 송환 문제 관련 활동을 해오면서 싸웠던 것은 ‘1969년 KAL기 사건은 과거의 사건이다’라는 인식입니다. ‘이 사건이 현재 우리와 무슨 관계가 있느냐’하는 이야길 들으면서 이런 잘못된 인식과 싸움을 벌이고 있습니다. 내 아버지를 포함한 11명은 아직 돌아오지 못했는데 이것이 어떻게 과거의 문제겠습니까.

탑승자 전원이 내리지 않았기 때문에 대한항공 YS-11기는 아직 ‘비행중’입니다. 저는 이들 모두가 무사히 본국에 송환될 수 있도록 끝까지 노력할 것입니다. 아버지를 포함한 11명이 집으로 돌아오지 못할 이유는 지구상에 단 한 가지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희 아버지를 포함한 열 한분은 반드시 돌아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시 한 번 국제사회의 힘과 함께 자유의사를 밝힐 수 있게끔 북한당국을 강하게 압박해 나갈 것입니다.  



▲북한당국에게 ‘납북자들이 제 3국에서 자유의사를 밝힐 수 있도록 할 것’을 강력히 촉구하는 황인철 대표. /사진=김성환 데일리NK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