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가 중대국면에 다가서고 있다

북한 조선중앙TV는 19일 김정일 사망 사실을 발표하면서 후계자 김정은에 대해 ‘위대한 영도자’ ‘위대한 계승자’라고 명명했다. 북한 매체에서 그에게 위대한 영도자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또한 232명의 장의위원 명단을 발표하면서 김정은을 처음으로 호명했다. 사실상 장의위원장 역할로 그가 북한 권력서열 1위라는 점을 내외에 분명히 한 셈이다.


1994년 사망한 김일성의 영결식은 11일 간의 애도기간을 거쳐 7월 19일 장례식을 치렀다. 김정일은 17일 사망해 28일 장례식을 거행하기 때문에 애도기간은 아버지와 같다. 일단 북한은 내부에서 김정일에 대한 조문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데 힘을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절대권력자의 유고로 발생하게 되는 일시적 힘의 공백을 조문 분위기를 통해 메우면서 후계 안정을 도모하기 위한 목적이다.


김정일 장의위원 숫자는 김일성 장례 당시와 비교해 40명이 적다. 김일성 장례위원은 모두 273명이었다. 장의위원 명단에는 향후 김정은의 후견인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이는 김정은의 고모 김경희가 14번째, 그의 남편인 장성택 국방위원이 19번 째에 이름을 올렸다. 장의위원 순서가 공식 권력서열을 반영하지만 실질권력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김정은 시대에 김정은의 후견인 역할보다 더 막강한 실력자를 다른 데서 찾는 것은 무의미 할 수도 있다.   


김정은의 후계 수업 기간이 일천하다는 지적이 있지만 최소 4년 이상 지도자의 면모를 갖추기 위해 준비해왔던 점을 볼 때 단기적으로 북한 내부가 혼란에 빠질 가능성이 커 보이지는 않는다. 


김정은은 최근까지 후계체제의 관건인 군부에 대한 정지작업을 꾸준히 진행해왔다. 2009년 2월 11일 개최된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에서 리영호 총참모장, 김정각 총정치국 제1부국장, 김원홍 총정치국 조직담당 부국장, 우동측 국가안전보위부 부부장 등으로 김정은 인맥을 구축해왔다. 특히 2009년 5, 6월경 북한에서 작성된 ‘존경하는 김정은 대장동지의 위대성 교양‘ 자료에서 드러나듯이 북한군은 ‘김정일의 군대’에서 ‘김정일·김정은의 군대’로 조금씩 변화해왔다.


북한 지도부는 당분간 김정은 체제의 안정화에 주력할 것이다. 1994년 김일성 사망 이후와 마찬가지로 대외적으로 애도 소강기를 가지면서 김정은을 중심으로 한 단일지도체제 구축을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장성택을 중심으로 한 후견 그룹이 그를 보좌하는 형태이다. 이 기간 김정은이 당과 군부 후견 그룹을 잘 조정하면서 자신의 지도력을 증명해나간다면 김정은 체제가 일정 기간 순항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김정일 사망 직후 지도부 내에 동요가 없고 단기간 김정은이 큰 위험요소 없이 권좌를 이끌어 간다고 해도 장기적으로 김정은 체제의 성공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김정은이 필연적으로 마주칠 수밖에 없는 위기 요소가 곳곳에 산재해 있고, 그런 위기를 한 두 번은 넘을 수는 있지만 중장기적으로 김정은 체제가 성공할 가능성은 매우 낮아 보이는 것이 현실이다. 


김정은은 지난해 노동당 대표자회를 통해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에 임명됐다. 이후 중앙군사위를 통해 군부 장악에 적극 나서 왔지만, 아직도 군에는 김일성 시대부터 내려온 노(老)간부들이 존재하고 있다. 김영춘 인민무력부장, 이용무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오극렬 국방위 부위원장 등이 대표적이다. 김정은이 지도력을 보여 이들과 신진세력인 리영호 총참모장, 김정각 총정치국 부국장, 이명국 작전국장 등과 조화를 잘 이룰 것인지가 관건이다. 군부 내에서 이들 간에 알력이 발생하고 권력투쟁으로 비화될 경우 김정은의 권력기반 자체가 요동칠 수도 있다.


또한 고모 김경희와 고모부 장성택이 후견인이라고 하지만 김정일은 한때 장성택을 혁명화사업에 보내 고통을 주어 견제를 한 적이 있다. 김정일은 장성택을 쥐고 흔들 수 있는 정치력을 발휘했지만 김정은이 장성택을 혁명화 구역에 보내는 등의 방법으로 그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지는 미지수다. 권력이란 부모 형제간에도 나누기 힘든 부분이 있다. 또한 가족 간의 권력투쟁은 흔히 발생하는 일이다.


지난해 9월 당대표자회를 통해 장성택의 측근들이 대거 당 요직에 발탁됐다. 최룡해, 태종수, 김평해, 박도춘, 문경덕 등이 지방당 책임비서에서 중앙당으로 올라온 신진세력이다. 군에서는 리영호 총참모장, 김정각 군총정치국 제1부국장, 우동측 국가안전보위부 제1부부장이 장성택의 사람으로 꼽힌다. 만약 김정은이 장성택을 견제하거나 심각한 권력운영의 실수를 보인다면 장성택이 권력을 직접 장악하려는 욕구를 가질 수도 있다.


김정은의 권력 안정을 가로막는 것은 그가 물려받은 나라가 부도 직전의 상태라는 점이다. 북한의 경제가 극도로 악화된 상태에서 2012년 강성대국에 걸 맞는 혜택을 주민들에게 베풀어야 한다. 주민 여론을 무마하는 리더십은 김정은에게 쉽지 않은 문제이다. 당면한 식량문제 해결, 경제난 극복 등 불만을 해결해주지 않을 경우 주민들은 겉으로만 충성할 뿐 그를 지도자로 인정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대외적인 변수도 넘어야 할 산이다. 김정일 사망 후 북한의 제1의 후원세력인 중국은 당중앙위, 전국인민대표대회, 국무원, 중앙군사위 등의 명의로 “사회주의 강성국가 건설전진”을 강조하고 후계체제 안정을 지지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김일성 사망 당시처럼 즉각적인 최고 권력자 명의로 즉각적인 조전을 보내지는 않는 등 당시와는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김정은 체제 안정을 위해 적극적인 역할을 하겠다는 모습도 아직은 보이지 않는다.


2012년 한국과 중국, 미국에서 권력 교체가 진행될 예정이다. 주변국들이 외교적으로 힘을 싣기 어려운 상태에서 북한에 위기가 발생할 경우 신속한 외교적 지원을 기대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중국뿐만 아니라 한국과 미국의 우호적 환경 조성도 정권 안정의 중요한 변수이다. 북한은 핵문제를 중심으로 6자회담의 진전을 이뤄야 외부 원조 등을 기대할 수 있지만 김정은 스스로 운신의 폭이 좁은 상태에서 군부의 강경 입장을 무마시키고 한미와 합의를 이뤄내기도 쉽지 않다.


김정은의 지도자 수업은 몇 년간 진행돼왔지만 김정일에 비하면 일천하다. 김정일은 1974년 이후 삼촌 김영주나 이복형제 김평일 등과 권력투쟁에서 승리하면서 스스로 권력기반을 구축했다. 김일성과 공동정권을 구성하면서도 적극적으로 자신의 입장을 관철시키고 나중에는 김일성을 무력화 시켰다. 1980년 6차 당대회 이후부터는 정치국 상무위원과 비서국 비서 등을 거머쥐면서 김일성에게는 외교권만을 주고 내치를 좌지우지했다. 김정은은 아직 스스로 쟁취한 권력 기반이 없는 상태다. 모든 위기를 권력장악 하나로 이겨내 온  김정일과는 다른 부분이다. 한반도가 중대 국면으로 더욱 다가가고 있다.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