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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인도적 지원이 ‘비밀경찰의 부활', ‘김정일의 세습’을 후원하고 있다 / 이영화 이전페이지로 이동

"블레어 수상과 영국 정부는 안철이 촬영한 영상을 본 적이 있는가?"

10월 20일자 영국 최고의 유력지 [타임즈]는 북조선과의 국교수립에 의욕을 나타내고 있는 블레어 정권에 통렬한 일격을 가했다. 마침 블레어 수상이 20∼21일에 한국에서 개최되었던 ASEM(아시아유럽회의)에 참가하고 있던 때였다.

[타임즈]지가 자국 수상에게 '본적이 있는가?'라고 추궁한 영상은 무엇인가? 북조선 난민 청년 안철(가명, 28세)이 생명을 걸고 북조선 국내에 잠입하여, 비밀촬영에 성공한 2년 전의 비디오 테이프이다. 이 안철 영상을 소재로 영국의 민방 TV(채널 4)가 '북조선-비밀국가의 자식들'이라는 제목으로 보도물을 제작, 아시아유럽회의 전날(19일)에 맞추어 방영한 것이다.

북조선의 장마당을 떠돌아다니는 굶주린 꽃제비들, 고문과 학대를 증언하는 북조선 난민, 비밀리에 경작되고 있는 아편...... 김정일 정권의 학정을 눈앞에 본 영국의 여론은 들끓었다. 영국과 함께 북조선과의 국교수립 의향을 서울에서 표명했던 슈뢰더 독일 수상에게는 공영방송 ARD가 안철의 영상을 뉴스시간에 반복해서 방영했다.

그리고 채널 4에는 북조선 정부의 강력한 항의가 들어왔다. 이 위협에 대하여 이 방송사는 가장 용감하고 중요한 일을 수행한 카메라맨에게 매년 주는 '로리 펙(Rory Peck)'상에 안철을 추천하는 것으로 응답했다.

이에 대하여 일본에서는 아시아유럽회의 개최 중에 모리 수상이 블레어 수상 등에게 납치문제의 '제3국 발견방식'을 득의양양하게 밝혀 물의를 빚었다. 일본의 언론은 일제히 모리 수상의 자질을 문제로 삼았다. 그러나 일본 정부가 국교를 정상화하려고 하는 상대(독재정권)의 본질을 묻는 보도자세는 거의 없었다. 덧붙여서 말하면 안철 영상이 세계에서 처음으로 공개된 곳은 일본이다.

격노한 김정일은 촬영자의 처형을 엄명

금년 8월 조중국경의 어느 곳에서 나는 안철과 비밀리에 만남을 가졌다. 안철이 북조선에 재차 잠입하여 비밀촬영을 감행하는 작전을 준비하기 위해서였다. 촬영대상은 2년 전과 동일한 장소, 즉 북조선 북동부에 있는 모 도시의 암시장으로 정했다.

감히 동일한 장소를 선택한 것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하나는 북조선의 '변화' 정도를 관측하기 위해서였다. 해외로부터 막대한 인도적 원조가 들어가고, 김정일이 적극적인 외교 자세를 보여주기 시작한 북조선. 그 내막을 영상을 통하여 폭로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또 하나는 안전상의 이유이다. 2년 전의 충격적인 영상 공개 이후, 격노한 김정일은 비밀경찰에게 '안철 체포'를 엄명했다. 각 행정 단위의 비밀경찰의 과장급 이상 요원에 대하여 굳이 안철이 촬영한 영상을 보여준 뒤에 안철의 체포, 처형을 명령한 것이다. '김정일이 가장 죽이려 하는 남자' - 그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안철에 대한 필사의 수색이 계속되고 있다. 이 수사망을 빠져나가 비밀 촬영을 감행한 것은 위험하기 그지없다. 게다가 적의 배후를 돌아 전과 동일하게 촬영 대상을 선정했다.

면밀한 준비를 거쳐 안철은 철통 경비 상태인 조중국경(압록강)을 넘었다. 11월 초순에 중국으로 무사히 탈출한 안철의 손에는 60분 짜리 테이프가 꼭 쥐어져 있었다. 테이프는 11월 초순 제3자를 경유하여 내 손에 전해졌다. 거기에는 10월 초순에 촬영된 장마당의 선명한 비밀영상이 수록되어 있었다. 촬영자 안철은 현재 중국에 숨어 있다.

촬영 장소는 북조선 유수의 도시이고, 국제적인 인도적 원조의 중점 배분 지역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암시장에는 굶주린 꽃제비가 음식 찌꺼기를 구하기 위해 떠돌고 있었다. 계산상은 인민에게 충실히 돌아가야 할 원조 식량이 암시장에 유입되어 고가에 판매되고 있었다. 쌀 1Kg에 80~60원의 값이 매겨져 있었다. 평균 월수입이 80원 정도인 일반 서민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안철의 설명으로는 남북정상회담 이후 북조선의 변화는 다음 세 가지 점에 집약되고 있다. 말하자면 독재체제 유지의 근간에 연관된 것이다.

하나는 배급제도의 부활이다. 금년 8월경부터 김정일은 배급소에서의 곡물 배급을 부활시켰다. 그때까지는 기업소 단위에서의 자력조달, 자력배급이 기본으로 되고 있었다. 배급 재개라 해도 사료용의 잡곡이 대부분으로 기대하는 만큼의 배급 량에는 미치지 못한다. 국제사회로부터의 비판을 느끼는 것인지 배급 량의 10% 정도 원조 물자 쌀이 섞인다. 배급 재개와 동시에 암시장에서의 단속이 강화되고, 당국이 "이것을 팔지 마라, 저것을 팔지 마라" 고 단속하고 있다.

막대한 지원 식량이 특권층으로부터 흘러나와 암시장에서의 곡물 가격이 2년 전과 비교하여 하락하고 있다. 그러나 상술한 바와 같이 배급용의 쌀은 서민의 손에는 들어오지 않는다. 각자는 여전히 암시장에 의존해야만 한다. "배급은 주어지지 않기 때문에 그 대신에 암시장에서 자유롭게 상행위를 했으면 한다"는 것이 솔직한 서민의 염원이다.

2년 후의 김정일 '환갑'에 후계자로 결정?

또 하나의 변화는 비밀경찰 시스템의 완전 부활이다. 식량위기가 극도로 심각했던 97∼98년에는 인민에 대한 위협의 효력이 약화되어 비밀경찰은 자신감을 상실하는 데 이르렀다. 그러나 풍족한 인도적 지원이 시스템을 살려내어 비밀경찰은 이제 완전히 자신을 회복했다. "이 나라가 변화가 없는 것은 주체사상이 있기 때문이거나 김일성, 김정일이 위대하기 때문도 아니고, 우리들(비밀경찰)이 건재하기 때문이다"고 음지에서 호언하는 이유가 있다.

그리고 최대의 변화는 김정일의 후계자 문제, 즉 장남 김정남(29세 추정)에 의한 권력 계승이 비밀리에 시동되고 있는 것이다. 김정남은 조선인민군에 입대하여 측근들을 통하여 내정에 관여하기 시작하였다. 지난번의 김정일의 '비밀지령'도 실은 김정남이 입안한 것이라고 한다. '대외적인 유화 자세와 국내적인 강경 자세' - 이처럼 한편으로 모순된 태도는 김정일이 2년 후 자신의 환갑 축하에 초점을 맞춰 친자 삼대에 걸친 권력 세습을 위한 것이라고 이해하면 될 듯하다.

국제사회의 인도적인 원조와 햇볕정책을 비롯한 유화정책은 비밀경찰의 부활을 받침대로 하여 권력 세습의 야망을 도와주고 있다. 그 한 쪽에 독재정권의 타도를 목표로 북조선의 민주화를 요구하는 안철 등은 고립무원에 빠지고, 추격자를 피해 이국의 지하에서 잠복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적어도 언론만이라도 안철 등의 활동을 알아주어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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