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기만전술 아니라 비핵화 정도(正道) 밟아야

지난 5일 김정은과 수석대북특사인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등 특사단이 남북문제 등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 사진=조선중앙통신 캡쳐

지난 5일부터 1박 2일간 한국의 대북 특사단이 북한을 방문했습니다. 한국 특사단은 김정은을 만나 6개 항의 합의를 끌어냈으나, 김정은의 진정성에는 여전히 의문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김정은이 지난해까지 미국과 전쟁도 불사할 듯 강경하게 나오다 갑자기 태도를 바꾼 이유에 관심이 주목되고 있습니다. 결론부터 제시한다면, 김정은의 태도 변화는 북한 경제를 전례 없이 약화시키고 있는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를 이완시키고 핵, 미사일 능력의 완결성을 위한 시간벌기용의 전술적 후퇴라고 판단됩니다.

지난해 집권한 트럼프 행정부는 전임 정부와 달리 북한 당국에 양보 없는 강경한 입장을 고수해왔습니다. 가장 최근에는 평창올림픽 폐막식 참석을 위한 김영철의 한국 방문을 앞두고 지난 2월 23일 미국 재무부가 사상 최강의 대북제재를 발표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제재가 효과가 없으면 군사 행동에 돌입할 수도 있다고 언급하기까지 했습니다. 한국 특사단이 김정은을 만난 5일에는 미 국무부에서 북한에 대한 또 다른 제재를 전격 단행했습니다. 지난해 2월 김정은의 이복형 김정남 암살 사건과 관련해서 북한 당국이 ‘VX’라는 맹독성 신경제를 사용한 것과 관련해서 ‘생화학무기 통제 및 생화학전 철폐법’을 적용하여 대북 원조와 무기 판매, 정부 차관 또는 금융지원을 중단토록 한 것입니다. 실제로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최대 압박과 제재는 북한의 수출을 봉쇄 수준으로 틀어막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올 하반기부터는 북한 주민의 구매력 감소와 산업 생산 위축이 본격화될 것이고, 한국개발연구원은 북한의 수출이 무역 봉쇄 수준으로 축소되고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지난해 북한의 대중국 수출은 16억 5천만 달러를 기록하면서 전년에 비해 37%나 감소했습니다. 또한 무역 적자의 증가로 북한의 외환보유액은 40억~50억 달러에서 20억~30억 달러로 급감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북한 당국이 외환 소진의 속도를 늦추고 대중 수입량을 줄인다면 경제 둔화로 인해 산업생산 저하, 시장 축소, 주민 생활의 악화가 지속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현재 평양의 돈주(신흥부유층)을 중심으로 ‘최악의 보릿고개설’ ‘4월 위기설’ 등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 모든 경제적 재앙은 국제사회의 강도 높은 제재와 압박이 2년 이상 계속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경제적 추락의 속도가 급속도로 가팔라지자 김정은은 우선 경제 붕괴의 재앙을 막아야 할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을 것입니다. 또한 핵무기와 대륙간탄도미사일의 성능 개선을 위해선 대외 환경의 안정과 시간이 더 필요했을 것입니다. 이에 따라 김정은은 한국 특사단에게 남북정상회담의 개최를 수용하고 한반도 비핵화 의지와 미-북 대화 용의까지 밝혔고, 심지어 한미연합군사훈련의 시행까지도 이해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전술적 후퇴일 뿐 김정은이 핵보유국 지위의 달성이라는 전략적 방침을 포기한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한국 특사단이 김정은을 만나 6개항의 합의를 도출하고 한국으로 돌아간 바로 그 날, 조선중앙통신 등 북한 관영 매체들은 “한미연합훈련 재개는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 “우리의 핵 무력은 정의의 보검”이라는 기존 주장을 되풀이 했습니다. 김정은은 미-북 대화 용의까지 밝혔으나 <노동신문>은 논평을 통해 “우리의 핵무력은 미국의 극악한 범죄 역사를 끝장내고 불구대천 핵 악마를 행성에서 영영 쓸어버리기 위한 정의의 보검”이라며 “우리 군대와 인민은 정의의 핵을 더욱 억세게 틀어쥘 것”이라고 했습니다.

한국 특사단이 돌아가자마자 딴소리를 하고 있는 북한 당국의 진심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현재의 제재 국면을 벗어나기 위해 한국과의 관계개선을 이용하고 핵무력의 완성을 위한 시간벌기용의 위장평화전술에 다름 아닙니다. 그러나 한국이나 미국 정부는 이전처럼 호락호락 당하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1994년과 2005년에도 북한 당국은 ‘제네바 합의’와 ‘9.19 공동성명’을 휴지조각으로 취급하며 국제사회를 기만했지만, 당시의 학습효과로 국제사회는 북한 당국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을 것입니다. 문재인 대통령도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국제사회의 대북공조를 이완시키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고, 트럼프 대통령 역시 북한 당국이 실제로 비핵화를 위한 행동에 들어갈 때까지 최대의 압박과 제재를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재차 밝히고 있습니다.

김정은은 아버지 시대의 낡은 전술로 시간과의 경쟁에서 승리해보려 하고 있지만 국제사회가 그에게 요구하는 건 기만전술이 아니라 ‘비핵화’의 정도를 밟으라는 것입니다. 한국과 국제사회를 계속 속이려만 하다가는 ‘최악의 보릿고개’나 ‘4월 위기설’이 아니라 ‘최후의 고난의 행군’이 김정은의 눈앞에 펼쳐질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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