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가 직접밝힌 박 상좌 악행 “인권침해 호소에…”

진행 : 국가 권력에 의해 부당하게 인권침해를 당한 주민들의 사연을 소개하는 시간입니다. 오늘은 이상용 기자와 함께 합니다. 이 기자 오늘은 어떤 사건을 소개해 주실 건가요?

기자 : 네 함경북도 회령시에 거주하고 있는 최 모 씨가 데일리NK와의 통화를 통해 제보한 사건입니다. 인민보안성 예심국 상급참모인 박 모 상좌의 악행을 고발할 예정인데요. 박 상좌는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주민들을 상대로 회유와 협박, 성폭행을 일삼고 있다고 합니다.

오늘 주요하게 이야기 할 피해자는 함경남도에 살고 정 모 씨인데요, 자신의 억울하게 당한 이야기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 고심 끝에 최 모 씨에게 부탁해서 이 같은 사실을 전해오게 된 겁니다.

진행 : 네. 그렇다면 피해자 정 씨에 대해서 먼저 살펴보죠. 피해자 정 씨, 그는 어떤 사람인가요?

기자 : 제보자에 최 씨에 따르면 정 씨는 함흥 제1사범대학 2학년을 다니다가 뛰어난 실력을 인정받아 북한 명문대인 김일성종합대학 철학부 3학년에 편입하게 됩니다. 그는 편입 이후에도 천재성과 높은 실력을 인정받은 인재였다고 합니다.

진행 : 그런 총망 받던 인재 정 씨가 왜 갑자기 수사를 받게 된 건가요?

기자 : 사건은 2011년 5월 중순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정 씨가 살고 있던 동거 주인집 할머니가 누군가에 의해 살해당했다고 합니다. 신고자는 그 할머니의 딸 아이였다고 하는데요. 당시 할머니는 과도(果刀)에 의해 12곳이 찔렸고, 집 전화기 줄에 목이 매어있었다고 합니다. 때문에 갑자기 피의자 신분으로 정 씨가 억울하게 체포된 겁니다.

다만 여기서도 문제가 하나 나오는데요. 살해당한 할머니가 평양시 대성구역 주민인데, 갑자기 이 사건을 모란봉구역 보안서수사과가 맡게 된 겁니다. 알고 봤더니 할머니의 딸의 내연남이 이곳에서 근무하는 박 상좌였던 겁니다.

진행 : 그럼 정 씨가 박 상좌에게 어떤 폭행을 당했는지 구체적으로 전해주시죠.

기자 : 정 씨는 평양시 모란봉구역 보안서에 체포된 첫날부터 박성일 상좌(당시 중좌)에게 성폭행을 당하거나 심한 고문을 받았다고 합니다. 모란봉구역 보안서 수사과에 간 정 씨는 총 2박 3일 수사과 사무실에 머물렀다고 하는데요.

당시 수사과 담당자였던 박 상좌는 저녁 늦은 시간에 정 씨를 조사한다는 구실로 자기 방에 불러내어 그에게 “네가 억울하다는 건 내가 안다. 네 죄를 감면시켜주거나 무죄로 만들어 주겠다”며 일방적으로 성폭행을 했다는 것입니다.

이후 박 상좌는 “오늘 밤 일에 대해서는 발설하지 말라” “발설하면 목숨을 면치 못할 것”이라는 협박도 서슴지 않았다고 합니다.

진행 : 박 상좌의 악행이 여기에서 끝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기자 : 정 씨는 모란봉구역보안서 예심과 구류장에서 2011년5월15일부터 2012년1월15일까지 말로서는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끔찍한 고문과 폭행을 당했다고 합니다. 우선 사실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살인을 저질렀다는 자백을 강요받았다고 하는데요.

박 상좌는 정 씨를 살인자로 입증하기에는 증거가 부족했기에 사건현장에서 발견된 칼에서 정 씨의 혈액이 검출되었다면서 살인 인정을 강요한 겁니다. 이 뿐이 아닙니다. 담당 계호원(戒護員)들에게 지속적으로 괴롭히도록 지시했다고 합니다.

진행 : 네. 그럼 구류장 안에서 어떤 고문과 폭행을 당했는지 구체적으로 설명 좀 해주시죠.

기자 : 박 상좌는 두 시간에 한 번씩 교대하는 계호원들을 시켜 제각기 자기 특기, 취향대로 정 씨를 괴롭히고 살인을 인정하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지시했다고 합니다.

이제부터 계호원들의 악행을 하나하나 낱낱이 밝히겠습니다. 먼저 이 모(당시 중급병사) 계호원은 정 씨를 철창에 수갑으로 결박해놓고 밤새 한잠도 재우지 않았다고 하는데요. 이 계요원이 들어오는 날 정 씨는 그렇게 한잠도 못 잤던 겁니다.

또 다른 김 모(중급병사) 계호원은 허벅지와 종아리 사이 각목을 끼우고 앉게 한 다음 몸을 세우거나 움직이지도 못하게 하였다고 합니다. 이런 일이 있은 후 정 씨는 다리통증과 부종으로 하여 걷지 못하고 짐승처럼 기어 다닐 수밖에 없었습니다.

진행 : 듣기만 해도 정말 끔찍한데요. 가혹 행위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고요? 

기자 : 네. 또 다른 박 모(상급병사) 계호원은 두 손을 뒷짐 지고 엉덩이를 들고 이마를 철창가에 대고, 턱에 무릎을 대게 하는 동작을 하루 3시간 이상 하도록 만들었다고 합니다.

또한 유 모(중급병사) 계호원은 악질적으로 폭행을 가했습니다. 무릎을 꿇고 철창 밖으로 나오게 한 다음 구두 끝으로 힘껏 두 무릎을 찼다고 하는데요. 이때 정 씨가 뒤로 피하면 손으로 머리칼을 움켜쥐고 머리를 철창에 들이박기도 하고, 두드려서 때리곤 했다고 합니다.

이처럼 밤잠도 못 자는 상태에서 당하는 끝도 없는 폭행과 고문에 정 모 씨는 “아파요, 때리지 마요, 전 청백합니다. 이게 인권침해 아닌가요”라며 항의했지만, 소용없었습니다.

진행 : 인권 침해 지적에 박 상좌는 어떤 식으로 대처를 했던 건가요? 

기자 : 박 상좌는 “구류장에서 무슨 인권이냐”며 또 다시 가혹한 폭행을 가하도록 지시했다고 제보자는 전했습니다.

그러니까 박 상좌는 계호원들에게 “인권이 어떤 것인지 똑똑히 알려주라”면서 “오늘 진짜 인권 맛을 보여주라”라고 이야기 했고, 이에 계호원들은 정 씨를 두 발목에 수갑을 채워 매달아놓고 “자, 이젠 실컷 인권을 소리쳐 보라”며 가혹한 고문을 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정 모 씨는 발목에 채워진 족쇄의 쇠고랑에 발목뼈를 깎는 것 같은 고통을 느꼈고, 결국 울분을 뒤로 하면서 “살려주세요. 죽을 것 같아요. 풀어주세요. 날 내려놔 주세요”라며 거짓 자백까지 했다고 합니다.

진행 :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후 정 씨는 어떻게 됐습니까?

기자 : 네. 반전이 일어나긴 합니다. 제보자에 따르면 정 씨에 대한 재판은 평양시 모란봉구역 재판소에서 인민반장들의 방청하에 진행되었다고 하는데요. 이날만을 기다려온 정 씨는 검사 측의 발언이 끝난 다음 피고석에 발언 기회를 줄 때 무죄를 주장하였다고 합니다.

그동안 모란봉구역 예심과 구류장에서 겪은 인권 침해 실상을 그대로 폭로하면서 강요에 의한 진술이었음을 주장하였고, 판사는 증거 불충분 사유로 그를 귀가시켰다고 합니다.

진행 : 정 씨의 억울함이 조금은 풀렸다고 볼 수 있을까요?

기자 : 아닙니다. 그렇다고 해서 상황이 나아진 것은 없었습니다. 혹심한 폭행과 고문으로 앉은뱅이가 되어 지방에 있는 자기 집으로 돌아갔는데요. 집은 아무것도 없이 텅 비었고 지방 당 간부로 일하시던 부모님들을 정 씨의 사건으로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었다고 합니다.

이에 정 씨는 중앙당 조직지도부와 중앙검찰소에 신소편지를 썼다고 하는데요. 신소 결과 모란봉구역 예심과 전원이 한 등급 강등됐고, 정 씨 부모님은 복직됐죠.

그러나 이뿐이었습니다. 현재 정 씨는 함경남도에서 휠체어를 타고 장애인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정 모 씨는 자신의 이러한 억울함과 더불어 북한 인권침해 실체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싶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는 것이 제보자의 전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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