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생일] 김정일 우상화 역사와 김정은의 활용 전략

내일은 김정일의 생일인 2월 16일입니다. 오늘은 김정일 생일에 관련한 특집대담을 보내드립니다. 정교진 고려대 연구교수와 함께 김정일 우상화 전략을 분석해 보는 시간 마련했습니다.

자리에 정교진 연구교수님 나와 계십니다. 안녕하세요. 
 
1. 먼저 북한에서는 김정일의 생일을 광명성절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김일성의 생일인 태양절과 더불어 가장 큰 명절인데요. 김정일 생일과 관련해 북한 당국이 가장 중시하는 우상화 전략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김정은 정권이 들어서면서 특히, 2014년부터 그 우상화 전략이 확연히 바뀌었는데요. 김정은이 가장 주력하고 있는 핵무력, 핵강국 관련해서는 김정일뿐만 아니라, 김일성이 쏙 빠져버렸고, 오로지 김정은의 치적으로 돌리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김정은의 ‘세계의 태양’이라는 지도자 상징이 핵무력과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2016년 김정은의 신년사부터는 노골적으로 핵관련해서는 김일성, 김정일의 유훈이라는 내용을 완전히 배제시켰습니다.

작년 12월 17일이 김정일 사망 6주기였는데, 그 당시도 북한매체들이 김정일을 한창 선전했는데, 재미있는 것은 김정일 선전 초점이 ‘인민애’, ‘애민관’에 맞춰졌다는 겁니다. ‘자애로운 어버이’, ‘다감하신 어버이’라고 하면서 말이죠. 사실, 이 컨셉은 김일성과 그의 화신을 자처하는 김정은을 띄우는 방식이었습니다. 선군사상을 내세웠던 김정일을 향해서는 북한이 작년 11월 29일 ICBM급 발사 성공을 김정일 유훈에 맞추면 제격이었는데, 그쪽으로 연결시키는 북한매체는 없었습니다. 하나같이 ‘김정은 동지의 전무후무한 핵무력 건설업적’이라고 선전하였습니다. 알맹이, 노른자는 다 김정은 차지가 되었고 단지, 김정일 우상화 방향은 경제개발관련 및 생산향상 촉진 관련해서 그 초점이 맞추어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김정일의 교시인 “우렝이유기농법을 받아들이면 많은 로력과 농약을 절약하면서도 알곡소출을 높일 수 있습니다”는 식의 김정일을 띄우는 방식입니다. 이번 김정일 생일을 앞두고도 그 선전 방식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김정은이 알맹이를 독차지하고 김정일에게는 쭉정이만 돌아간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2. 김정일 우상화에도 각종 상징물들이 등장하는데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이것을 저는 ‘지도자상징화매개체’라고 하는데, 먼저, 지도자기념일이 있고요, 다음은 지도자기념관, 동상, 그리고 지도자찬가(숭배가)와 지도자일화·역사가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김정일 생일이 민족최대명절로 그 기념일명이 ‘광명성절’인데, 김정일 사후 2012년 2월 16일에 지정되었습니다. ‘김정일기념관’에는 ‘김정일혁명사적지’도 포함되는데, 북한전역에 수없이 많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김정일이 현지지도 갔던 장소가 다 혁명사적지가 되는 거거든요.

김정일 동상은 마찬가지로 그의 사후인 2012년부터 세워졌는데, 대표적인 동상이 4월13일에 만수대언덕 김일성 동상옆에 세워진 동상입니다. 이번 김정일 생일에도 가장 많은 인파들이 와서 숭배하는 장소가 될 것입니다. 금수산태양궁전 내에 세워진 립상도 그 당시에 세워졌습니다. 이후 김일성종합대학을 비롯한 북한주요 기관 및 지방 모든 곳에 김정일의 동상이 세워졌습니다. 

김정일찬가, 숭배가는 김정일 생전 때부터 수없이 많았고요. 김정일일화·역사는 ‘김정일어린시절따라배우기’ 와 ‘김정일혁명역사·혁명활동’과 ‘김정일전설집’등이 대표적입니다. 김정일 생일을 앞두고 북한매체에서 계속해서 선전하고있는 ‘김정일화(꽃)’도 빠질 수 없는 김정일 우상화의 상징물입니다. 

3. 김정일은 1980년대 후계자로 등장한 이후부터 본인에 대한 우상화, 신격화를 본격화 했습니다. 어떤 과정을 통해 이뤄졌는지 간략히 정리해주시죠.

김정일의 혁명사적지가 조성되는 진행과정을 보면 김정일의 우상화 과정을 추적할 수 있습니다. 김정일이 1980년에 공식 후계자로 채택된 이후 1982년부터 본격적으로 김정일 우상화가 진행되었습니다. 1982년부터 김정일의 출생년도를 1941년에서 1942년으로 바꾸고 김정일이 백두산 밀영에서 태어났다는 ‘백두산 출생설’을 공식발표했습니다. 이때, 김정일의 출생을 매우 신성화시켰습니다. ‘김정일 전설집’에 그 내용이 자세하게 나오는데요, 여기서 김정일을 신화적 존재로 부각시켰는데, 김일성의 빨치산 동료들이 나무껍질을 벗기고 썼다는 ‘구호나무들’은 김정일의 출생을 더욱 신비롭게 하는 선전물들입니다.

김정일의 첫 혁명사적지는 김정일의 어린시절과 관련 있는 것으로 1982년에 평양에 조성한 ‘어은혁명사적지’와 ‘장산 혁명사적지’가 있는데, 장산혁명사적지는 1957년 3월31일에 김정일이 나무를 심은 곳이라고 기념하는 장소입니다. 소년 김정일이 기껏 나무하나 심은 곳이 혁명사적지가 되어 기념되고 있는 것입니다. 우상화의 정도를 알 수 있는 대목이죠.

1986년 ‘수령론’(혁명적수령관)이 ‘사회정치생명체론’으로 전환되면서 김정일 우상화는 더 극에 달합니다. 그 다음해인 1987년부터 백두산 밀영을 김정일 혁명사적지로 지정하였고 1988년에는 백두산 장수봉을 정일봉이라고 개명하고 북한전체인민들이 수행하는 ‘배움의 천리길’의 필수코스로 그곳에서 충성맹세를 하게합니다. 백두산은 혁명의 성지이자 김정일 우상화의 시작이자 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또 하나의 사적지는 바로 ‘무포혁명사적지’입니다. 이곳은 1994년 2월에 조성되었는데, 김정일이 1971년 9월 4일에 이곳을 방문해서 주체사상의 체계화를 구상했다는 곳입니다. 그래서 북한인민들이 가장 많이 찾는 김정일 사적지 중에 하나이기도 합니다. 김일성이 사망한 1994년 7월 이후부터는 얼마나 많은 김정일의 혁명사적지가 세워졌을지는 충분히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김정일 우상화의 극치를 보여주는 때가 김일성이 사망하기 전인 1992년부터로 볼 수 있는데요. 이때, 김정일이 원수로 추대되고 그 후 불과 6개월 어간에 김정일 찬가가 무려 1600편이나 창작되어집니다. 또 이시기에 김정일 신격화가 가장 잘 드러난 ‘김정일 전설집’(광명성전설집)이 출간됩니다. 1996년에 다시 재 출판되는데, 그 구조를 보면,  김정일탄생설화, 어린시절 김정일전설, 어른 김정일 전설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그것을 보면, 1987년에 출간된 ‘김일성 전설집’과 우상화 강도를 쉽게 비교할 수 있습니다.  

4. 김일성 우상화와는 어떤 차별화가 있다고 볼 수 있을까요?

먼저, 두 사람의 전설집만 놓고 본다면, 김일성 전설집은 김일성뿐만 아니라, 김일성의 빨치산 동료, 부하들도 신비한 능력을 발휘하는 것으로 나옵니다. 쉽게 말하면 김일성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다 도술을 부립니다. 그래서 김일성을 신격화했다고 평가하기에는 어렵습니다. 반면, ‘김정일 전설집’은 다릅니다. 신묘막측한 능력을 발휘하는 인물은 김일성, 김정숙, 김정일 딱 세 사람뿐입니다. 다른 이들은 아주 평범한 인물들로 그리고 있습니다. 이것은 김씨 부자를 신화적 인물로 묘사했다고 볼 수 있을 겁니다.

김일성, 김정일의 어린시절 이야기 내용을 볼 때도, 차이가 있습니다. 김일성은 단지 산수샘을 잘하는 영특한 소년으로 묘사하는데 그치지만, 김정일의 어린시절이야기에서는 김정일이 7세때 혼자 말을 탔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김일성 보다 김정일에 대한 우상화 강도가 센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김정은의 어린시절이야기에서는 김정은이 세 살 무렵에 자동차를 운전하고 총을 쏴서 백발백중 명중했다는 것을 보면, 김일성과 김정일 보다 그 강도가 훨씬 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저는 이것을 ‘지도자상징정치’의 강도가 김정은 시기에 가장 강하게 작동된다고 이론적으로 설명하는데요.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바로 리더십확보와 우상화강도는 반비례한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리더십이 불안할수록, 그만큼 우상화강도는 높아지는 것입니다.

신격화와는 좀 다른 차원이지만, 저는 북한에서 지도자상징의 최고 정점이 바로 ‘수령’이라고 보는데요, 수령은 주석과 같은 직함이 아니라, 북한지도자들의 대표적인 이미지면서 상징입니다. 우상화강도와는 달리 ‘수령’을 통해 우리는 김씨 3대부자의 지도자 상징성 위치를 비교할 수 있습니다. 비록, 북한이 ‘수령제’ 사회지만, 북한의 당문건이나 정치문건, 심지어는 북한매체 어디에서든지 오직 김일성의 이름에만 수령이 직접 붙습니다. 김정일도 김정은에 의해 2012년 ‘영원한 수령’으로 추대되었지만, 저는 지금까지 어떤 매체에서도 김정일수령, 수령김정일이라고 지칭한 것을 본적이 없습니다. 단지, 김일성과 통칭해서 ‘선대수령님들’, ‘위대한수령님’들로만 불려질 뿐입니다. 김정은의 경우에는 아직까지도 김정은의 이름을 ‘수령’이라는 용어와 감히 붙여 쓰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여전히 북한체제가 강력한 유훈통치 속에 흘러간다는 것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5. 매년 김정일의 생일이 다가오면 주민들에게 ‘충성의 선물’이라는 외화벌이 과제가 떨어집니다. 축하하는 날에 오히려 강제성을 부여해서 주민들을 힘들게 하는 모습인데요.

북한 노동신문을 보면, 김정일의 광명성절 축하 준비대회 기사가 지난달 1월 21일부터 나오는데요. ‘광명성절 경축준비위원회 여러 나라에서 결성’이라는 제목으로 탄자니아와 에디오피아에서 각각 1월 6일, 9일에 광명성절경축 준비위원회가 결성되었다고 하면서 준비위는 1월6일부터 2월 16일 기간까지 김정일의 혁명생애와 업적을 칭송하는 다양한 정치문화행사를 조직한다는 내용입니다. 어제 11일자에서도 노동신문은 러시아에서도 준비위원회가 결성되었다고 기사를 냈습니다. 국제준비위원회 결성기사만 총 13차례 나옵니다. 한 기사에 대략 세-네 나라가 소개되는데, 이정도면 광명성절을 얼마나 성대하게 치르는지 한눈에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당연히 많은 자금이 들어 갈 수밖에 없겠죠. 이것을 ‘충성의 선물’이라는 명목 하에 외화벌이 과제가 떨어지는 거지요. 올해는 김정일화 명명 30돌로 곳곳에서 요란하게 꽃전시회를 계획 중인 것 같습니다. 올해 김정일의 생일기념의 포커스는 ‘김정일화’ 전시회 및 관련 행사인 것 같은데요. 북한 전역 김정일화 전시회에 들어가는 비용만 해도 어마어마할 것 입니다. 이 같은 전국행사준비에 북한주민들이 동원될 것이고, 그렇잖아도 ‘자력자강’, ‘만리마정신’의 기치아래 각종 노력동원에 지칠대로 지쳤을 텐데, 김정일 생일기념준비에도 동원되어야 하니 죽을 맛일 것입니다. 거기에 돈도 내야하니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6. 실제 주민들의 평가도 궁금한데요. 초창기에는 비교적 우상화에 대한 반감이 적었을 수 있지만 수십년 간 이어지면서 의심과 불만도 커졌을 것 같은데요?

물론, 내심 속으로는 많은 의심과 불만들이 있겠지만 쉽게 표출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죠. 북한주민들의 반감이 가장 증폭되는 시점에 김정일의 우상화강도가 가장 높아진 것을 보면 말입니다. 김정일 사망한 다음해인 2012년은 김정일 우상화의 최고정점을 찍습니다. 김정일의 시신이 김일성 옆에 안치되었고,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기념궁전’이 ‘금수산태양궁전’으로 바뀌면서 김정일도 김일성처럼 “북한인민들과 영원히 살아계신다”는 ‘김정일 영생설’이 대두되었거든요. 재미있는 것은 김정일 생일기념일명이 광명성절인 만큼 ‘달로서 영생하신다’고 할 법한데, ‘태양으로 영생한다는 것입니다.’, 김일성도 태양으로 영생하고, 김정일도 같은 태양으로 영생한다는 아주 이상한 논리가 작동되는 것이죠.

바로 여기서 기독교에서 말하는 삼위일체의 속성이 드러납니다. 김정은도 태양이라고 부르는 만큼, 삼위일체가 작동된다고 보는 게 맞지요. 이처럼, 북한은 종교성이 매우 강한, 아니 김씨부자를 신으로 섬기는 종교집단입니다. 김정은 시기에 와서는 좀 삐꺽대는 것 같습니다. 워낙 김정은에 대한 우상화강도를 쎄게 하다보니 말입니다. 세 살짜리가 어떻게 자동차를 운전하고 사격을 하여 백발백중 맞출 수 있냐고, 북한주민들, 특히 어린세대들이 적지 않은 의심과 반감을 갖는 것 같습니다.

7. 김정일의 생일은 비단 김정일을 기리기 위한 것을 넘어서 김정은에 대한 우상화와도 직결된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어떻게 보십니까?

김정은이 김정일의 친아들이면서 권력 승계자이기에 김정은의 우상화와 김정일이 직결될 수밖에 없죠. 북한이 가장 중점적으로 내세우는 것이 ‘백두혈통’으로서의 ‘백두절세위인들’아닙니까. 김정일은 주체사상을 체계화 시켜 ‘김일성주의’라고 했습니다. 김정은은 김정일이 사망한 후 김일성주의에 ‘김정일 애국주의’를 첨부시켜 ‘김일성-김정일주의’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김정일을 띄우는 것 같지만,  김정은은 이 같은 사상을 만들어낸 ‘사상의 천재’, ‘사상이론의 대가’라는 중요한 지도자상징성을 획득하게 되었습니다. 동시에, ‘김일성-김정일주의’는 오직 자신을 통해서만 실현될 수 있다는 사상의 독점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바로 권력독점으로 이어지는 겁니다. 

생일관련해서 말씀드리면, 노동신문을 보면, 김정일을 위한 광명성절준비위원회가 결성되어 각종 정치문화행사를 진행한다고 하는데, 그 대표적인 행사들이 광명성절경축모임, 영화감상회, 김정일화전시회 등이 있습니다. 이 각종 행사에서 김정일의 혁명생애와 업적을 선전하면서 동시에 김정은의 리더십을 열성을 다해 칭송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 중에 핵강국으로의 진입을 최고 치적으로 내세우며 국력을 최상의 경지로 끌어올렸다고 칭송할 것입니다.
 
8. 작년에는 김정은이 자신의 이복형 김정남을 피살한지 며칠 만에 김정일의 생일이 있었죠. 당시 굳은 표정이 주목받았습니다만, 올해는 어떻게 진행될 것으로 전망하십니까?

올해는 김정은 얼굴이 조금 피지 않을까요. 평창올림픽을 통해 평화공세전략도 제대로 잘 먹혀들어가고 있다고 판단할 것이고, 페럴 올림픽까지 선수단을 보내면서 적어도 3월 18일까지는 시간을 벌잖아요. 이 기간 동안은 미국의 공세를 피할 수 있다는 계산도 깔려 있겠죠. 만일, 올림픽이후 남북관계가 진전된다면 더 쾌재를 부를 겁니다. 핵무력 완성단계에서 국제사회의 강력한 제재에 틈을 내고, 한·미간의 갈등을 더욱 부추길 수 있으니까요.

북한매체를 보면, 김정은 신년사 발표이후, 지금까지 북한 내에서 평창올림픽에 대한 환영회 및 축하행사를 열었다는 것을 한 번도 보지 못했습니다. 김정은 신년사보고대회 및 학습대회는 매일같이 하는데 말이죠. 올림픽 관련해서는 올림픽이 열리는 ‘평창’을 한 번도 언급한 사실이 없습니다. 그래서 북한주민들은 올림픽이 어디에서 열리는지도 모를 겁니다. 올림픽이 열리는 지금도 북한에서는 남북관계개선과 관련해서 ‘자주통일 대진군’, ‘자주통일성업’, ‘혁명적인 총공세’라는 구호들만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김정은 정권이 평창올림픽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분명히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