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대통령이 中열병식에 불참해야 하는 이유

8월 20일 오전 10시 박근혜 대통령의 중국 방문이 확정됐다. 박 대통령은 9월 3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리는 ‘항일(抗日)전쟁 및 세계 반(反) 파시스트 전쟁 승리 70주년(전승절) 기념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다음달 2일부터 4일까지 중국을 방문한다. 박 대통령의 방중은 확정됐지만 군사 퍼레이드(열병식) 참석 여부를 놓고는 계속 고민 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와 관련해서 우리 정부는 우리의 국익이 무엇인지에 관해 좀 더 면밀히 따져 보아야 한다.

사실 이번 박대통령의 중국 방문은 한중 두 나라만의 현안은 아니다. 미국이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고, 일본 역시 자신의 현대사와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에 귀추를 집중하고 있다. 심지어 북한까지 한국 대통령의 중국 방문에 관해 주의를 기울이고 있을 것이다. 이렇듯 이번 박대통령의 중국 방문 결정은 단순한 중국 전승절 기념행사의 참석이 아닌 동북아 국제정치의 고차방정식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번 중국의 전승절 기념행사의 의미가 2차 세계대전 종전 70주년을 기념하는 데 국한된다면 미국이나 일본의 근심과 우려는 상대적으로 덜 했을 수 있다. 그러나 중국이 기념하고자 하는 행사의 명칭은 ‘항일전쟁 승리 70주년 기념행사’이며 중국은 대규모 군사 열병식까지 예정하고 있다. 미국이나 일본이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는 소재다.

일본은 한국과 중국이 공동으로 반일전선을 형성할 수 있다는 우려감을 가질 것이다. 미국의 심기도 불편해 보인다. 미국의 관심은 중국이 군사적 역량을 과시하는 열병식에 동맹국인 한국의 대통령이 참석할 지의 여부에 집중되고 있다. 가뜩이나 한국 정부가 사드(THAAD,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와 관련해서는 모호한 입장을 내보이다가 한국 대통령이 중국 전승절에 참석하고 열병식까지 참관하는 경우 미국은 한미동맹의 정체성에 깊은 우려를 내비칠 것이다. 실제로 에번스 리비어(Evans Revere) 전 미 국무부 동아태 담당 수석차관보는 최근 “박 대통령의 베이징 방문과 열병식 참석을 분리하는 게 중요하다”며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북한의 불만도 가벼이 보아 넘겨서는 안 된다. 시진핑 주석은 취임 후 여태껏 북한을 방문하지 않았지만 지난해 7월 한국을 먼저 방문했고, 박대통령과 지금까지 총 다섯 차례의 정상회담을 가졌다. 이 때문에 북한은 전통적 맹방이던 중국이 자신과 소원해지고 한국과 긴밀한 관계를 심화시키는 현실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한중 관계에 대한 북한의 불만은 그들의 도발 본색을 자극하여 한반도 위기지수를 고조시키는 것으로 나타날 수 있다.

이렇듯 동북아 관련국가의 대다수가 박대통령의 중국 전승절 참석을 우려하고 있지만 박대통령은 결국 중국 방문을 결정했다. 그것은 국익에 대한 고려 때문일 것이다. 박대통령의 이번 중국 방문 결정은 중국과의 경제적 유대관계의 심화뿐 아니라 북한문제에 관한 중국의 역할을 감안했을 수 있다. 또한 북한과 일본을 압박해서 꽉 막힌 남북관계와 한일관계 개선의 실마리를 풀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중국과의 경제적 관계의 심화는 자칫 축복이 아닌 재앙이 될 개연성이 없지 않다. 많은 학자들이 중국 경제의 거품붕괴를 지속적으로 경계하고 있던 와중에 중국 정부는 자국의 경제위기를 반영하는 조치를 취했다. 전방위적인 경기부양도 효과를 내지 못하자 중국 정부는 지난 8월 11일 위안화의 가치를 사상 최대 폭으로 절하하는 조치를 취했다. 이로 인해 한국의 철강, 화장품 산업 등 주요 대중 수출품목들이 직격탄을 맞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중국 경제의 고도성장을 주도했던 ‘거품’이 붕괴한다면 우리 경제가 직면할 수 있는 위기의 강도는 예상보다 더욱 상승할 수 있다. 중국과의 경제협력을 강조하며, 힘을 얻은 친중론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다.

한미관계가 이상 징후를 보일 수 있다는 점도 한중관계의 속도 조절이 필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다. 사드 쟁점 외에 한국의 AIIB(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 가입, 박대통령의 중국 전승절 기념식 참석 등 한국의 친중 모드를 바라보는 미국의 심정은 어떨까? 미국은 지난 8월 6일 말레이시아의 쿠알라룸푸르에서 개최된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 남중국해 문제를 둘러싸고 중국과 공개적으로 충돌했다.

뿐만 아니라 미국은 이번 중국 전승절 기념행사 때 있을 예정인 열병식을 중국이 군사력을 과시할 목적으로 추진하고 있다고 인식하고 있다. 실제로 이번 전승절 열병식에는 1만 명 이상의 중국군 병력과 중국군의 최신 무기들이 대거 동원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 우리 대통령이 참석한다면 동맹국 미국에게는 적지 않은 충격이 될 수 있다.

대일 관계에서 나타나는 파장 역시 우리의 예상과 다를 수 있다. 우리 정부가 일본을 압박해서 한일관계의 개선을 끌어낼 수 있는 돌파구가 될 수 있다고 전망하는 것과 달리 일본은 미국과 더욱 공고한 동맹 관계를 유지함으로써 한중 밀착을 견제할 수 있다고 판단할 것이다. 게다가 과거 한미일 삼각안보를 대체해서 미일호주의 안보동맹이 날로 심화되고 있는 추세이기 때문에 박 대통령의 방중이 일본에 미칠 영향력은 미미할 수 있다. 오히려 전통적인 한미일 삼각안보가 와해될 소지가 더욱 커지기 때문에 우리 정부로서는 박대통령의 열병식 참석에 신중한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북한에 보내는 메시지 또한 다른 셈법으로 계산해봐야 한다. 북한 정권도 한중 밀착으로 인해 남북관계 개선에 전향적 태도로 돌아설 가능성은 거의 없다. 오히려 북한 정권은 중국의 군사 열병식과 한국 대통령의 참석을 자신들에 대한 군사적 압박으로 이해하고 그에 반발하여 10월 메가톤급의 군사도발을 감행할 가능성이 더욱 높다고 볼 수 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중국이 추진하고 있는 군사 열병식의 명분이 없다는 점이다. 중국이 개최하려는 항일전쟁 승리 70주년 기념행사의 진정한 의미는 평화의 복원일 것이다. 평화를 염원하는 상징적인 장소에서 자국의 군사력을 과시하는 열병식이 어떤 명분을 지니고 있으며, 또 이 같은 행사에 우리 대통령이 참석한다면 한국의 이미지는 세계에 어떻게 각인될까? 중국과의 친선관계를 유지하려는 정부의 바람은 나무라지 못하지만, 박 대통령의 열병식 참석은 자제해야 한다. 정부는 무엇이 국익인지를 천착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