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충지대 들어오면 사격” 포고가 현실로…총격에 주민 사망

국경경비대 쏜 총에 맞은 밀수꾼 현장서 즉사…주민들 "진짜 쐈다" 공포 분위기 고조

북한 사회안전성 명의로 내려온 ‘북부국경봉쇄작전에 저해를 주는 행위를 하지 말데 대하여’라는 제목의 포고문. 사격과 관련한 내용도 포함돼 있다. /사진=데일리NK

북한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입 차단을 위한 목적으로 북부 국경에 완충지대를 설정하고 이곳에 들어오는 인원에 대해서는 무조건 사격한다는 포고문을 내린 가운데, 최근 양강도 국경지역에서 한 주민이 국경경비대의 총격에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 것으로 전해졌다.

양강도 소식통은 17일 데일리NK에 “지난 14일 밤 11시 대홍단 산지 연선에서 30대 밀수꾼 남성이 국경경비대가 쏜 총에 맞아 현장에서 즉사했다”며 “소문을 들은 현지 주민들은 진짜 총을 쏴서 사람을 죽였다는 것에 공포감을 드러내고 있다”고 전했다.

소식통에 따르면 이 밀수꾼은 양강도 대홍단에 파견된 폭풍군단 소속 부분대장(하사)과 공모해서 들쭉 약 20kg을 마대에 담아 직접 중국으로 넘어갔다가 돌아오던 중 국경경비대에 발각돼 총격을 받았다.

그는 폭풍군단에서 2년간 복무하다 감정제대(의가사제대)된 인물로, 제대 후 홀아버지가 사는 양강도 고향으로 돌아와 본격적으로 밀수에 뛰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밀수꾼은 코로나19 사태로 국경이 막혀 벌이가 마땅치 않던 상황에서 때마침 과거 군복무를 같이 했던 폭풍군단 부분대장이 국경봉쇄 작전을 위해 양강도에 파견돼 오자 그와 짜고 몰래 밀수에 나섰다는 전언이다.

소식통은 “밀수꾼은 폭풍군단 부분대장의 초소 근무 시간에 개구리 군복을 입고 군인인 것처럼 위장해서 촘촘한 6중 국경봉쇄망을 뚫고 유유히 중국으로 넘어갔다”며 “그가 중국에서 돌아올 때도 폭풍군단 부분대장이 함께 움직이며 뒤를 봐줬는데, 그 과정에서 국경경비대에 발각돼 총을 맞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경경비대는 사건 당일 밤늦은 시각에 접경 지역에서 어두운 물체가 수상하게 움직이는 것을 포착하고 공포탄 3발을 먼저 발사했으나, 움직임이 멈추지 않자 결국 실탄을 장전해 조준 사격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위장군복을 입고 있던 밀수꾼은 국경경비대가 쏜 총에 맞아 즉사했고, 그와 함께 있던 폭풍군단 부분대장은 왼쪽 허벅지에 관통상을 입은 채로 현장에서 체포됐다.

특히 이번 일로 국가보위성과 군 보위국 간에 신경전이 일기도 했다고 소식통은 전했다. 보위성은 국경에서 벌어진 일이니 자신들이 취급하겠다고 하고, 군 보위국은 폭풍군단 소속 군인이 연루된 일이니 자신들이 처리하겠다며 서로 나섰다는 것이다.

결국에는 보위성이 먼저 사건을 조사하고 군 보위국에 넘기는 것으로 결론이 내려져 현재 폭풍군단 부분대장은 현지의 보위부 구류장에서 침대에 족쇄가 채워진 상태로 조사와 치료를 동시에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건을 조사 중인 보위성은 사망한 밀수꾼이 들고 있던 짐 속에 중국 돈과 가정집에서 사용하던 것으로 보이는 중고 노트북 한 대, 새 옷가지와 신발들이 담겨 있던 점에 미뤄 그가 밀수하러 중국으로 넘어갔다가 일반 가정집을 털어 물건을 훔쳐 온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는 게 소식통의 이야기다.

한편 보위성은 사격을 지시한 국경경비대 분대장과 직접 총을 쏜 국경경비대 하급병사에게 구두 감사를 내렸으며, 코로나19 사태가 잠잠해지면 동기훈련 전에 포상휴가를 보내주는 것으로 이들을 치하했다고 한다.

이런 가운데 주민들은 이번 사건을 두고 “쏘겠다는 포고가 그냥 엄포인 줄 알았는데 진짜 쐈다” “군대의 총알이 인민을 겨누다니 너무 무섭고 사지가 떨린다”는 등의 반응을 보였다는 전언이다.

이밖에 소식통은 “주민들은 9월과 10월에 들쭉, 잣, 약초 등을 팔아넘겨 1년 동안 생활할 자금을 마련해야 하는데 지금 국경 분위기가 살벌해 밀수할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면서 이번 겨울은 어떻게 나고 또 내년에는 무엇을 먹고살아야 하느냐며 한숨을 내쉬고 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앞서 본보는 북한 국경지대에 사회안전성 명의로 ‘북부국경봉쇄작전에 저해를 주는 행위를 하지 말데 대하여’라는 제목의 포고문이 내려왔다고 전한 바 있다. 실제 입수한 사진을 통해 본 포고문에는 국경봉쇄선으로부터 1~2Km 계선에 설정한 완충지대에 비조직적으로 들어갔거나 압록강·두만강에 침입한 인원에 대해서는 무조건 예고없이 사격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관련기사 보기: 국경에 사회안전성 포고문… “완충지대 들어오면 무조건 사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