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경대 방문 北주민이 듣는 김일성 관련 거짓 선전들

북한 노동신문은 지난 3일 주민들이 김일성 생일을 맞아 그의 고향집 만경대를 찾았다고 전했다. /사진=노동신문

김일성이 태어난 만경대는 북한에서 ‘인민들의 고향’, ‘혁명의 성지’, ‘태양의 성지’라고 불린다. 첫 번째, ‘인민들의 고향’은 ‘만경대고향집’으로 통하는데, 만경대가 김일성의 고향뿐만 아니라 북한 전체 인민들의 고향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4월 3일자, 노동신문의 ‘주체의 태양이 솟아오른 혁명의 성지: 만경대고향집을 찾아서’라는 기사에는 아래와 같은 내용이 나온다.

“조용히 불러만 보아도 마음 경건해지고 숭엄한 격정이 가슴 젖어드는 우리 인민의 마음의 고향 만경대, 언제 어디서나 인민의 가슴 속에 소중히 간직되여있는 곳…” 이처럼, 현재 북한에서 만경대는 김일성이 태어난 장소를 넘어 북한 전체 인민들의 (마음의) 고향이 되었다. 다음의 김정은의 말에서도 이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만경대는 반만년민족사에서 처음으로 맞이하고 높이 모신 어버이 수령님께서 탄생하시여 어린 시절을 보내신 우리 인민의 마음의 고향이며…”

두 번째, 만경대는 북한 제1의 ‘혁명의 성지’로 불린다. 만경대가 ‘혁명의 성지’로 불려진 시기는 김정일이 김일성과 만경대를 방문하였을 때, 함께 간 간부들에게 “수령님께서 저 사립문을 나서시여 광복의 천리길에 오르신 때로부터 조선혁명이 시작되고 주체사상의 시원이 열렸다”라고 말하면서 부터이다. 그 전에는 ‘혁명의 요람’으로 불리어졌는데, 대략 1960년대 후반부터이다. 북한의 총서라고 할 수 있는 <조선중앙년감>에서는 1969년에 처음으로 만경대를 ‘인민의 태양이 솟은 혁명의 요람’이라고 적시했다. 북한이 만경대를 ‘혁명의 성지’라고 하는 것은 단지 김일성이 태어난 곳이기 때문보다 혁명가로서의 비범한 사상·정신적 풍모와 혁명적 세계관을 키운 장소로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만경대 방문의 주요목적은 바로 김일성정신(주체사상)을 체현(體現)하는 것이다.

세 번째, 만경대는 ‘태양의 성지’로 불린다. 김일성을 태양으로 묘사한 시점을 소설가 한설야의 작품 ‘우리의 태양’이 출간된 1946년으로 보는 견해도 있지만, 분명히 김일성을 태양이라고 간접적으로 칭한 것은 한참 후인 1969년부터이다. 북한공식문건(당문건·정치문건)에서 김일성의 이름에 직접 ‘태양’이 표기된 것은 1974년부터이다. 이 시기는 김정일에 의해 주체사상이 ‘김일성주의’로 체계화 되고 10대원칙이 명문화되면서 종교적 성격을 띤 행동규범들이 만들어진 시기이다. 바로 이때부터 ‘태양’은 김일성의 대표적 지도자상징이 되었다. 1997년, 북한이 김일성 생일을 ‘태양절’로 제정하면서부터는 상징을 넘어 김일성은 태양자체가 되었다. 즉, 태양신이 되었다. 이때부터 김일성 영생론이 대두되었다(‘김일성생일 ‘태양절’, 북한체제의 대전환’ 3월30일 국민통일방송내용 참고).

만경대 방문자들이 듣는 김일성 관련 선전들

노동신문의 기사 내용대로, 김일성의 생일, ‘태양절’을 앞두고 북한 인민들이 김일성 생가인 ‘만경대’를 방문하고 있다. 하나의 성지를 넘어 북한 전체 인민의 ‘마음의 고향’인 만큼 엄청난 많은 인파가 그곳을 찾을 것이다. 만경대 방문자들은 강사(해설사)의 해설을 듣는데, 신문기사의 내용을 유추해보면 대략 다음과 같이 만경대를 소개하는 것 같다. 처음에는 만경대의 풍경 및 지리·역사를 소개하고, 뒤이어 김일성의 부모인 김형직, 강반석뿐만 아니라, 그의 증조부인 김응우까지 거슬러 올라가 김일성 가계 숭배로 이끌어간다. 북한은 김일성 우상화에 앞서 그의 조상들을 영웅화시켰는데 그 시기는 1967년이다. 1968년 연감에는 김형직과 강반석에 대한 업적이 상세히 기술되어 있다. 동시에 김일성의 조부인 김보현과 증조부인 김응우에 대해서도 칭송하고 있는데, 김응우를 1866년 미국의 군함인 <샤만호>를 불태운 인물로 소개하였다.

김일성 가계의 업적을 나열하고 난 후, 강사는 김일성에 대해 소개할 것이다. 김일성의 탄생부터 어린 시절 성장 이야기를 소개하며 선전할 것이다. 물론, 북한 주민들은 이미 1967년부터 출판된 「김일성원수님의 어린시절」을 학교과목인 ‘김일성원수님 어린시절배우기’를 통해 익히 알고 있을 것이다. 이것이 김일성 우상화의 출발점이다. 특이한 점은 북한은 김정일의 탄생설화(‘김정일전설집’ 참고)처럼, 김일성의 탄생을 신화적으로 묘사하지는 않는다. 단지, 김일성의 조부인 김보현이 그가 태어날 때 꿈에서 금방석위에 옥동자를 보았다는 정도이다. 물론, 이 내용도 1996년에 출간된 <김정일전설집>에서 비로소 나온다.

만경대, 김일성 관련 선전 중 심각한 오류

만경대 김일성생가 강사의 김일성에 대한 선전을 기사화한 노동신문 4월3일자 내용에서 아주 큰 오류를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3·1운동’ 과 김일성과의 연계이다. 기사를 보면 강사는 다음과 같이 선전하는 것 같다. “만경대시절에 체험하신 3.1인민봉기도 우리 수령님의 혁명의식발전에 참으로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어리신 나이에 어른들과 함께 시위대렬에서 독립만세를 부르시며 만경대에서 보통문 앞에까지 가신 위대한 수령님이시였다.” 이 선전의 핵심은 바로 만경대에서의 3.1운동 경험이 김일성의 혁명의식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내용은 거짓이다. 왜냐하면, 3·1운동시기 김일성은 8살이었는데 ‘김일성원수님의 어린시절’, 책을 보면 그 무렵 김일성은 만경대에 있지 않고 부친인 김형직과 함께 국경지대인 중간진에 있었다. 그 책 ‘밝은 앞날을 내다보시며’ 차례에서 김형직이 1916년 만경대를 떠나 봉화리에 자리를 옮겼고, ‘조국을 멀리 떠나서’ 차례에는 김형직이 1918년에 국경지대인 중강진으로 자리를 다시 옮겼다고 나온다. 이때 김일성도 함께 고향을 떠나 김형직을 도왔다고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다.

김일성이 만경대에 다시 돌아온 것은 그가 12살 때였다. 바로 북한이 ‘김일성어린시절 따라배우기’ 중 최우선으로 내세우는 ‘배움의 천리길’이 바로 이 시기이다. 따라서 3.1운동과 김일성의 만경대어린시절을 연동시키는 것은 날조(捏造)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3.1운동을 통한 김일성의 혁명의식 고양(高揚)도 가짜가 되는 것이다.

김일성생가 강사는 그 다음 더욱 힘을 주어 김구(선생이라고 표기하지 않음)가 만경대에 방문할 때 김일성의 조부(김보현), 조모(리보익)를 보고 감명을 받으며 김일성을 조선의 수령으로 인정했다고 선전을 한다. 독립운동의 대표성을 띠며 국가지도자인 김구선생을 이용해서 김일성 정권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김구선생이 남한만의 단독선거를 막기 위해 1948년 4월 22일, 김일성과의 남북연석회의 차 평양에 간적은 있었다. 북한은 이시기 김구선생의 행적을 조작하여 김일성 정권의 옹호자로 탈바꿈시켰던 것이다.

<김일성 저작집>에는 김구선생관련해서 다음과 같은 내용도 나온다. 백범선생이 김일성에게 상해와 중경에서 그가 이끌었던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국새(國璽)를 바치면서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을 다 한 늙은이에 불과하니 이제 나에게는 고향인 황해도에서 능금밭이나 하나 주어 여생을 보내게 해 주고 앞으로 나라일은 김 장군이 도맡아 챙겨달라”고 청했다는 것이다. 이 또한 하나의 조작이다.

김구선생의 공산주의관을 보면 충분히 알 수 있다. <백범일지>에는 “공산주의자들과는 아무것도 더불어 함께 할 수 없다”는 그의 확고한 신념이 드러나 있다. 다음의 그의 말에서 김일성을 전혀 인정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정확히 확인할 수 있다. “자유있는 나라의 법은 국민의 자유로운 의사에서 오고, 자유없는 나라의 법은 국민 중의 어떤 한 개인 또는 한 계급에서 온다. 한 개인에게서 오는 것을 ‘전체’ 또는 ‘독재’라 하고 한 계급에서 오는 것을 ‘계급독재’라 하며 통칭 ‘파쇼’라고 한다. 나는 우리나라가 ‘독재’의 나라가 되기를 원치 않는다. ‘독재’의 나라에서는 정권에 참여하는 계급 하나를 제외하고는 다른 국민은 노예가 되고 마는 것이다.”

이처럼,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위험성을 알고 있는 그가 소련 독재자 스탈린의 하수인이며, ‘북한의 스탈린’(수령의 의미)으로 불리기를 원했던 김일성을 지지했다는 것은 새빨간 거짓말이며 김일성 정권의 정당성을 내세우기 위한 가장 큰 날조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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