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력 부족” 언급한 김일성大 화학 박사의 최후는?

[북한비화] 원유 시추 책임자 강 씨 '당 정책 비난죄' 혐의로 요덕 수용소行

김일성종합대학
김일성종합대학. / 사진=노동신문 캡처

“우리나라(북한)에 원유(原油)는 (매장돼) 있다. 시간을 좀 더 달라. 아직 시추하지 못한 건 우리의 탐색 기술이 선진국만큼 발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2016년 10월의 어느 날, 당(黨) 간부의 재촉에 원유 시추 탐색작업을 담당하던 강 모(50대) 씨는 이같이 주장했다. 향후 그는 어떤 운명을 맞게 됐을까?

7일 데일리NK 내부 소식통에 따르면, 김정은은 2013년 돌연 사회과학원에 지형학적으로 원유 매장 가능 지역을 물색하라는 지시를 하달했다. 만약 성공한다면 중국 의존에서도 벗어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오랜 대북제재에 파탄 난 경제회복의 활로를 찾을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에 따라 사회과학원은 말 그대로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과거 김정일 시대에도 서구라파(서유럽)의 기술자까지 초청해서 탐색·분석했지만 별다른 성과가 없었기 때문에 극도의 긴장감이 나돌았다고 한다.

그렇다고 손을 놓을 수만은 없었다. 내부에서도 본격적으로 관련 사업에 대한 논의가 이어졌고, 당시 김정은의 지시로 연관부문 기술자, 연구사, 과학자들로 구성된 6·18기술자돌격대가 조직되기에 이르렀다.

이후 이 돌격대는 중앙당에 제출할 지하자원 매장량 현황을 분석하는 등 관련 사업은 착착 진행됐다. 특히 이 과정에서 김정은의 “우리나라에 원유가 안 나올 수가 없다” “무조건 찾아내라”라는 말씀도 이어졌다. 국가 핵심사업으로 부상했던 셈이다.

다만 문제는 ‘누가 책임을 맡느냐’ 였다. 내부에서 토론 결과 중국 유학 경험도 있고, 김일성종합대학 화학학부 출신인 강 씨가 물망에 올랐다. 여기에 그가 사회과학원에서 연구사로 활동하면서 폐수지와 첨가제를 이용한 석유생산 연구를 성공시켰다는 전력도 한몫했다.

원래 원유개발총국에서 맡아야 했지만, 여기서도 김정은식(式) 인재 중심 전략이 작용했다. 즉 외부에서 발탁한 인물이 이 총국 일군(일꾼)들과 함께 작업에 돌입한 셈이다.

이후 강 씨는 중국이 1998년부터 산둥반도 북쪽 보하이만(발해만)에서 원유를 생산하기 시작한 점을 주목했다. 이에 2014년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평안북도 앞바다 서한만 일대에 원유 매장 가능성을 보고 인력·장비를 투입하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2년 후 강 씨가 기술적 문제에서부터 후방 사업에 이르기까지 전반사업을 돌보면서 최선을 다했지만 이렇다 할 성과는 나오지 않았고, 이에 중앙당 내부에서는 슬슬 책임론이 불거지기 시작했다.

즉, 강 씨에게 지금이라도 지역을 잘못 선택했다는 점을 인정하는 게 좋겠다는 의견이 전달됐다.

하지만 그는 이렇게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여기는 확실히 원유가 나올만한 곳이다’면서 기술이 선진국만큼 발전하지 못했기에 시간이 필요하다는 식으로 당 간부에게 말했다.

강 씨는 본인의 의지를 강조하는 이 언급이 나중에 자신의 발목을 잡게 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보름 후 그는 두 아들과 함께 어디론가 끌려갔다. 안해(아내)와는 ‘국가적 이혼’ 처리가 됐다.

또한 일가친척도 모란봉구역 흥부동 아파트를 내놓고 모두 양강도 갑산군 오일리로 추방되었고, 현재도 농장원으로 생활하고 있다고 한다.

후에 알고 보니 강 씨는 함경남도 15호 관리소(요덕 수용소)에 수감됐다(현재 생사 여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고 한다. 이는 ‘국가재산 랑비죄’와 더불어 ‘당 정책 비난죄’가 적용된 결과였다.

기술력 부족을 꼬집었다는 이유로 반역자로 전락하는 체제에서 과학과 인재 육성 정책은 성공할 수 있을 것인가. 이런 ‘책임 씌우기’라는 낡은 방식에서 과감히 탈피하는 게 향후 정상국가를 꿈꾸는 김정은이 가야 할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