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봉 칼럼] 김정은 방중과 코리아 패싱

대한민국의 불행은 과거로부터 배우지 않는 데 있다. 문재인의 한반도 운전대론이 그렇다. 운전대론은 노무현의 균형자론의 변형이다. 당시 균형자론을 내세운 노무현 대통령은 미국은 물론 중국에서도 환영받지 못했다. 한 발 더 나아가면 DJ의 햇볕정책이다. 햇볕정책은 2006년 10월 9일 자로 종언을 고했다. 김정일이 1차 핵실험을 강행한 날이다. “북한은 핵을 개발할 의지도 없고 능력도 없다. 북한이 핵을 개발할 것이라는 유언비어를 퍼트리지 말아라. 북한의 핵을 개발하면 내가 책임지겠다”는 DJ의 발언은 허언이 되었고 그의 통일관과 대북관은 수정되어야 마땅했다. DJ의 노벨평화상도 남북 정상회담 대가로 5억 달러를 비밀리에 송금한 사실이 드러나며 의미가 퇴색되었다.

하지만 청와대에 입성한 문재인 정권은 한술 더 떠 햇볕정책에 운전대론을 가미한 정체불명의 정책을 밀어 붙이고 있다. 실패 더하기 실패, 1+1이다. 이번 김정은의 방중쇼는 청와대가 철저히 소외되었음을 입증했다. 김정은이 1호 열차를 타고 중국 국경을 넘은 시간은 25일 밤 10시였다. 청와대는 27일에도 이 사실을 모른 채 “확인되지 않았다”고 발표했고 국정원은 27일까지도 “김정은이 현 시점에서 움직였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며 김여정의 방중에 무게를 실었다. 국정원의 존재 이유가 무색하다.

문재인 정부는 중국, 미국은 물론 공을 들였던 북한으로부터도 배신을 당했다. 남북 간 복원했다던 핫라인은 김정은의 지시만 듣는 일방통행이라는 사실도 재확인했다. 그러나 청와대는 DJ식 변명과 거짓으로 일관하고 있다. 만약 2006년 10월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했을 때 DJ가 나서서 대북관이 잘못되었고 북핵 인식이 틀렸다고 시인하며 대북 및 통일정책을 새롭게 정립했다면 오늘날과 같은 북핵 위기는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제라도 통일외교 안보라인의 실책을 시인하고 대북정책을 과감히 수정하는 것이 마땅하다. DJ의 전철을 밟는 오기의 정치를 반복하지 않기를 바란다. 한미동맹을 복원하고 국제사회와 대북공조를 확고히 해 중국이나 북한에게 불필요한 신호를 보내지 않는 길로 들어서기를 바란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외교적 행보는 내로남불의 연장이었다. 혈맹인 미국과 사사건건 충돌을 빚은 것은 물론 유럽 및 국제사회의 흐름과 정반대의 길을 택했다. 독일 언론(Die Welt 2018.1.2.; FAZ 2018.1.1. 등)이 ‘김정은의 신년사는 독배(毒杯)’라며 경고했지만 무시했다. 사드를 둘러싼 미중 갈등에 중국의 입장을 두둔했지만 중국을 방문한 문재인은 혼밥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원래 조폭은 강한 자에게는 약하고 약자에게는 강한 법이다. 물론 중국을 조폭에 비유하는 것에 대한 논란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중국이 소수민족을 탄압하고 주변국과의 갈등이나 천안함 사태를 처리하는 과정을 보면 비정상 공산독재국가임이 틀림없다. 더욱이 시진핑은 2018년 문명시대에 99.98%의 지지로 장기집권이 가능한 황제로 등국했다. 시진핑 집권 후 강제북송된 탈북자는 이루 헤아릴 수 없다.

대북 특사단이 김정은의 말만 믿고 백악관을 방문해 북한이 비핵화에 동의했다며 미북 정상회담을 중재했던 상황도 코미디다. 정의용 특사가 백악관 복도에서 미국측 배석자 없이 미북 정상회담을 발표한 것 자체도 우습다. 이어 북한이 비핵화를 약속했다는 사실을 어느 곳, 어느 언론, 어느 소스도 확인하고 있지 않다.

지난 1월 16일에는 6.25 참전국 16개국 외교장관을 포함한 20개국 외교 수장들이 캐나다 벤쿠버에 모여 북핵 관련 회의를 가졌다. 독일 케이블 TV인 RT Deutsch 는 1월 18일 평창 올림픽의 북한 경계령과 함께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접근을 비판하는 보도를 실었다. 그리고 마지막 문장을 “밴쿠버 참가국 외무장관들이 남북 화해정책을 격침시켰다”로 썼다.

3월 10일 브뤼셀에서는 독일마샬기금이 주최하는 외교포럼이 열렸다. 외교전문가들은 대한민국 정부가 적극 밀어 붙이는 미북 정상회담에 참석자의 2/3가 회의적이었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김정은은 어떤 비핵화 약속도 없이 대가만 바란다. 2. 북한은 과거 외교적 전례를 보면 초반의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린다. 3. 트럼프의 도발적 성향이 미북회담을 즉각 수용했지만 회담이 성사되기 위해서는 정부의 체계적인 준비가 필요하다. 4.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에 대한 유일한 소스는 남한 특사단 뿐이다. 5. 지금까지 회담 장소, 일정. 의제에 대한 아무런 정보도 알려진 것이 없다. 6. 미북 정상회담을 준비하는 유일한 채널은 남북 화해노선을 고수하는 문재인 대통령이 유일하다.

이런 가운데 3월 29일 독일의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네는 남북 정상회담의 개최일이 4월 27일로 합의되었다는 보도를 하며 인공위성 판독 결과 북한이 영변에 새로운 원자로를 건립해 가동 중인 사실을 확인했다. 뿐만 아니라 2013년 냉각탑을 폭파하며 가동을 중단했던 1986년 건립된 원자로도 복원해 가동한 사실을 보도했다. 그리고 이런 북한의 기만은 이미 프로그래밍된 것으로 미국의 신임 안보보좌관으로 내정된 존 볼튼은 협상이나 제재로 북핵 위기를 해소할 수 없으며 유일한 방법은 군사적 옵션뿐이라는 일관된 입장을 견지해온 인물이라고 소개했다. 향후 한반도 정세가 어떻게 변할지 불안하다. 미북 회담이 무산된다면 의제가 북핵회담에서 평화회담으로 급변할 것이라는 일본의 북한 전문가 사카타 교수의 지적도 우려스럽다.

문재인 정권은 5년 동안 국민으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은 정권이다. 촛불 정권임을 강조하며 갈등과 분열의 정치를 계속한다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암울할 뿐이다. 문재인은 촛불의 힘으로 대통령에 당선되었지만 이제부터라도 촛불과 태극기의 대통령임을 선언하기를 바란다. 이 선언이 위기로부터 대한민국을 지키는 첫발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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