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의 음악정치, 평창에서 음악폭탄을 터트리다

북한 김정은의 음악포성이 평창에서 터졌다. 북한에서는 “한 곡의 노래가 천만 군대를 대신한다”며 음악을 통한 사상전을 강조한다. 일각에서는 삼지연관현악단의 공연을 두고 남한 가요와 클래식을 연주하며 정치색이 없는 감동적인 공연이라 평가하기도 한다. 하지만 김정은 시대 성과와 체제선전이 담긴 곡을 가사 없이 연주하는 등 절묘하고 교묘하게 의도된 선정은 신의 한수였다. 한곡씩 그 의미를 살펴보자.

가장 대표적인 곡이 <달려가자 미래로>라는 곡이다. 이 곡은 지난 2012년 8월 25일 김정은이 부인 리설주와 함께 동부전선시찰 길에서 8.25경축 52주년을 기념하며 개최한 모란봉악단 화선공연에서 처음 소개되었다. 북한은 6.25전쟁 당시 서울에 처음 입성한 ‘류경수 제105땅크사단’을 김정일이 방문한 날(1960년 8월 25일)에 선군영도 출발점으로 삼고 있다. 이후 50년이 지난 2010년 8월 25일 선군절로 지정한다. 바로 그날을 축하하는 화선공연에서 “달려가자 미래로”라는 곡이 연주된 것이다. 이후 광명성 발사축하공연, 당창건 70년 축하공연, 최근 대륙간탄도미사일시험발사 성공기념 음악무용종합공연에서도 부른 곡이다.

한마디로 이 곡은 북한정권의 성과를 찬양하는 대표적인 곡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란봉악단 가수인 <박미경, 정수향, 리명희, 박선향>이 여성4중창으로 부른 이 노래는 “내나라 부강조국 낙원으로 꾸미자”가 핵심내용이다. 3절에는 “노동당 세월우에 금별로 새기자”는 가사도 나온다. 노동신문은(2014년 3월 28일자) 이 노래에 대해 “천출위인을 높이 모신 사회주의 내 조국의 밝은 앞날에 대한 확신을 생기발랄한 음악형상에 담은 곡”이라고 표현할 정도다.

두 번째로 “내 나라 제일로 좋아”라는 곡을 살펴보자. 이 곡은 <광명성-4>호 발사성공에 기여한 과학자, 기술자 일군들을 위한 모란봉악단 축하공연(2016년 2월 13일)에서 “빛나는 조국”이라는 곡과 함께 공연 시작을 알린 곡이다. 이 곡은 청봉악단이 러시아 순회공연 때 직접 부른 곡인데 이 곡에 대해 노동신문은 다음과 같이 선전한다.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의 탁월한 령도 밑에 주체조선의 위대한 새 승리를 향해 신심 드높이 노도쳐 나아가는 천만군민의 담대한 기상을 담아 편곡형상한 관현악 《내 나라 제일로 좋아》가 경쾌하게 울려퍼졌다(2015년 9월 2일자 노동신문)”고 표현한다. 2018년 1월 신년축하공연에서도 이 노래는 “설눈아(흰눈아) 내려라”와 함께 공연 시작을 알리는 곡이었다. 특히 2017년 핵무력을 완성하고 2018년을 맞으며 내 나라 제일로 좋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세 번째, “빛나는 조국”이라는 곡은 가사 없이 연주만 되었다. 이 곡은 김정은 시대 성과를 선전하는 대표곡이다. 지난 2016년 2월 광명성 4호 발사 때 김정은이 직접 발사 지시문에 사인하는 모습이 나오는데 바로 그 때 배경음악으로 나온 곡이다. 그런데 이번 삼지연관현악단 공연에서는 교묘하게 선곡이 이루어졌다. “빛나는 조국”은 관현악메들리 제일 마지막 곡으로 연주된다. 우리 귀에 익숙한 오페라의 유령, 백조의 호수 등 20여 곡의 세계명곡을 연주한 후 제일 마지막에 “빛나는 조국”을 ‘끼워넣기’로 메들리를 마무리한다. 공연장에서 관객들의 가장 큰 호응과 박수를 받았던 관현악메들리 연주는 실상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축하하는 선전곡에 박수를 보낸 셈이다.

네 번째로 “통일은 우리민족끼리”라는 곡을 살펴보자. 필자는 삼지연관현악단 공연 전에 북한이 어떤 곡을 제시할지 예상하여 SNS에 게시했다. 이번 공연에서 논란이 된 <백두와 한나(한라)는 내조국>, <통일은 우리민족끼리>, <우리의 소원은 통일> 등의 노래는 북한이 반드시 공연곡으로 제시할 것으로 예상했다. 역시나 이번 공연에서 이 노래는 아주 절묘한 순서로 배열되었다.

공연이 막바지에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부르기 직전에 가수들이 “통일은 통일은 우리민족끼리”라고 반복해서 외친다. 일부 언론에서는 북한이 정치색을 배제하기 위해 사전에 우리 측과 협의하여 <통일은 우리민족끼리>곡을 뺐다고 한다. 하지만 이 곡의 핵심 메시지는 후렴구에 나오는 “통일은 통일은 우리민족끼리”라는 가사다. 결국 노래를 뺀 것이 아니라 <우리민족끼리> 핵심 메시지는 그대로 전달한 것이다. 이 메시지가 <우리의 소원은 통일> 곡 바로 직전에 강조된다. 결국 맥락으로 보면 북한이 강조하는 <우리민족끼리> 통일하자는 메시지가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곡 앞에 배치되면서 자연스럽게 그 의도가 전달된 것이다.

김정은은 올해 신년사에서 북남관계 개선을 언급했다. 2017년 핵무력 완성을 선언한 북한으로서는 경제건설에 초점을 둘 것이다. 대북제재 상황에서 남한의 지원과 분위기 전환을 위해 평창올림픽은 아주 유용한 수단과 기회가 되었다. 김정은의 교시를 관철하기 위해 북한 당국자는 어떤 방법으로든 이번 평창올림픽을 활용하고자 했을 것이다. 우리 정부는 북한이 어떠한 공연을 할 것인지에 대해 공연내용과 선곡에 대해 사전에 ‘요청’이 아닌 ‘요구’를 했어야 했다. 하지만 남북한 모두 정치적 목적에서 활용하려 했기 때문에 이미 그 순수성과 진정성은 훼손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삼지연관현악단의 이번 공연이 북한의 체제선전을 위한 정치색을 최대한 빼고 남한을 배려했다는 주장은 동의하기 어렵다. 만약 이번 공연에서 김정은 시대 북한공연에서 주로 연주되는 곡, 특히 가사에 김정은을 직접 찬양하는 <뵙고 싶었습니다>, <자나깨나 원수님 생각>, <그이 없인 못살아> 등의 노래를 한다고 했다면 그건 공연을 안 하고 그 책임을 우리에게 돌리는 것이나 같다. 그런 노래를 우리가 수용할 수가 없다는 것을 북한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북한이 회담을 파기할 때 협상안으로 “주한미군 철수”카드를 꺼내드는 것과 동일한 맥락이다. 처음부터 북한은 이번 공연을 반드시 개최해야 해야 하는 과업을 띠고 온 것이다. 남한가요를 연주했기 때문에 남한의 입장을 최대한 배려했다는 것도 동의하기 어렵다. 김정일이 평소 좋아했다는 노래도 다수 포함된 것이다.

김여정의 마지막 일정이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삼지연관현악단의 서울공연을 관람하는 것으로 마무리 되었다. 북한이 이번 평창올림픽을 통해 얻고자 했던 “우리민족끼리”가 그대로 이루어지는 순간이었다. 경기장 관중석에 “우리민족끼리”를 새긴 대형현수막이 내걸리고, 공연장에서는 “우리민족끼리”를 강조하는 노래가 불려졌다. 이번 공연은 북한의 치밀한 의도와 전략이 빚어낸 음악정치의 승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여정이 오는 길을 먼저 닦으며 치밀하게 공연을 준비한 현송월에게 박수를 쳐주어야 할까? 아니면 공연내용과 선곡까지 이미 충분히 예견되어 치밀하게 준비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공연 개최에만 급급하여 북한의 의도대로 끌려간 우리 정부를 탓해야 할까?

필자는 통일의 오직 한길을 늘 강조한다. 통일되면 남한의 기술력과 북한의 지하자원을 합쳐 경제적으로 잘 사는 나라를 원해서가 아니다. 21세기 신이산가족으로 살고 있는 고향이 북쪽인 탈북민들에게 통일은 “두고 온 고향, 두고 온 엄마를 만나러 가는 길”이다. 한 사람에 의해 여전히 고통 받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절규가 있는데 그 한사람의 동생에게 머리 조아리고 평화를 구걸하는 모습이다. 자유를 찾아 이 땅에 온 탈북민들에게 부끄러운 마음까지 든다.

그들이 목숨 걸고 그토록 찾아 헤매던 대한민국은 이런 나라가 아니었을 것이다. 대한민국의 경제를 일으키고 민주화를 이룩한 선배들의 피와 땀이 서려있는 이 대한민국이 자랑스럽다. 이제는 대한민국이 더 이상 분단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사람들에 의해 갈갈이 찢겨지고 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통일 없이는 결코 평화롭지 않다. 독재자와 핵무기를 그대로 둔 채 겉으로만 갈등과 전쟁이 없다고 말하는 소극적 평화는 나쁜 평화다. 김정은의 음악폭탄이 터진 것을 애써 모른 채 하려 해서는 결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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