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流에 민감반응 김정은 南 공연엔 적극, 속내는?

북한 김정은이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특별사절단을 만나 남측 예술단의 평양방문을 초청한 지 약 2주 만에 남북이 관련 실무접촉을 갖고 큰 틀에서 합의를 도출했다. 이에 따라 160여 명으로 구성된 남측 예술단은 4월 초 평양을 방문해 두 차례 공연을 진행할 예정이다.

이번 평양 공연에는 과거 방북 경험이 있는 조용필, 최진희, 이선희 등 중견가수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의 유행을 선도하는 아이돌 가수들이 참여할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가수 출신 음악 프로듀서인 윤상이 예술단 음악감독을 맡아, 대중음악 위주로 무대가 구성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관건은 북한이 어느 선까지 수용하느냐다. 일단 남북은 대중가수들로 구성된 예술단이 평양에서 공연하는 데 합의했지만, 공연 곡에 대해서는 의견차를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그동안 북한이 자본주의 문화 침투를 극도로 경계해왔다는 점에서 공연 곡 조율에 난항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김정은은 집권 후 한국 가요와 영화, 드라마 등 한류(韓流)가 북한 내부에 유입되지 않도록 단속을 강화하면서 소위 ‘자본주의 황색바람’ 차단에 주력해왔다. 실제 김정은 체제 들어 109그루빠 등 외부에서 유입된 알판(녹화물)을 집중 단속하는 조직이 생겨나고, 주요 시청 수단인 노트텔(EVD플레이어)의 수입이 금지되는 등 다양한 한류 차단 조치들이 내려졌다.

김정은은 올해 신년사를 통해서도 “혁명적인 사회주의 문학예술의 힘으로 부르주아 반동문화를 짓눌러 버려야 하겠다”며 “전사회적으로 도덕기강을 바로세우고 사회주의 생활양식을 확립하며 온갖 비사회주의적 현상을 뿌리 뽑기 위한 투쟁을 드세게 벌려 모든 사람들이 고상한 정신도덕적 풍모를 지니고 혁명적으로 문명하게 생활해나가도록 하여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그런 김정은이 자본주의 문화 유입이라는 위험부담을 감수하고 예술단을 평양에 초청한 것은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조성된 남북 간 대화의 모멘텀을 유지하기 위한 전략의 일환으로 해석된다. 북미대화 성사 전까지 남한은 지렛대로서 가치가 있는 만큼, 북한으로서는 남북관계를 지속적으로 개선·발전시켜 나갈 필요성이 있는 셈이다.

전현준 우석대 교수는 21일 데일리NK와의 통화에서 “일단 이번 예술단 방북 공연은 평창올림픽 때 북측 예술단이 내려온 것에 대한 답방 차원으로 보인다”면서도 “그동안 북한은 문화예술 교류를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활용해왔기 때문에 이번 예술단 방북 초청도 그 연장선상에서 생각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20일 오전 판문점 북측지역 통일각에서 열린 남북 예술단 평양공연 실무접촉에서 남측 수석대표로 나선 윤상 음악감독과 북측 대표 현송월 삼지연관현악단 단장이 회의장에 입장하고 있다. /사진=통일부 제공

특히 이번 예술단 평양공연은 북한이 통제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이뤄질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배적인 견해다. 예술단의 공연을 관람할 수 있는 사람도 제한적인데다, 장소도 평양으로 한정돼 있기 때문에 김정은으로서도 우려할만한 수준의 부작용이 나타날 가능성은 낮다는 판단을 내렸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일단 평양은 여타 지방 도시와는 달리 일반 공민증이 아닌 특별한 시민증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이고, 더더욱 공연에 오는 사람들은 북한 당·정·군과 관련돼 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나름대로 통제가 가능한 부류일 것”이라고 말했다.

전 교수도 “물론 공공연하게 한류가 퍼지는 것은 집중적으로 단속하겠지만, 이번 경우에는 통제된 상태에서 공연이 진행되는 것이기 때문에 북한도 어느 정도 관리가 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북한 뿐만 아니라 우리 정부도 문화예술 교류를 통해 대화국면이 지속적으로 유지되길 바할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남북 화해협력을 통해 한반도 평화 분위기를 만들겠다는 게 현 정부의 지향점인 만큼, 문화예술 교류에 대해서는 남북 공통의 이해관계가 형성돼 있다는 것이다.

실제 지난 1월 9일 북한의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를 위한 남북 고위급회담과 최근 진행된 특사단과 김정은의 회동 이후에 예술단 방문이 가장 먼저 논의·합의됐다. 문화예술 교류는 남북 모두 부담없이 접근할 수 비정치적 분야라는 점에서 관계 개선 분위기를 이어갈 최적의 수단이라는 평가다.

홍 실장은 “음악 등 예술 관련 분야는 남북 동질성 회복이라는 차원에서 긍정적으로 볼 수 있는 부분이 있고, 현 시점에서 가장 무난한 교류협력의 콘텐츠”라며 “이를 통해 지금의 모멘텀을 유지하겠다는 구상은 어느 한쪽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양쪽 모두에게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