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주민 포용할 시민의식 갖춰야 통일대박 이룬다

라이프치히의 월요데모가 전국으로 확산되면서 동독인의 통일 열기를 확인한 헬무트 콜 연방총리는 서독인의 머릿속에만 머물고 있던 통일의 가능성을 현실로 받아들이게 됐다. 콜 총리를 중심으로 한...

中, 탈북민에 자유 길 열어줄 ‘제2의 헝가리’ 돼야

해마다 6월 27일이 되면, 헝가리와 오스트리아 국경 도시 소르폰에서는 1989년 헝가리가 대(對) 오스트리아 국경을 개방한 기념행사가 열린다. 당시 양국의 외무장관이었던 기율라 호른(Gyula Horn)과 알로이스...

‘인민경제 외면’ 김정은과 ‘국부탕진’ 일삼은 동독 정권

통일 전 동베를린 근교 반들릿츠(Wandlitz) 지역에는 ‘숲 속 마을(Waldsiedlung)’이라는 별천지가 있었다. 현재 이곳은 브란덴부르크 주 요양기관으로 운영되고 있지만, 분단 시절에는 당 고위 간부들과 그...

동서독 軍통합이 한반도 통일에 주는 교훈

반세기를 상호 반목과 대립속에서 공존했던 동서독 통일의 최우선 과제는 양국의 군(軍)을 무리 없이 통합해내는 일이었다. 군이야말로 물리적 힘을 소유한 실체로서 순탄한 군 통합이 이뤄질...

동독의 사회주의 계획경제 붕괴와 김정은의 선택

사회주의 경제체제 하에서 투자는 기업의 결정 사항이 아니다. 당의 정책적 판단에 따라 투자여부가 결정될 뿐이다. 이런 사회주의 국가의 불문율을 가장 잘 대변해주던 것이, 바로...

동독 관영지, 진실 왜곡…北매체도 진실 가리지 못해

동독의 대표적인 신문인 ‘노이에스 도이칠란트(Neues Deutschland)’는 당의 기관지로 40년 세월 동안 인민들에게 비아냥의 대상이었다. 사람들은 “지구의 1/6은 무엇입니까?” “소비에트 연방”이나 “정보의 1/3은 무엇이죠?” “가짜...

東獨 교회처럼 北내부서 민주화 지원할 세력은?

통일 전 동독 교회는 북한의 교회가 공산당의 하부조직이 되고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끊임없이 당을 상대로 갈등과 긴장관계를 유지했다. 이런...

독일은 통일 재도약 이룬 통일기금 어떻게 마련했나

미국과 영국, 프랑스는 물론이고 동서독 당사국조차도 예측하지 못했던 독일 통일은 독일 사회에 두 가지 중요한 과제를 부여하게 됐다. 하나는 동독의 비효율적 사회주의 경제구조를 전환해...

독일 통일의 길을 연 결정적 계기는 무엇인가

과거 동서독의 분단극복에 기여한 여러 인물들 중에 통일 당시 외무부장관을 지낸 한스 디트리히 겐셔가 대표적으로 꼽힌다. 그는 습관상 비행기에 올라 자리에 앉으면 곧 잠이...

통일의 초석을 연 서독 이산가족 정책의 교훈

통일 전 서독정부가 추진했던 이산가족 정책의 특징은 ‘원칙’과 ‘실용성’이었다. 이는 언젠가 양 국가가 재통일을 이뤄야 한다는 기본법 정신에서 기인했다. 이 정책의 주 대상은 동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