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장남 김정남, 그는 왜 죽어야만 했을까?

하필 이 타이밍에 김일성의 장손이자 김정일의 장남, 김정남의 피살이라니… 단지 우연일까? 김정은은 그 동안 김정남에게 살인면허를 가진 추적자들을 붙여 왔단 말인가? 언뜻 보아 마치 모사드가 등장한 영화, ‘뮌헨’의 한 장면 같지만 맥락은 전혀 다른 사건이다.

두 가지 요인이 있다. 첫째, 중국의 유인. 둘째, 김정남 본인의 안이한 판단. 김정남은 장성택의 죽음을 목격했으면 바로 미국의 보호 아래 들어갔어야 했다. 다만 자신의 자존심이 그것만큼은 허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누군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장자’ 아닌가? 중국의 비호를 받는 한, 이복동생 김정은도 어쩌지 못할 것이라는 경도된 중국 의존형 판단도 한몫 했을 것이다.

정작 그 신뢰의 마지노선을 깬 당사자는 물론 중국이다. 김정은에게 김정남의 동선을 알려준 비선이 중국이라는 혐의는 절대 부인할 수 없다. 중국의 정보 제공 없는 북한 단독의 공작 가능성? 북한은 중국 몰래 이만한 일을 말레이시아 입국장에서 저지를 수 있을 만큼 주도면밀하지도, 그만한 정보력도 가질 수 없다.

중국이 김정은에게 김정남의 죽음을 유도했다고 봐야 한다. 그의 피 값으로 중국은 미국에게 뜻밖의 강력한 암시를 던졌다. 역시 북한문제는 고우나 싫으나 중국에게 ‘외주(아웃소싱)’를 맡기는 것이 저비용-고효율의 안전한 방식이라는 고전적 메시지 말이다.

대북 선제 타격론이라는 군불이 피어오르고, 북한은 아랑곳 않고 미사일을 쏘아 올리는 와중에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 세력균형이 깨질 때 이득은 일본이, 피해는 중국이라는 미국의 손익 계산서는 불변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남과 북이 모든 비용을 고스란히 지불하는 구조라는 걸 아는 저들로서야 이래나 저래나 ‘쑥대밭’이 될 한반도는 그들 누구에게도 중요한 고려사항이 아닐 테다.

애꿎은 ‘김정남 살인사건’을 통해 중국은 자기들만이 보여줄 수 있고, 동아시아 바닥에서나 통할 ‘어두운 마수’의 힘을 미국에게 톡톡히 보여준 셈이다. 이래도 당신들이 일본만 있으면 동북아에서 ‘새 질서’를 만들 수 있다 자신하냐고 비웃음 한 번 날려준 것이다. 김정은으로서야 잃을게 없는 ‘거사’ 아니었을까? 그야말로 북한식 공포정치의 정점이다.

정반대의 시나리오를 가정한다면 무엇이 달라질까? 중국은 김정남의 행적을 전혀 모르고 있었고, 김정은의 핵심 친위대가 ‘암살’에 성공한 거라고 치자. 그럼에도 결과값은 다르지 않다. 중국이 김정남 살해의 책임을 김정은에게 묻겠는가? 설령 중국은 정말 몰랐다는 것이 진실일 지라도 그렇게 순진한 고백을 하진 않을 거다. 그게 현실 정치의 속살이다.

안타까운 건 김정남 자신일 뿐이다. 그를 설득하여 데려올 수는 없었을까? 정말 서방세계의 정보력으로는 그를 추적하지 못한 걸까? 일행은 없었을까? 왜 말레이시아에 가려 했을까? 그곳은 일찍이 북한이 제3의 협상장소로 선호해 왔던 땅 아니었던가!

진짜 의문은 풀리지 않을 것이다. 영영 묻힐지도 모를 일이다. 김일성, 김정일의 죽음과 달리, 그의 비명횡사는 ‘역사의 비극’, ‘비운의 황태자’라는 낡고 뻔한 수식어를 진심으로 떠오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