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 대북 특사, 김정은 ‘비핵화 의지’ 제대로 확인한 건가?

청와대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8일(현지시간) 오후 미국 워싱턴 백악관 오벌오피스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만나 방북 성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사진=청와대 제공

이번 대북특사를 다녀온 다섯 명이 하나같이 김정은을 ‘솔직한 사람’이라고 자평했다. 그 주된 근거로 한반도의 비핵화가 선친(김정일)의 유훈이었다며 김정은이 비핵화 의지를 드러내었다는 것이다. 과연 그런지 대북 특사 방문 이후 북한 매체들의 후속보도를 점검해보았다.

김정은이 ‘비핵화’를 언급한 것이 특사들이 제시한 것에 대한 응답인지는 모르겠지만 정의용 수석특사의 메모장(김정은에게 말할 요지기록) 내용을 보면 대체로 김정은 맞춤형 대화가 오고간 것 같다. 그의 메모장 한 면에는 “강조하고 싶은 것은 한미연합훈련으로 남북관계가 다시 단절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라는 문장이 기록되어 있었다. 이 내용이 김정은 비위맞추기식 고육지책(苦肉之策)이라고 할지라도 한미군사훈련을 남북관계개선의 걸림돌로 치부케 하며 북한의 핵 도발을 촉발시킨 핵심요인이라는 빌미를 제공해주므로 김정은에게 면죄부를 주게 된다는 사실이다. 노동신문은 보란 듯이 대북특사들이 평양을 떠나는 날, “조선의 핵보유는 정당하며 시비거리로 될 수 없다”는 제목의 사설을 실었다. 북한의 핵보유 정당성을 세계 여러 나라 국제문제 전문가들의 목소리를 빌어 주장한 글이다. 그 내용을 보면, 북한의 핵개발은 미국의 적대시정책의 산물이며 미국의 침략전쟁연습(한미군사훈련)의 결과물이다. 따라서 핵무력은 자주권 및 생존권을 수호하기 위한 필요악(惡)이라고 하였다. 한술 더 떠 노동신문은 그 다음날(8일) 이란의 군사지도자의 말을 인용, 북핵 포기의 선결조건으로 미국과 유럽의 핵무기 우선 철폐를 들고 나왔다. 북한 체제 속성상 이러한 일련의 보도는 대북 특사 방문과 무관하지 않다. 김정은의 의중이 드러난 전략적 접근으로 대북특사들의 뒤통수를 때린 격이다.

특사들의 임시방편적 태도가 결국, 미국을 중심으로 한 국제사회의 전 방위적 북핵 제재의 명분을 약화시키는 독소(毒素)로 작용되고 말았다. 이 독소가 퍼지면 한국 내 주한미군철수가 공론화 될 것이며 일순간 대중적 의식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 짐작컨대, 남북정상회담을 기점으로 그 빗장이 풀릴 것이다. 문정인 대통령 특보가 이미 밑밥을 깔아놓았고 대북 특사들이 가져온 남북합의조항은 그 설계도이다.

이번에 남북이 합의(의견의 일치)한 여섯 가지 조항 중 미국과 관련된 것을 보면 핵심요지가 ‘주한미군철수’임을 알 수 있다. 세 번째 합의, ‘북한 체제안전의 보장’과 네 번째 합의, ‘북미관계 정상화’ 모두 주한미군철수와 직결된다. 한미군사훈련 중단문제와는 차원이 다르다. 보다 원론적인 주한미군철수가 선결조건임이 분명하다. 문제는 이것이 북한만의 입장이 아닌 우리정부와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는 데 있다. 며칠 전 문정인 특보의 “대통령이 주한미군에게 나가라고 하면 나가야 한다”라는 발언이 결코 한 개인의 치기(稚氣)가 아니었다는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대북 특사들 방문 전·후 북한 매체들의 포커스는 ‘주한미군철수’에 맞춰졌다. 노동신문만 보더라도 반미감정을 더욱 증폭시킴과 동시에 핵무력 정당성을 선전하며 ‘핵무력 건설’, ‘주체의 핵강국’이라는 용어가 더욱 거리낌 없이 사용되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대북 특사들이 도착한 날(6일)에는 ‘미제의 반인륜적인 핵범죄 력사를 끝장내야 한다’는 제목으로 한반도 긴장조성 및 평화 파괴 주범이 미국으로, 칼빈손 핵항공모함, B-2 핵전략폭격기 등의 전술핵배치로 일촉즉발의 핵전쟁국면에 와있다고 주장하였다. 대북특사들과 남북합의 조항을 만들어낸 날에는 ‘조선의 핵보유는 정당하며 시비거리로 될수 없다’(3.7)는 사설을 실었고, 대북특사들이 미국특사로 출발하던 날(3.8)에는 북한주민들로 하여금 미국에 대해 가장 분노하며 치를 떨게 만드는 <신천박물관>을 조명하며 ‘미제살인귀들을 천백배로 복수할 결의에 넘쳐있다’는 글귀의 사진을 올렸다. 노동신문 어디에도 특사들이 말한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는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핵강국의 상징인 ‘백두산 대국’과 핵무력의 구호인 ‘백두산의 칼바람 정신’을 내세우는 데 골몰해있다.

대북특사들이 동일하게 내세웠던 “김정은이 솔직하다”는 평은 이제 철회되어야 할 듯싶다. 또한 단지, 눈 가리고 아웅, 립서비스식 김정은의 ‘비핵화’ 발언을 들고 트럼프를 만나 5월의 북미정상회담을 이끌어낸 것도 놀랍다. 특히 그 ‘비핵화’가 뻥튀기되어 ‘주한미군철수’라는 폭음을 내는 건 아닌지 우려된다. 대한민국 안보의 마지노선(Maginot Line)을 무너뜨리지는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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