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국의 세력이 교차하는 지점 : 2018 한반도

북한 김정은과 부인 리설주가 지난달 27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부부가 중국 국빈관인 베이징 조어대(釣魚臺) 양위안자이(養源齎)에서 마련한 오찬에 초대됐다고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28일 보도했다. /사진=노동신문 캡처

평창 동계올림픽을 기점으로 동아시아 지역의 정치 질서는 세계적인 이슈로 부상하였다. 파격적인 김정은의 신년사대로 김정은의 동생인 김여정(1984년생)과 노동당 상무위원 김영남(1928년생)의 방남과 김정은의 전격적인 중국 베이징(北京) 방문은 변화되는 동아시아의 정치지형을 한 번에 바꾸어 놓은 적극적인 행동들이었다. 지난달 31일부터 3박 4일간 이루어진 두 번의 평양 공연과 함께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을 중심으로 중국, 러시아 그리고 일본을 포함한 각 나라들의 치열한 외교전을 지켜보며 ‘아직도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는 깨달음이 역사를 다시 되돌아보게 한다.

4월 말에 남북정상회담과 5월 북미정상회담 사이에 북일 정상회담, 한중정상회담을 포함해 북미정상회담을 위한 북-스웨덴 외교장관 회담과 북-핀란드 고위급회담부터 북미정상회담 장소를 제공하겠다는 등 전 세계가 한반도 문제에 대한 역할론을 부각시키고 있다. 남북정상회담의 의제와 북미정상회담의 장소에 관해 남북과 북미는 서로 물밑작업을 적극적으로 하고 있으며 이를 주시하고 있는 중국과 일본, 러시아는 또 다른 의제로 북한과 접촉하고 있다.

공연을 위해 남한의 예술인들이 평양에 도착하던 3월 31일 오전에 북한과 함께 사업을 했던 중국사업자들이 귀국하였다. 그들은 김일성 생가를 포함하여 통일각과 정접협정 회의장 등을 관람하고 큰 환대를 받은 뒤였다(노동신문 4. 3일자 기사 공개). 김정은은 평양으로 복귀하여 IOC 바흐 위원장과 면담(3. 31.)과 기존의 대북사업가들에 대한 예우를 동시에 진행한 것이다. 평창 동계올림픽을 시작으로 김여정의 청와대 방문(2. 10.)과 시진핑과 김정은의 비공식회담(3. 26.) 그리고 대북사업가들의 초청(3. 28)에서 볼 수 있듯이, 한국과 미국에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하였다.

우선 김정은은 시진핑에게 ‘확실한 체제보장과 핵 포기에 대한 전반적인 보상’이라는 조건이 성립되면 핵을 포기하겠다는 것과 제재 이전의 북한으로 빠르게 전환시키겠다는 의지를 동시에 보여준 것이라 할 수 있다. 4월 말에 있을 남북정상회담과 5월 북미정상회담에서 할 이야기를 김정은은 미리 보여준 것이다. 그가 소위 정상국가의 수장으로서 첫 외교상대로 시진핑을 선택한 것은 정전협정당사자인 중국의 면(面)을 살려주면서 핵 문제라는 지협적인 문제를 동아시아의 안보 환경으로 전이시킴으로써 북미정상회담의 결과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상쇄하고자 하였을 것이다. 이는 동아시아 지역에 ‘지형의 지렛대’를 자신이 가지고 있음을 선포한 동시에 앞으로 있을 두 회담의 긴장감을 유지하려는 복안이다.

모두 알고 있다. 미국의 핵 단추가 승률을 따질 수 없을 정도로 김정은의 핵 단추보다 더 크다는 사실을…, 그러나 왜 김정은은 그리고 트럼프는 이 게임을 기꺼이 참여하고자 하는 것일까? 진정으로 선대의 유훈을 실현하기 위함일까, 선제공격을 해야 할 만큼 북핵이 미국에게 위협적인가? 또한 6자회담 당사국들은 북한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나서서 알릴만큼 그들에게 북한이 그렇게 중요한 존재였는가? 그 답은 모두 ‘아니다’이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동아시아에서 패권이 교차할 때, 전쟁과 같은 안보 위협이 상승하곤 하였다. 90년대 초 북한의 든든한 후원국이자 동맹국이었던 소련은 북한을 외면하고 남한과 긴밀한 협력관계를 구축했고, 그 후 소련연방이 붕괴함에 따라 국가적 실체가 사라지고 말았다. 또 하나의 주요 동맹국인 중국 역시 시장경제에 관심을 표방하면서 공산주의의 맹방인 북한을 평가 절하하기 시작하였다. 한편 북한은 1994년 김일성이 사망한 후 인도적 차원의 원조를 받기 위해 여러 국가들과 협력을 추구하는 새로운 정책을 추진했다. 그러나 역사의 시계를 다시 되돌려 ‘분단’이라는 결과는 2차 세계대전 종전 무렵 강대국의 경솔한 결정으로 인한 것이며 과거 수세기 동안 한반도에서 전개된 다른 모든 권력투쟁의 양상은 분단 상태에서 겪어야만 했다.

한반도는 미국과 중국, 일본, 러시아 4대 강대국의 이익과 안보가 교차하는 세계에서 유일한 곳이다. 따라서 이 강대국들이 한반도의 운명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처럼 동북아지역에서 한반도는 이데올로기로 인해 물러설 수 없는 격전지인 동시에 국익에 대한 인식을 바꿀 수 있는 곳이기도 했다. 이와 같은 연유로 뉴욕州와 펜실베니아州를 합친 22만 평방km의 면적에 2차 대전에 사용하였던 포탄의 30%가 소요되었다는 것은 당시 한국전쟁의 참혹함과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의 중요성을 내포하고 있다. 3년 동안 지속된 참혹한 한국전쟁은 미국의 정책이 2차 세계대전 직후의 군비 축소에서 소련의 팽창주의에 대항한 재무장 쪽으로 선회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그로 인해 미국은 군비를 강화하였고 유럽 주둔군을 배로 늘렸다. 또한 한국전쟁은 소련과 중국의 끈끈한 동맹관계를 10년 가까이 유지시켰고, 미국과 중국을 20년 이상 숙적으로 만들었다. 회고하면 ‘한국전쟁’은 냉전을 확고히 고착시켰으며 한반도를 전 세계적 관심으로 부각시켰다. 그리고 정전협정을 체결(1953년 7월)한 지 약 70년 지난 오늘(2018년) 다시 모두를 한 자리에 불러 모았다.

오는 4월 말에 있을 남북정상회담에서 김정은은 남한을 미국과 일본으로부터 떼어놓고 미군 철수를 성사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남북대화를 활용했던 김일성의 전략을 구사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는 1972년 7월 4일 공동선언 직후 베를린 북한 대사 이창수가 동독 공산당 정치국에 제출한 기밀문서에서 “당과 북한 정부는 남한의 정치지도자들이 미국과 일본의 영향력으로부터 벗어나고 미국의 간섭을 반대한다는 약정을 체결하도록 만드는 데 주력할 것”이라는 김일성의 생각을 지우고 회담에 나서야 한다. 물론 미국이 한반도에 머물러야 하는 명분은 김일성 시절보다 줄어든 것은 사실이나 그것을 위해 북한 지도자 중 최초로 3.8선을 넘을 만큼 김정은이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지금까지의 일련의 사건들이 대변하고 있다.

또한 우리의 문재인 대통령은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정착하고 새로운 남북관계를 위해 ‘북핵’의 정치적 의미를 전환시킬 수 있는 몇 개의 카드를 들고 김정은과 마주앉아야 할 것이다. 김일성이 그토록 실용적일 수 있었던 것은 그 자신이 분단의 장본인인 동시에 해결사로서의 역할도 할 수 있다고 여겼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한반도는 70년 전의 한반도가 아니며, 동아시아는 보다 복잡하고 그만큼 민감한 곳이 되었다. 도널드 트럼프는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 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ismantlement)’에 대한 김정은의 대답을 듣기 위해 마주앉을 것이다. 이에 우리는 한미가 단계적이고 동시적 조치 하에서 가능하다는 김정은 생각과의 접점을 미국과 북한에 제시해야 한다.

그 해법으로 중국은 쌍중단 [雙中斷: 북한의 핵, 미사일 개발 행동과 한미연합훈련을 동시에 중단하는 것]과 쌍궤병행[雙軌竝行: 한반도 비핵화 프로세스와 북미평화협정체제 협상을 병행 추진]을 제시하였다. 이 모든 주장에는 ‘자국의 이익’이라는 공통분모를 각기 다른 색과 모양으로 변경시켜 정치와 경제의 수단과 목적으로 삼고 있다. 미국은 중국이 정직하지 못하다는 점을, 중국은 미국이 모순된 행동주의자라는 점을 서로 부각시켜 동아시아 지역 안보에 스스로의 중요성을 확대하고 있다. 이 때 우리는 한 영역에 한정하지 않고 장기적인 교류와 협력을 위해 김정은의 구체적인 방안을 요구해야 한다. 미국은 북핵을 국내외 정치적 수단으로도 삼을 것이며, 중국은 2025년을 기점으로 동아시아에서의 패권을 다시 찾기 위한 모멘텀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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