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영호 “北, 주민 통일 열망에 처형 등 통제 강화로 대처할 것”

태영호 전 북한 공사 “김정은, 흡수통일 가장 두려워해…사전 차단 위해 경제발전도 꾀하는 것”
“핵, 세습독재 시스템 유지 마지막 수단…김정은, 핵포기 절대 못해”

지난달 27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분단 후 북한 최고지도자로서는 사상 처음으로 남한땅을 밟았다. 그가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군사분계선을 넘어오는 모습에 전 세계의 이목도 집중됐다. 이튿날 북한 매체는 그 장면을 게재했고, 이는 북한 주민들에게도 고스란히 노출됐다. 북한 주민들은 남북관계에 불어온 평화의 새 기운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실제 본보의 취재 결과, 남북정상회담을 전후해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는 남북관계 개선뿐만 아니라 ‘통일’에 대한 기대감도 높아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주민의 들뜬 마음과 달리 북한 당국은 회담 직후 발빠르게 주민 동향을 파악하라는 지시를 하달하고, 국경지역을 중심으로 감시와 통제를 강화하는 등 내부 단속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016년 망명해 현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자문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대사관 공사는 최근 서울 모처에서 데일리NK와 만나 북한 주민들의 통일 열망이 강해질수록 북한 당국의 주민들에 대한 감시와 통제는 더욱 강화될 것이라고 밝혔다.

태 전 공사는 “북한 체제의 논리는 ‘한국이 북한의 주적’이라는 것”이라며 “남북관계가 개선되고 교류가 활발해지면 북한 당국은 (주민들에 대한) 감시와 통제를 크게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처형과 같은 강력한 처벌 역시 필연적 결과로 나타나게 될 것이라는 게 그의 관측이다.

특히 태 전 공사는 “김정은이 제일 두려워하는 것은 흡수통일”이라며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남과 북의 경제·군사적 격차가 커지고 있는데, 김정은은 이런 상황이 지속되다 어느 한 때 북한이 한국에 흡수되지 않겠느냐는 의구심이 대단히 강하다”고 꼬집었다. 북한이 경제에 방점을 둔 노선을 분명히하고 있는 것도 경제문제 해결을 통해 흡수통일을 막기 위한 의도라는 해석이다.

이밖에 태 전 공사는 북한 매체가 ‘완전한 비핵화’를 명시한 선언문 전문을 공개한 것과 관련, 북한 주민들의 예상 반응에 대해 “만일 남북회담에서 북한이 한국 측과 한반도 비핵화 문제를 합의했다고 하면 북한 사람들은 얼핏 듣기에는 북한의 승리로 생각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당연히 북한 정권도 이번 회담의 결과를 ‘김정은의 위대한 승리’로 선전할 것”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한편, 그는 조만간 개최될 것으로 보이는 북미정상회담에 대한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태 전 공사는 미국과 북한이 외부세계에 일정 정도 핵 폐기 모습을 보여주고 ‘완전한 비핵화’를 주장하는 방안에 타협할 가능성이 있으며, 이 경우 평화협정 체결도 급물살을 타게 될 것이라고 관측했다.

무엇보다 태 전 공사는 현실적으로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는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북한이 핵무기를 얼마든지 은닉할 수 있으며,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북핵 사찰 및 검증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그는 “북한에 있어 핵무기는 김정은 세습독재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한 마지막 수단”이라며 “자국민 수십만명을 아사로 죽이면서까지 만든 핵무기를 북한이 포기한다는 것은 북한으로서는, 김정은으로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다음은 태 전 공사와의 일문일답.

태영호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자문연구위원. / 사진=데일리NK

-판문점 선언에 ‘완전한 비핵화’라는 문구가 담겼다. 이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나.

“문구대로 보면 남과 북이 한반도의 비핵화를 이룩한다고 돼 있다. 앞에 ‘남과 북’이라고 돼 있는데, 이는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남과 북이 각자 할 바가 있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고 본다. 한국으로 보면 결국 미국의 핵무기나 핵전략자산이 한반도에 임시로라도 전개되도록 하지 말아야 한다. 또 앞으로 미국이 한반도에서 그 어떤 경우에도 핵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한국이 나서서 미국으로부터 핵 불사용을 받아내야 한다는 의무가 반영돼있다고 생각한다.”

-북한 매체로도 보도가 됐다. 보도를 접한 북한 주민들에게는 어떤 영향이 있을까.

“북한은 벌써 수십 년 전부터 조선반도(한반도) 비핵화를 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조선반도 비핵화에서 노린 것은 첫째, 미국의 핵무기 철수였다. 그런데 1991년도에 미국 전술핵무기가 한반도에서 철수했다. 둘째는 미국 핵무기의 전개 및 반입 문제다. 지금도 한미합동 군사훈련을 할 때 핵항공모함이나 핵잠수함이 들어오니 진행형이다. 그러니까 이것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는 미국과 한국은 동맹관계인데, 군사동맹 관계에 있는 미국이 결국 북한에 대한 핵을 앞으로 영원히 사용하지 않겠다는 것을 한국이 미국으로부터 담보를 받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것은 북한 주민들에게 있어 새로운 것도 아니고, 만일 남북회담에서 북한이 한국과 한반도 비핵화 문제를 합의했다고 하면 북한 사람들은 얼핏 듣기에는 북한의 승리로 생각할 것이다.”

-정권에서도 ‘김정은의 위대한 승리’라고 선전할 수 있다는 것인가.

“당연하다.”

-북한이 정말 비핵화 의지를 가지고 있을까. 여전히 진정성에 의구심을 갖는 시각이 있다.

“북한에게 핵무기는 북한 김정은 세습 독재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한 마지막 수단이다. 이번에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4월 20일 북한은 당 전원회의를 했는데, 여기서 김정은이 북한의 핵이 어떤 것인가를 정립했다. 김정은은 북한에 있어서 핵무기는 한반도의 평화를 담보할 수 있는 근본적인 수단이며 또 앞으로 후손 만대까지 영원한 행복과 번영을 이룩해나갈 수 있는 근본 담보라고 했다. 또 우리는 영원히 어떤 경우에도 핵을 포기할 수 없다고 당 전원회의에서 채택했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이 핵을 진정으로 폐기한다는 것은 북한으로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북한에서 1990년대 말에 수십만의 아사자가 생겼다. 다른 나라에서의 아사와 기근현상은 그 나라의 지도부가 주민들을 먹여살릴 만한 능력이 없어서 생긴 것이다. 그러나 90년대 말 북한에서 일어난 아사 현상은 북한 지도부에 그들을 먹여살릴 충분한 자금이 있었지만, 그 자금을 그들을 먹여살리는 데 쓴 것이 아니라 바로 핵 개발을 계속하는 데 썼다. 이렇게 자국민 수십만명을 아사로 죽이면서까지 만든 핵무기를 북한이 포기한다? 이것은 북한으로서는, 김정은으로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 중단, 그리고 핵실험장 폐쇄까지 선언했다. 그 의도를 어떻게 보나.

“결국 북한이 가지고 있는 핵무기, 현재의 핵무기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는 과거나 미래도 다 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과거, 말하자면 핵무기를 만드는 시설이나 핵실험장, 핵물질을 생산하는 공정도 다 포기할 수 있다. 또 앞으로 추가적인 핵실험이나 ICBM 개발도 포기할 수 있다. 한 마디로 현재를 가지기 위해 과거와 미래를 포기하겠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미국을 공격할 수 있는 핵능력을 가지면 미국의 군사적 공격을 불러올 수 있으니 북한으로서는 한국이나 일본을 핵인질로 가지고 있어도 충분하다는 의미로도 볼 수 있다.”

-그 외 판문점 선언에서 주목해볼 것이 있다면.

“판문점 선언 자체는 아주 잘 된 성과물이라고 생각한다. 단, 앞으로가 중요하다. 지금까지 남과 북 사이에는 훌륭한 선언문과 합의문이 정말 많이 나왔다. 그 훌륭한 선언과 합의문이 다 일회성, 이벤트성으로 끝났고 현실적으로 이행되지 않았다. 합의문을 이행하는 근본적인 문제와 자세가 똑바로 서지 않았기 때문에 그러한 결과가 나타났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은 이번 선언이 잘 되려면 북한을 유리알 다루듯 살살 다뤄서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북한 시스템을 올바르게 알고 유리알 다루듯 할 것이 아니라 도공이 질그릇을 만드는 심정으로 빚다가, 잘못되면 다시 망가뜨리고 다시 빚는 심정으로 해야 진짜 한국 국민들에게 도움이 되는 문건으로 남을 수 있다.”

-남북정상회담 이후 김정은 위원장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고 있다.

“김정은의 이미지를 다르게 보고 다르게 평가하는데 많은 전문가와 언론이 동원되고 있다. 이번에 김정은의 모습을 보니 지금까지 우리가 생각했던 김정은은 악마였는데 악마가 아니라 평화의 사도, 평화의 천사가 아니냐는 인식이 언론뿐만 아니라 일반 국민 속에서도 높아지고 있다. 우리가 악마를 천사로 봐도 안 되지만 반대로 천사를 악마로 봐서도 안 된다. 우리는 항상 팩트(fact)를 중시할 때만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지금까지 국민들이 북한의 핵무기를 대단히 무서워하고 두려워한 것은 핵무기 그 자체보다도 악마에게 그 핵무기가 쥐어졌을 때 그것이 큰 엄청난 불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인식 때문이었다. 그런데 김정은이 천사라고 생각한다면 천사의 손에 쥐어진 핵무기는 그것이 핵무기가 아니라 감람나무가 되는 것이다. 김정은을 천사처럼 생각하는 이미지가 고착되고 2~3년이 지나 ‘설사 북한 핵이 있으면 어떠냐’, ‘김정은이 핵을 가지고 있어도 어차피 우리를 향해 쓸 것도 아니지 않느냐’는 인식이 늘어나면 결국 일부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핵 있는 평화’로 가는 것이다. 이것이 가장 위험하다.”

-김정은 위원장이 탈북자를 직접 거론한 것도 주목해볼만한 부분인데.

“지난 시기 북한 지도부는 한국에 탈북민 공동체가 있다는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리고 북 주민들에게 탈북민을 변절자, 배신자라고 이야기했다. 그런데 이제는 한국에 온 탈북민이 3만명 선을 넘어섰다. 이 탈북민들이 한국에 와서 정착해 사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많은 탈북민들이 통일을 위한 투쟁에 나서고 있다. 결국 지난시기 북한 당국이 홀대할 수밖에 없었던 탈북민 존재에 대해 점점 김정은도 의식하게 됐고, 무시할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르렀다고 볼 수 있다.”

-북한도 남한도 정말 통일에 대한 의지가 있을까.

“내가 한국에서 보니 일반 주민들과 젊은이들이 통일에 대해 별로 관심도 없고, 많은 사람들이 ‘과연 통일이 우리에게 필요할까’ 생각하는 분들이 많더라. 그런데 북한은 완전히 반대다. 북한에서는 최근에 한류를 통해 한국의 현실을 많이 알게 되면서 일반 주민들 속에서 한국에 대한 동경이 대단히 높아지고 있다. 실제 이것은 약간 착오적인 생각인데, 통일되면 우리도 한국 주민들처럼 잘살 수 있지 않을까, 저렇게 잘사니 통일되면 우리 집에 몇 년 새 자가용도 생기고 해외여행도 갈 수 있지 않을까 이런 기대감과 희망이 대단히 부풀어 있다. 북한에서는 한국과 빨리 통일했으면 하는 일반 주민들의 열망과 기대가 상당히 높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북한 정권은 통일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태영호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자문연구위원. / 사진=데일리NK

“김정은이 제일 두려워하는 것은 흡수통일이다.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남과 북의 경제적, 군사적 격차도 커지고 국제무대에서 남북한의 지위도 변하고 있다. 김정은은 이런 상황이 지속되다 어느 한 때 과거 동독이 서독에 흡수된 것처럼 북한도 한국에 흡수되지 않겠느냐는 흡수통일에 대한 의구심이 대단히 강하다.”

-앞으로 남북관계가 지속적으로 발전될 수 있을지, 또 북한이 향후에 남북관계를 어떤 식으로 활용할 의도가 있다고 보는지 궁금하다.

“지금 김정은으로서는 두려운 것이 미국 대통령 트럼프가 어떻게 나올지 전혀 향방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하루는 북한에 대한 군사적 옵션을 비롯해 모든 옵션을 다 생각하고 있다고 하는데 그 다음에 가서는 김정은과 대화도 할 수 있다고 하니 김정은으로서는 트럼프의 의중이 뭔지 파악하기 힘든 상황이다. 김정은도 일단 트럼프가 북한을 박살내자고 결심하면 북한이 금방 간다는 것도 잘 알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단 한국이라는 요인으로 미국의 군사적 공격을 일단 피해보자는 심리일 것이다. 김정은은 한동안 남한과의 관계를 좋게 해서 관계 개선을 계속 밀고나가자는 입장일 것이다.”

-남북관계가 개선된다면 북한 주민들의 통일 열망이 더 높아질 텐데, 북한 당국은 단속과 통제를 강화하는 모습이다.

“당연하다. 남북관계가 개선되고 교류가 활발해지면 북한 당국은 감시와 통제를 크게 강화할 것이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약 10년 동안 남북교류가 활발해질 때, 남한의 물자나 자금지원을 받은 관계 부처나 인사들 가운데 당국의 감시와 처벌을 받은 사람이 대단히 많다. 한국 종교단체의 지원을 받아 평양에 아파트를 짓기도 했는데, 그 과정에서 관계부서와 인사들의 부패와 부정이 있었고, 그에 가담했던 사람들이 처형되기도 했다. 지금은 김현철과 리선권 계열이 대남사업을 담당하고 있는데, 그 이전 대남사업 라인이 많이 제거됐기 때문이다. 북한체제의 논리는 ‘한국이 북한의 주적’이라는 것이다. 주적과 교류하고 물자와 돈이 오고가는 현상이 발생하면 당연히 단속과 통제가 강화되고, 처형을 비롯한 강력한 처벌을 피할 수 없다.”

-이제 시선은 미북정상회담으로 쏠리고 있다. 성사가 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 수 있을까.

“현 시점에서는 상당히 예측하기 힘들다. 나로서는 현재 미국이 주장하고 있는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핵폐기)는 북한 김정은으로서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이라고 생각한다. 트럼프가 마지막까지 CVID 원칙을 고수하겠느냐 아니면 일정한 절충안에 합의하겠느냐 이것은 가늠할 수 없다. CVID라는 것은 현실적으로 전폐국들에게만 적용이 가능하다. 말하자면 그 나라의 주권을 다 빼앗고 점령군이 들어간 조건에서만 샅샅이 들춰내는 것이다. 자주 독립국가의 주권적 개념이 존재하는 조건에서 CVID 개념을 지금까지 적용한 전례는 한 번도 없다.

또 북한 견지에서 보면 미국에 다 보여줄 수 없다. 예를 들어 미국이 ‘정치범수용소에 ICBM 숨겨놓았을지 모르니 들어가 보겠다’ 하면 북한이 보여줄 수 있을까? 보여줄 수 없다. 그리고 북한에는 김씨 일가만이 이용하고 있는 특수 지역이 대단히 많다. 구역 전체를 다 위수구역으로 설정하고 그 누구도 들어갈 수 없다. 북한이 다 보여주면서까지 핵폐기 의지를 증명하겠다? 이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현실적으로 완전한 핵폐기는 불가능할 것이라고 보는건가.

“그렇다. 문제는 미국이다. 미국이 북한과 일정 정도 타협하느냐 아니냐 하는 문제다. 91년 남북 비핵화 공동선언을 만들 때를 회고해보면 그 때 당시 한국은 남북 상호 검증 사찰이라는 것을 주장했다. 사찰 대상을 남과 북이 각기 정하고 북이 보고픈 것은 북이 남한에 내려와서 보고, 한국이 보고픈 것은 한국이 가서 본다는 개념이다. 그런데 북한이 이것을 끝까지 반대했기 때문에 결국 비핵화 공동선언에는 ‘상대방이 정하고 쌍방이 상호 합의한 대상을 사찰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것은 결국 대학입학시험을 교수와 학생이 서로 합의하고 보는 것과 같다. 그렇기 때문에 비핵화 공동선언은 이행될 수가 없었다. 북미회담에서 상호 합의한 목록과 대상만을 사찰한다고 하면 91년과 같은 똑같은 사기극이 재연될 것이다.”

-미북정상회담에 임하는 북한의 협상전략을 조심스럽게 예측해본다면.

“현재 미국의 관심은 북한의 완전한 핵폐기냐 아니면 현존하고 있는 NPT 시스템을 고수하는 문제냐다. 만일 미국이 북핵을 폐기시키지 못하고 북한이 핵보유국으로 남게 되면 앞으로 NPT 시스템의 근본 기초가 흔들리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은 실제 북한에 핵무기가 있느냐 없느냐보다 일정 정도 북한의 핵무기를 폐기시키고 외부에 ‘북한은 이제 핵무기를 다 폐기했다’, ‘미국이 북한을 비핵국가로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또 북한은 북한 입으로 ‘우리는 핵무기를 다 폐기했다’고 포장할 수 있다. 여기에는 북한과 미국이 같은 이해관계가 있다. 이 방향으로 간다면 타협안이 나올 수 있다.

이런 방식으로 간다면 평화협정 체결 문제도 급물살 탈게 될 것이다. 물론 북한으로서는 당장 주한미군 철수 문제나 합동군사훈련 중지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것이다. 평화협정을 일단 체결하고 난 다음에 시일이 흐르면 흐를수록, 북한이 추가도발 하지 않고 잠잠히 있으면 있을수록 한국과 미국 사이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북한이 가만히 있어도. 한국과 미국 사이에 ‘평화도 유지되고 남과 북이 평화적으로 공존하는데, 주한미군이 왜 필요하냐’는 이야기가 나오게 되면 미군이 있어야 할 존재의 명분이 없어질 것이다.”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북한을 이끌었다는 평가가 있다. 앞으로도 대북제재가 더 필요하다고 보나.

“당연하다. 지금까지 모든 대북제재는 유엔 안보리 결의를 통해 만들어졌다. 그 전제는 북한의 핵 개발이다. 그런데 북한의 핵무기를 폐기하지 못하고 현 시점에서 대북제재를 취소하거나 완화시켜 놓으면 결국 현재의 북한 핵을 인정하는 것이 되며, 지금까지 북한 핵을 인정하지 않고 대북제재를 가해왔던 국제법적 기초가 무너지게 된다. 그렇게 되면 결국 북한은 누가 인정하든 안하든 자연히 핵보유국으로 가는 길을 열어놓은 셈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완전한 핵폐기가 검증되기 전에는 지금의 대북제재 기조를 계속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권문제도 의제로 논의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는데, 필요성이 있다고 보나.

“지금까지 북한은 서방세계가 인권문제를 들고 나올 때 항상 핵실험이나 미사일 발사와 같은 핵 문제를 들고 나왔다. 그렇게 하면 인권문제로부터 핵문제로 국제적인 시각이 돌아설 수밖에 없고, 결국 인권문제는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려나게 돼 있다는 게 북한의 전략이었다. 핵 문제의 완전한 종착적 해결점은 결국 북한 인권 문제 해결이라고 볼 수 있다.”

-앞으로 한반도 정세가 어떻게 흘러갈 것으로 관측하고 있나.

“내 생각에는 지금의 남북관계 화해, 해빙무드가 오랫동안 지속될 것 같다. 현재 한반도에서의 긴장상태는 누구도 바라지 않는다. 모든 나라 지도자들이 말로는 북한의 핵폐기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실제 속심은 핵폐기에 앞서 현재의 평화 그리고 북한이 추가 도발하지 않도록 가만히 있게 만드는 동결 대 동결, 현 정세안정 관리 쪽에 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방향으로 갈 것으로 보고 있다.”

-북한이 추구하고자 하는 궁극적 목표가 무엇일까.

“북한이 제일 두려워하는 것은 한국에 의해 흡수되는 것이다. 흡수를 막으려면 경제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지금까지 북한이 경제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것은 자체가 가지고 있는 경제구조의 모순도 있지만 다른 하나는 북한이 군비에 너무나 많은 돈을 지출했기 때문이다. 북한은 이제 핵을 만들었으니 핵을 든든한 안보 기둥으로 두고 지금까지 군비에 지출하던 막대한 자금과 인력, 재원을 경제 건설에 돌리겠다는 것이다. 북한은 대단히 조직화된 사회고, 일단 당과 지도자가 결심하면 전체 국민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시스템이다. 문제는 가지고 있는 재원을 어디에 쓰느냐다. 나는 이제부터 북한이 이 재원을 평화 건설과 주민생활 향상에 돌릴 것이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