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생모 미공개 사진…”본명은 고영자”







▲ 1973년 조선화보에 일본에서 열린 만경대 예술단의 공연이 소개됐다. 빨간 원 안에 있는 여성이 고영희다.

김정일의 세번째 부인이자 후계자로 확정된 김정은의 생모 고영희(2004년 사망)의 성장 과정을 알 수 있는 자료가 최근 입수됐다.


데일리NK는 1973년 발간된 북한의 대외 선전용 사진잡지인 조선화보에서 1970년대 만수대예술단 무용수로 활동했을 당시 고영희의 미공개 사진을 포착했다.  


1973년도에 발간된 조선화보에는 그 해 8, 9월 사이 일본을 방문한 평양 만수대예술단의 공연 내용이 사진과 함께 소개돼 있다. ‘부채춤’이라는 제목의 사진에는 고영희로 추정되는 인물이 공연을 펼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지금까지 국내에 공개된 고영희 사진은 1970년대에 발간된 ‘조선민요집’ 모델 사진 뿐이다. 이 인물과 화보집 사진에 나오는 여성이 동일인물이라는 것은 쉽게 알 수 있다.  


이와 관련 당시 조총련 예술관련 분야에서 일하며 만수대 예술단 공연을 추진했던 한 관계자(조총련 산하 금강산 가극단 소속)는 데일리NK와 만나 “중앙에서 부채를 높이 드는 여성이 고영희가 분명하다”면서 “우리는 당시 이 여성을 ‘고영희 선생님’이라고 불렀는데 ‘조국의 진달래’ ‘부채춤’ ‘목동과 처녀’ 등의 공연에서 주연으로 활약했다”고 확인했다.


이 관계자는 또한 “(1973년 고영희가 일본에서 공연을 갖기) 1년 전 박애라라는 북한 여배우에게서 ‘내년 일본에 가는 여성 중에는 다음 지도자(김정일이)가 가장 아끼는 여성이 속해있다’라는 말을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 공연을 마치고 돌아간 고영희가 나중에 김정일의 부인이 된 사실은 조총련 관계자에게서 들어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김정일의 최초 동거녀였던 성혜림(2002년 사망)은 1971년 아들 김정남을 낳았다. 고영희의 존재를 이 관계자에게 알린 북한 배우 박애라의 증언을 볼 때 김정일은 첫째 아들을 낳은 지 1년도 넘지 않거나 그 이전부터 고영희라는 여성을 만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당시 만수대예술단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무용수였던 고영희는 1970년대 중후반부터 사실상 김정일의 정부인 역할을 하며 김정철(1981년), 김정은(1982년), 김여정(1987년)을 낳았다.


또한 이 화보에는 고영희를 일본에 소개하기 위해 고영희 대신 북송되기 전 사용했던 고영자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조선화보에는 이 고영자라는 인물이 북한의 음악무용대를 졸업하고 공훈배우로 활약했다는 내용이 실려있다.


우리 정보기관은 고영희의 아버지에 대해 익히 알려진 ‘북한의 유도영웅’ 고태문이 아닌 제주 출생으로 1929년 일본 오사카로 간 고경택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 조선화보에는 고영희의 가족 사진이 실려 있는데 아버지 자리에는 고태문이 아닌 고경택 씨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고경택은 ‘히로타(廣田) 재봉소’에서 일하다 실직한 후 북한으로 넘어가 함경북도 명간군에 정착했으며 모두 2남 4녀의 자식을 뒀다.


고영희가 원래 영자에서 영희로 개명한 이유는 간단하다. 김일성은 해방 이후 북한 여성의 이름끝에 ‘자(子)’를 붙이지 못하게 했고, 이미 자를 쓰던 여성들도 개명하라고 지시했다. 따라서 고영희도 북한으로 귀국한 이후 이름을 ‘고영자’에서 ‘고영희’로 바꾼 것으로 보인다.


화보에서는 지난 2001년 미국에 망명한 것으로 알려진 고영희의 여동생 고영숙의 모습도 확인할 수 있다. 고영숙은 나이대가 고영희와 비슷해 얼굴 생김새도 매우 유사하다. 


일부 언론에서는 고영희가 북송교포 출신으로 북한유도의 창시자인 고태문(1980년 사망)의 딸이라고 보도해 왔었다. 일본 언론 등은 고태문의 딸로 전기를 출간한 고춘행이 고영희와 동일인물이라고 보도했다.


그러나 국정원은 지난 2006년 ‘고춘행은 1950년생으로 고태문의 딸이지만 고영희는 1952년생으로 고경택(1999년 사망)’이라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 조선화보에 실린 고영희 일가 사진(左) 아래 사진 가운데 여성이 고영숙(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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